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태도에 어떤 선의가 있었는지 이제 나는 이해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첫 직장에서의 경험은 사회생활에 대한 내 태도와 생각을 많은 부분 형성했다. 그중에서도 의식적으로 되새기는 한 가지가 바로 '모든 일은 선의로 생각한다'이다. 조직 내 미션과 비전을 만들어가는 시기였던 당시 조직은 구성원들이 워크숍을 통해 직접 선정한 열 가지 행동강령이 있었지만, 내가 입사하기 직전 만들어졌던 터라 모든 항목을 깊이 이해하거나 동의하진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 문장만큼은, 애써 이해해야 할 일들이 많았던 사회 초년생의 마음에 평상심과 긍정을 가져다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설사 그게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상대방의 의도가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생각하는 어떤 다른 종류의 선을 구현하기 위한 거라 전제하면 살짝 뒤로 물러나 합의점을 찾을 의지가 생기곤 했다. 내게 전혀 협상권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의 선한 의도를 찾다 보면 이해의 실마리가 생겼고, 그건 '알아서 기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내가 '상대방의 의견에 따르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고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생각했다. 상대방의 선의를 파악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은 내가 특출 나게 역지사지가 잘되는 사람 이어서라기보다는 그저 꽤나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선의가 깔려있는 사람들 속에서 지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처음 만난 날 내게 던진 첫 질문, 우호적이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던 그 한마디가 나는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쌔함이었다는 걸 지금에서 와서 돌이켜보니 알겠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느낀 너무 많은 물음표가, 단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내가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여러 동료들로부터 전후맥락을 듣고 나니 애초에 나 혼자 풀 수 없는 문제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았던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또 질문할 수밖에 없었지만, 객관적으로도 자기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나의 무해한 질문마저 비틀어서 해석하는 그 태도에 어떤 선의가 있었는지 이제 나는 이해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뒤늦게 시도한 나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이미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고한 뒤였음을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경험과는 매우 달랐던 나의 행동이 '놀라웠다'라고만 표현하는 그가 나에게 앞으로도 '말대답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리라는게 너무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선의가 있는지 더는 애써 파악하고 싶지 않았다. 짧은 경험일지언정 '말대답'이라는 가부장적인 단어가 이 집단 내에서 유효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조직 내에서 가장 밀접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마치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는 듯 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혼란스러웠다. 이제 좀 알겠다 싶었던 모든 것들이 다 와르르 무너져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으면서, 비로소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밑줄 그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이젠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
학문과 예술에 입문한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이지만,
어떤 대상(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도 떠올려야 할 말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중
그 사람의 선의가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믿었던 시간을 지나, 선의가 과연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나는 이제야 조금 더 알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 조직이 추구하는 바가 뭔지는 알겠다 싶었다가, 모든 게 다시 혼란스러워진 지금 나는 조직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걸까? 어느 쪽이든 여기서 판단을 끝내서는 안 되는 걸까? 각 사람의 선의가 어떤 지점에서 합의 가능하다고 믿었던 게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던 걸까? 나를 향한 그의 선의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사람 원래 이런가요?'처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라던 누군가의 질문에 '모르는 상태로 내가 겪어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던 게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지금까지 겪은 게 전체의 몇 퍼센트인지 물어보고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가 최고의 동력인 내가 시작도 못해보고 영영 재미를 잃을까 봐, 내 걱정은 오직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