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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an 29. 2023

우리We 같이 떠나자, 아이I슬란드로!

We're going to Iceland, Weceland!

이제 떠날 때 되지 않았을까


코로나19가 내내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삶의 표준이 크게 변한 만큼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빠르게 일어났고 워케이션(Work+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에서 원격근무를 하면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것)이라는 형태의 여행도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코를 찌르고, 각종 증명서를 내고, 의무 격리기간을 감수하며 여행을 떠나기까지는 부담스러운 직장인들이 많이들 국내여행지를 찾았고, 그 무리 중 하나가 된 나와 노라도 각자의 워케이션 중에 계획에 없던 만남을 갖게 되었다. 아이슬란드 이야기를 나눈 뒤 1년 반이 지났고, 여전히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타지에서 만나 잠깐의 휴가를 함께하는 동안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중간쯤에 있는 이 관계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너무 속속들이 아는데서 오는 관계의 스트레스가 분명히 있다. 친한 친구와의 첫 여행이나 가족여행에서 운 좋게 싸우지 않더라도 그 싸움을 막기 위해 누군가는 열심히 내적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러나 애초에 너와 내가 잘 모른다는 전제로 만나면 작은 것도 묻게 되고, 몰라서 조심하게 되고, ‘그런 것도 몰라?’라는 서운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질문이란 보통 배려의 영역에 가깝지만 물음표 많은 내겐 호감의 영역에 가깝기도 해서, 아직 알아낼 것이 많은 사람과 가는 여행이 무척 기대됐다. 그리고 그 기대가 식기 전 가을의 초입에 해외 출입국에 관한 검사와 격리 규제가 완전히 해제되었다. 뻔하게도 관련 뉴스를 보자마자 아이슬란드행 티켓부터 검색했던 우리는 혹여나 상대방 맘이 바뀌었을까 봐 조심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혜빈, 우리 아이슬란드 계획을 짜볼까."

"오, 안 그래도 생각했는데."


걱정이 무색할 만큼 ‘혼자서라도 가겠다’라는 열정으로 무장한 우리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빵 터지며 안도했지만 당장 뭔가 추진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연말에 남은 연차를 털어낼 수야 있지만 가장 중요한 출발일 확정 때문에 11월 초에야 티켓팅을 할 수 있었는데 그간 수요급감으로 치솟았던 항공권 가격이 아직 그대로인 데다 환율 쇼크, 연말 성수기까지 겹쳐 티켓 가격은 상상 이상이었고 스케줄 옵션 자체도 많지 않았다. 하루종일 검색을 하며 이런저런 루트를 짜 봤지만 고민은 가격을 높일 뿐, 새로고침 할 때마다 10만 원씩 높아지는 검색창을 보면서 결단을 내렸다. 그래, 직장인한테 시간이 돈이지. 이왕 가는 거 화끈하게, 연차 쥐어짜 내서 경유지 여행도 넉넉하게 하자. 포기하니 마음도 편하고 모든 게 속전속결이었다. 북유럽 직항 편으로 유일한 핀에어를 못 타보는 건 아쉬웠지만 노라는 프랑스 파리를,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지로 삼아 아이슬란드 여행 기간만큼의 여행 계획을 추가했다.



우리는 아이슬란드로 간다, We're going to Iceland, Weceland!


출국일을 D-day 캘린더에 넣고 이제 정말 가는구나 싶을 때쯤, 문득 지나가는 듯 자기도 끼워달라던 반석이 생각났다. 왠지 전혀 기억을 못 할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같이 가면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에 넌지시 물어봤는데 단 며칠 고민 끝에 합류가 결정됐다. 나중에 물어보니 2년 전 한 이야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가기로 한 게 중요하지, 곧바로 단톡방을 파고 반석의 경유지를 골라주느라 다 같이 들떠있을 그때,

 

"님들 멤버 추가 가능함? 친누나한테 자랑했는데 자기도 가고 싶대."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컴퓨터를 돌렸다. 여행은 트리플이 언제나 가장 싼 옵션이지만 우리는 이성 그룹이므로 짝수를 맞추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지. 친남매니까 상황에 따라 둘둘이나 셋-하나로 유연하게 찢어질 수도 있겠군. 원래 K-호적메이트들은 서로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상종 안 하는 게 국룰인데 남들과 가는 여행에 내세울 정도면 1차 검증 완. 게다가 가족이니까 고집 있는 ^^ 반석도 마크가 가능. 너무 좋은데?


내 동의로 만장일치가 되어 합류한 살별까지 총 네 명의 멤버가 완성됐다. 몇 년 전 아이슬란드에 처음 가고 싶다 생각할 때만 해도 '높은 확률로 혼자가게 되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팀을 이루게 되다니, 게다가 마음에 안정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주는 정도의 지인이라니 여행 메이트로 너무나 적절하지 않은가. 모든 게 내 생각보다 잘 풀렸다. 하지만 갑자기 결성된 이 팀이 마치 짧은 연습생 기간을 거치고 데뷔한 아이돌처럼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겨울 아이슬란드가 여행 고수들에게도 꽤나 난이도 있는 여행지라고 들었는데 미리 결정하고 준비할 게 한두 가지 아닌 상황에서 잘 맞춰갈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 설렘과 불안으로 오락가락하는 며칠을 보내고, 여행이 시작되는 날을 꼭 6주 앞둔 토요일, 첫 대면이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사전미팅을 가졌다.



준비는 각자 방식대로, 너무 달라서 참 다행이야.


미팅 장소는 정했지만 누구 하나 샤프하게 시간을 정하려고 하지 않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제일 먼저 도착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놓은 여행책을 여유 있게 훑다 보니 노라가 도착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읽던 여행책에 멋진 사진을 봤다고 신나서 말하는데 노라는 벌써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지명과 위치를 언급하며 그곳은 우리 일정 중에 갈 수 없을 거라고 딱 자른다. 내가 '많이 추우려나' 정도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주요 포인트와 이동거리를 체크하고 숙소는 어느 동네에서 알아보면 좋겠다며 모두에게 과제를 내어 주는, 노라는 여행의 과정에서 가장 항상 몇 발 앞서 조사하고 꼼꼼하게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노라의 준비성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우리는 어떤 난관을 겪었을 테지만 다시 여행을 간대도 나는 이 정도 준비를 하는 대신 난관을 겪을 사람이다. 그 차이가 이 여행을 재미있게 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함께 도착한 반석과 살별은 남매지만 첫눈에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웠다. 내가 그날 찾은 유일한 공통점은 둘 다 항공권 티켓팅을 안 했다는 점뿐. 일단 비행기표 끊어야 조금 준비할 기분이 나는 나로서는 기절할 노릇이었지만 중간에 마음을 바꿀 거면 애초에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진정했다. 조금 길었던 아이스브레이킹 끝에 노라가 본론을 끌고 들어오자, 살별이 '안 그래도 이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라고 말했다. 초면이라 아주 조심스러워하고 있지만 효율을 중시하는 단도직입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왔다. 반석은 항상 (내 눈엔) 노련해 보이던 모습과 달리 이날은 조금 들떠 보였다. 생업과 별개로 간간이 촬영 일을 하러 다닐 정도로 사진으로는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그였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분명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멋진 무언가를 담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 보였고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준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몇 가지 커다란 합의가 필요했다. 운전 가능자는 둘 뿐이었지만 여행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위해 차량 렌트를 하기로 했고, 짧은 낮과 긴 이동시간, 살인적이라는 물가와 그룹여행의 이점 등을 모두 고려해서 몇 끼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요리해서 먹고 그에 따라 숙소는 취사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을 우선조건으로 찾아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일차로 필요한 결정을 다 하고 누군가 물었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기대하는 건 뭐야?"


세시간여의 대화 속에 성격도 선호도 여행방식도 완전히 다른 넷이라는 걸 이미 깨닫는 중이었지만 이 질문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오로라.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안 찾아봐서 딱히 다른 걸 꼽을 수 없었던 까닭만은 아니었다. 빙하와 다른 몇 가지를 말한 사람도 '오로라만 볼 수 있다면 다른 몇 개 포기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오로라를 보고 오가는 길에 보이는 걸 보는 거라고 생각하자.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다 다르지만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보완해 가며 꽤나 죽이 잘 맞는 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에서 생각한 모든 것을 말할 순 없어서 MBTI 과몰입러가 되어 한마디 했다.

 

"추진하는 EJ, 활동하는 EP가 고루 있고 변화지향적인 EN이 셋이면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ES가 있으니 아이슬란드 여행을 힘차게 할 수 있는 조합 같아. 따뜻함은 반석에게 맡길게."


지극히 내 기준의 멤버소개

* 혜빈: ENTP. 대자연와 우주에 열정 있는 편. 여행 갔다 하면 지구과학 공부하고 오는 지질덕후. 여행 걱정 별로 없고 재미가 최고의 동인(動因) 임. 수십 차례 검증된 날씨 요정을 거쳐 날씨 마녀로 승격됨(by myself). 프랑크푸르트 경유.

* 노라 : ESFJ. 계획하고 돌보고 밥 먹이는 데 재능이 있음. 대화가 곁길로 빠질 때마다 '주제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함. 생업이 과학계통이나 지구과학은 아님. 다른 사람이 본인보다 일 많이 하는 거 두고 보지 못하는 편. 검은 옷 입지 않음. 파리 경유.

* 반석: ENFP. 청일점. 준 전문 사진작가. 베스트 드라이버. 유럽 초행. 버거킹 킹등급이고 라면 잘 끓임. 옷 더 껴입으라는 말 잘 안 들음. 런던 경유.

* 살별: ENTJ. 반석 호적메이트. 초면에 맛있는 초콜릿과자 선물 줌. 다음에 만나면 또 준다고 해서 첫 만남 대호감. 대화가 곁길로 빠질 때마다 '주제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함. 여행 직전 퇴사함. 반석과 함께 런던 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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