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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Feb 07. 2023

오후 세 시 반의 석양

머릿속으로 자전축이 기울어진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북극에 가장 가까운 나라로


전날 저녁 우리 중 가장 먼저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노라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치워둔 눈이 사람 키만큼 쌓여있는 그 사진은 보기만 해도 한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영상 10도에 가까운 서유럽에 있던 그때는 다음날 내가 저기 있을 거라는 사실이 썩 실감 나진 않았다. 아침이 밝고 레이캬비크행 비행기에 나와 함께 탑승하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니 겉옷이나 신발에서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아, 지구상에서 북극에 가장 가까운 나라로 가는구나.


항공기 이착륙 시에 하는 나만의 놀이가 있는데, 바로 구글지도를 미리 켜놓고 항공기 아래쪽에 보이는 땅의 모양과 맞춰보며 어디인지 가늠하는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벗어나 아이슬란드까지 닿는 하늘길을 따라가 보고 싶어 일부러 창가석을 골라 앉았다. 평소엔 비행시간이 한 시간만 넘어가도 답답해서 복도석을 찾지만, 일주일 가량의 독일 여행을 한 뒤에 다시 여행의 시작점에 서니 기쁨, 설렘, 기대 같은 온갖 좋은 기운들이 새로 채워져서 세 시간 오십 분 정도 창가에 갇혀있어도 별 문제없을 것 같았다. 이륙해서 한동안 검푸른 숲을 날던 비행기가 한참만에 유럽 대륙을 빠져나왔고, 오랫동안 구름 위를 지나다가 어느 순간 창밖을 보니 지도 위에 그려진 해안선과 똑같은 땅과 바다의 경계가 나타났다. 스코틀랜드 북부를 지나온 것이다. 와, 이제 정말 가보지 못한 땅을 밟는구나.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지형의 높낮이와 바닷물의 깊이가 대륙의 경계와 섬을 만들 뿐, 거대한 지구 지형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바다를 건너간다는 사실은 별로 특별할 게 없다.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을 이동하는 건 더 시시하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에 가보는 게 특별한 이유는 그 거대한 대륙판 두 개의 경계에 위치한 섬이라는 데 있다. 나라보다 대륙보다 더 큰 대륙판을 넘어가는 경험, 내가 사는 지구가 어떻게 생겨먹은 행성인지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욕구로 가득한 나한테는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실제적이랄까.


오후 세 시 반 경의 착륙 장면. 바다가 끝나자 하얗게 덮인 아이슬란드의 땅으로 들어섰다. (Photo by 반석)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어둑어둑해지는 게 느껴졌다. 정오쯤에 비행기를 탔으니까 한 시간 시차를 적용하면 현지시간으로 세 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 모를 저 너머에 붉게 노을 진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머무는 내내 일출 시간이 11시 20분경, 일몰시간은 오후 3시 35분경, 하루 중 낮시간은 4시간 15분 전후라는 걸 미리 확인했는데도 자꾸만 시계와 창밖을 번갈아보게 되는 건 반도의 촌놈인 내가 충분히 지구인이지 못한 탓이겠지. 머릿속으로 자전축이 기울어진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고위도의 백야(白夜)와 극야(極夜)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다 보니 어느새 바다가 끝나고 비행기는 얼음인지 눈인지 온통 새하얀 땅 위를 날았다. 와, 이게 다 뭐지! 어제 폭설이 왔다더니 정말 나라이름값 하는구먼.


아이슬란드의 여름(좌)과 겨울(우) 위성사진을 비교해 보면 비행기가 들어설 때 왜 온통 하얀색이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NASA, CIA World Factbook)


처음부터 만만치가 않다


12월 초까지만 해도 수도 레이캬비크의 기온이 서울보다 온화한 날이 많았는데 희한하게 우리의 여행 직전 일주일간 낮 최고 기온은 계속 영하를 유지하고 있고 연일 눈 예보, 그리고 여기서는 눈보다 더 무섭다는 강풍 예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노라는 일행보다 하루 더 주어진 일정을 활용해서 서부 아이슬란드 스나이펠스네스 Snaefellsnes 반도와 키르큐펠 Kirkjufell을 돌아보는 종일 투어를 신청했는데 그마저도 아침에 취소되었다고 하니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비 예보가 있어도 내 일정 뒤로 밀어버리고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운무도 걷어내는, 수차례 검증된 날씨요정! 이 팀에서도 그 역할을 해내리라는 믿음으로 피어오르는 걱정을 덮어버렸다. 어쨌거나 저녁 늦게나 볼 예정이던 노라가 투어 취소 덕에 공항까지 나와줘서 렌터카 픽업도, 첫날 숙소 체크인도 사이좋게 같이 할 수 있으니 좋잖아? 굳이 좋은 점을 쥐어짜 내보자면.


아이슬란드 공항에 붙어있는 안내지도. 우리는 레이캬비크와 남서부 일부만을 여행할 수 있는 일정이었지만 다른 지역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아이슬란드의 날씨]

연중 꽁꽁 얼어있을 것 같은 아이슬란드지만 냉온대 해양성 기후를 보여 비슷한 위도대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온난한 편이라고 한다. 북대서양 난류가 지나는 남부와 남서부는 겨울에도 다른 지역보다 평균기온이 높은데 이곳에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 레이캬비크가 있고 우리의 여행루트도 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 연중 기온: 섭씨 -1도 (1월)~10.7도 (7월)
* 일조 시간: 4시간 (12월-1월)~22시간 (6월)
*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달: 9월~4월
* 여행하기 좋은 때: 1월 1일~12월 31일 (아이슬란드 관광청 의견)
* 여행하기 좋은 때: 9~11월 (내 의견)
* 이유: 오로라를 볼 수 있을 만큼 밤의 길이도 적당하면서 평균기온은 영상을 유지하므로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보여주는 장관을 가장 다채롭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   
* 여행정보: https://guidetoiceland.is/ko (아직도 읽고 있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숨어'있음)
                https://www.visitice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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