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기득권자 말고 서로 불편함을 꺼내놓고 합의하는 동료
전 직장에서 같은 팀으로 일하던 동료를 오랜만에 만났다. 다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나에게 '요새 들어온 직원들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는 그는, 새로운 동료들이 본인의 직장생활의 안녕을 해치고 있다는 뜻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몇몇 팀원들은 눈빛만 봐도 서로가 원하는 걸 알 수 있는데, 기존 팀원들 간의 편한 관계를 감히 따라 하는 뉴비들의 행동이 버릇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꼰대가 될까 봐 별 말도 못 한다며 자조하는 그에게, 과연 신입들이 몇 년 차가 되었을 때, 혹은 어떤 기준을 충족할 때 기존 멤버들만큼 편하게 행동해도 되는지 되물었다.
우리가 신입일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몇십 년간 쌓여온 조직 내의 규범과 문화를 습득하는 데 몇 년이 걸리지 않았었냐는 그의 대답을 듣자, 이직한 지 곧 삼 개월이 되어가는 나의 새 직장과 그 속에 적응하느라 고전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 직장과 달리 나의 새로운 직장은 창립 7년이 조금 안된 신생 조직이다. 최근까지 가파른 성장세인 까닭에 현 구성원의 평균 근속 기간은 2년을 넘지 않고, 만나는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작년하반기부터 올해 사이에 입사했다는 자기소개를 듣는 일이 흔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조직에서는 나이와 연차에 따른 전통적인 위계를 강조하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드물다. 기성 조직에서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체계 중에서도 없는 것이 많고, 그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기도 했지만 매우 많은 규칙이 지금도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 구성원이 새로운 구성원에게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이 조직의 전통적인 규범이라기보다 본인이 전 직장에서 가지고 온 방식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 방식이 맞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근거는 내가 경험한 합리성과 효율성이지만,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구성원 사이에서 그 근거는 이전에 가졌던 절대적 우위를 크게 잃는다. '우리는 원래 이래'가 아닌 '이게 참 좋더라'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그에 동의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설득이 언제나 매끄럽게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우당탕탕 삐그덕 삐그덕 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 양쪽 모두는 발언권을 갖는다. 문화의 충돌은 더 잦고 설명이 꽤 필요하다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단점일 수도 있다.
반면에 자기의 주장을 상대방이 받아들이게 하기까지 이러한 설득이 필요 없는 사람을 우리는 ‘기득권자’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원래 이런 것’이 많은 조직에는 언제나 그 규범을 내재화한 기득권자도 있게 마련이고 그들 대부분은 그 규범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외집단으로 규정짓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과정을 수월하게 이끌어주지는 않는다. 꼰대, 보수주의자, 빌런 등 직장 내 여러 비슷한 개념이 있지만 나는 본인이 가진 힘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특권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들을 기득권자라 부르고 싶다.
많은 장점을 가졌고, 그래서 퇴사 이후에도 친하게 만날만큼 애정하는 나의 동료에게 나는, 우리가 경험했던 신입 시절과는 조직문화도 사회도, 세대의 가치관도 크게 달라졌음을 인정하라고, 그리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기득권자 말고 서로 불편함을 꺼내놓고 ‘합의하는’ 동료가 되어주라고 말했다. 크게 동의하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본래 기득권자란 본인의 기득권을 인식하는 그 단계까지 가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니까.
쌓이는 연차를 통해 확보한 많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 자산이 된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이 자산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가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생활 13년 차에 내가 얻은 답은 ‘나만큼 가지지 못한 자가 나보다 더 빠르고 쉽게 자산을 모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산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어떻게 쓰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