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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an 22. 2023

살아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지구의 모습은

난 코로나 끝나면 아이슬란드 갈 거야

살아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지구의 모습


전 세계의 하늘길이 막혔던 팬데믹 2년여간은 아이러닉 하게도 이 세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만 꼼짝 않고 지내면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겠거니 생각했지만 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쉼 없이 모양을 바꿔가며 아직도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몇 달로 예상했던 기간이 몇 년으로 넘어가는 동안, 묵혀둔 지난 여행 사진들만 하염없이 스크롤하거나 오락가락하는 방역조치에 한두 번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며 앓았던 나 같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모두들 어떻게 이 지루함과 답답함을 견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한 가지 생각을 분명히 하는 시간이었다.

 

'이 모든 역병이 지나가고 다시 어딘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 있게 된다면, 매 번이 인생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실제로 코로나19가 막 뉴스를 타기 시작한 달에 국제선을 타고 귀국했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열심히 일한 다음 나가 놀고, 그 기운으로 다시 돌아와 또 여행비를 버는 사이클일 줄 알았는데 쳇바퀴라 해도 계속 굴러가는 게 행복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해도 이 세상의 혼란함을 생각하면 언제든 더한 일도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그런 위기에 대비하고 살아야겠지. 그래서 부지런히 혼자 묻고 답하고 상상했다. 내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지구의 모습은 무엇일지.



태고의 대자연에서 혼자서 고생을   


이제까지 여행 다닌 나라의 수는 내 나이랑 얼추 비슷하기 때문에 모든 기억과 감동이 똑같이 남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선명도가 오히려 '도시보다는 자연, 휴양보다는 고생, 미래보다는 과거, 다수보다는 소수'를 선호하는 나의 여행취향을 확실히 알려주는 데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참고로 선정한 다음 행선지 일 순위는 아이슬란드였다. 팬데믹 초반에 집콕하며 정주행 한 미드 <왕좌의 게임> 속 장벽 너머 차가운 얼음의 땅이 CG가 아닌 아이슬란드라고 할 때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일찍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을 꿈꿀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구 같지 않은 풍경을 가진,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모르는 지구의 처음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아이슬란드는 자연 중에서도 대자연, 과거 중에서도 태고로 거슬러갈 수 있는 곳이니까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닐게 분명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여행지로는 이만큼 적절한 곳이 있겠나 싶었다. 정확히 뭐가 있는지 몰라도 아이슬란드가 당장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가보고 싶은 사람 말고 갈 사람


"난 코로나 끝나면 아이슬란드 갈 거야."


대체로 안물안궁인 내 다음 여행계획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다음 중 한두 가지, 때로는 세 가지 모두로 나타났다.


"와~ 아이슬란드? 멋지다."

"(주로 <꽃보다 청춘> 혹은 <세계테마기행> 등 여행프로그램)~에서 봤어. 나도 가고 싶더라."

"근데 어디에 있는 나라야?"


그럴 때마다 나는 설명을 덧붙이며 아이슬란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곤 했지만 가본 적 없는 사람과 갈 생각 없는 사람 간의 대화는 특별히 신나지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잘 모르는 사람', 노라와의 대화에서 아이스브레이킹 삼아 마지막 여행지 타령을 하던 내게 생소한 반응이 돌아왔다.


"어, 나도 아이슬란드 가고 싶어. 같이 가."


아니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이라니. 그러나 이 말의 진위와 무게감을 가늠하기에는 노라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경험치가 너무나 부족했다. 기껏해야 지인의 지인으로 몇 년간 이야기 들어왔고, 직접 얼굴 보고 만난 적은 이번이 두 번째. '나는 지금 여행의 동반자를 만난 걸까? 어쩌면 습관처럼 기약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한번 더 물어보면 (거의) 초면에 식겁하는 거 아닐까.' 조금 고민하는 사이 두 번째 미끼가 드리워졌다.


"나 예전부터 아이슬란드 너무 가고 싶어서 혼자라도 가려고 했었어."

"어, 진짜? 나는 가고 싶은데 운전을 못해가지고, 혼자 갈 수 있는 방법을 좀 알아보려고 했었어."

"나 운전할 수 있어. 우리 같이 가자. 코로나 끝나면. 꼭~!"

"와, 진짜? 나 진짜 갈 거야."

"어, 나도 진짜 갈 거야."


좋았어. 내 의지로 덥석 물고 낚여버렸다. '갑자기 동행이 생겼잖아. 뭐야, 당장 내년에 가는 거 아냐?' 금방이라도 떠날 듯이 설렘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 우리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반석이 한마디 툭 던졌다.


"어, 나도 갈래."


반석은 몇 해가 지났지만 내가 여전히 재미있게 기억하고 있는 제주도 그룹 여행의 리더였다. 함께 여행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내겐 어쩐지 여행자 이미지가 크게 있는 사람, 같이 간다면 왠지 그때의 재미를 재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인지 노라의 말을 들었을 때의 고민을 생략하고 몇 초만에 대답했다.


"좋지, 너무 좋지. 꼭 가는 거야."


코로나19로 팬데믹이 선포되고 처음으로 맞는 겨울이었다.


이 글은 등장인물의 나이나 관계에 따른 수직적인 위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평어(平語)와 별칭을 사용하여 대화를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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