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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by 담쟁이 Aug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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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커피 관련업, 그것도 밸류체인의 생산지 한쪽 끝과 관련해서 일했던 경험은 그 이후로 내가 마시는 모든 커피를 그 경험 이전의 것과 다르게 만든다.


커피 한 잔 속에는 사람이 있다. 점심시간 끝무렵에 급하게 사 들고 가는 아메리카노 한 잔에도, 우유 시럽 크림으로 다디달게 멋 부린 스타벅스 커피에도, 사람의 이름과 사람의 얼굴이 있다.


그것은 커피나무에 든 해충 때문에 근심하던 농부의 주름진 얼굴이었다가, 부모님을 도와 손 빠르게 커피체리를 따던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이었다가, 커피를 키워 아이들을 길러냈다던 협동조합원의 자부심에 찬 얼굴이 되기도 하고, 계약서 앞에서 고심하던 작황 좋지 않던 해의 조합 사무소장 얼굴이 되기도 한다.


커피 한 잔이 내 테이블 위에 놓이기까지 관계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그날의 커피잔에 담기고, 나는 그 특별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오늘은, 얼음이 있냐고 묻는 나를 위해 구비되어 있지도 않은 얼음을 찾아 멀리까지 가서 아이스라테를 만들어 가져다주는 어느 서비스 노동자의 친절한 얼굴과 내 미안한 마음이 이 커피 속에 담겼다.


커피는 언제나 사람이고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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