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굴포스가 콸콸콸 넘쳐흐르는 광경을 보러 다시 아이슬란드에 갈 거야
게이시르부터 골든서클의 마지막 장소인 굴포스까지는 차로 10분 남짓 걸렸다. 여행지에서 그 정도면 보통 걸어서도 슬렁슬렁 갈만한 거리지만, 영하 17도의 날씨에서 계속되는 야외활동은 모든 평범한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미 혈관까지 얼어붙는듯한 극한의 추위를 경험하고 있던지라 이동하며 차 안에서 몸 녹일 시간이 짧은 게 오히려 아쉬울 정도였다. 체온유지를 위해 죽기 살기로 에너지를 쓰고 있는 모두가 ‘후딱 보고 오자’라고 합의 아닌 합의까지 했지만 급격히 컨디션이 안 좋아진 살별의 눈치도 살살 보이고 다들 실제 얼마나 괜찮은 건지 가늠하는 데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라는 말은 누구 입에서도 선뜻 나오지 않았다. 평균연령이 반 팔순인 우리 그룹은 출발 전부터 ‘무리해서 보는 것보다는 안전과 건강이 최고다’를 외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굴포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굴포스는 폭포가 많기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도 최대 규모이자 최고의 장관으로 손꼽힌다. 수많은 폭포 이름이 아이슬란드어로 폭포를 뜻하는 포스(Foss)로 끝나 분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말로 하면 황금이라는 뜻의 딱 한 음절 굴(Gull)이라 이름 외우기도 쉽다. 웅장한 폭포수가 석양빛을 받을 때 금빛으로 빛나기 때문에 황금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시간상으로 몇십 분만 있으면 석양이 드리워질 타이밍이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 장관이라는 굴포스는 마치 메두사 머리를 본 듯이 딱딱하게 굳어 거대한 빙판과 빙벽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빙하에서 발원한 물이 넓은 평원으로 쏟아져 흐르다가 11미터 높이의 가파른 벽으로 낙하하고, 곧이어 다시 직각에 가까운 21미터 벽을 따라 떨어진다는 압도적 위용은 난생처음 보는 규모의 얼어붙은 폭포를 통해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는 엄청난 물보라가 일어서 폭포 위로 항상 수증기와 무지개가 만들어진다던데 그 역동적인 풍경을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그만큼 많은 물이 어떻게 흐르던 그대로 이렇게 꽁꽁 얼어붙을 수가 있는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신기했다. 폭포 1단이 떨어져 내리는 11미터 아래에서는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코스가 있다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떤 길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폭포를 내려다보는 탐방로도 만들어져 있었으나 추위를 무릅쓰고 계단을 올라가도 언 폭포의 풍경은 비슷할 것 같아서 아래로도 위로도 움직이지 않고 폭포 주위를 빙 둘러가며 구경했다.
큰 폭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이아가라나 이과수와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폭포가 떨어져서 너른 물과 만나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배를 타고도 볼 수 있는 이들 폭포와는 달리 굴포스가 떨어지는 곳은 좁은 협곡 틈이다. 분명 어딘가로 흘러들어 가겠지만 눈으로 그 끝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빙하기 말의 빙하의 대홍수와 단층활동으로 인해 이렇게 깎아지른듯한 지형이 생겨났다고 하니, 이제껏 달려오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던 지형들이 과연 젊은 땅이기 때문에 청년과 같은 힘과 역동성이 느껴졌구나 싶었다. 훨씬 더 오랜 세월 깎이고 쌓인 한반도의 부드러운 지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자리에 서서 구경하면 이내 체온이 떨어지길래 일부러 계속 걸어 다니면서, 영상 하나 찍고 잠깐 손가락 녹였다 또 사진 한 장 찍고 손을 녹이다가 얼마 오래 있지 못하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게이시르처럼 더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라며 주차장 쪽으로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 멀어지는 굴포스의 얼어붙은 풍경을 찍고 또 찍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이겠지. 다시는 한겨울의 아이슬란드에 오지 않을 거니까. Never say never ('절대 아니다'라고는 절대 말하지 말라)라고 했으니까 긍정형으로 말해야겠다. 나는 꼭 굴포스가 콸콸콸 넘쳐흐르는 광경을 보러 다시 아이슬란드에 갈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거대한 빙벽이 된 얼음덩어리의 굴포스가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에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폭포 쪽을 바라보며 뒤로 걸어 차에 돌아왔다.
골든서클을 빠져나와 첫날 머물 곳으로 정한 셀포스 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다. 노라가 미리 짜서 프린트해 온 여행계획 상에는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또 다른 관광지가 표시되어 있었으나, 마지막 한 시간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노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차는 숙소로 직행했다. 가도 가도 눈 덮인 산만 보이는 길을 한참 달리고 있는데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져 네비는 도착까지 3분 미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대체 이런 첩첩산중에 무슨 사람 사는 마을이?' 하면서 큰 커브길 하나를 넘는 순간, 마치 요정의 마을처럼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반짝반짝한 셀포스가 나타났다. 자연도 마을도 사람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게 보통인가 여기는.
셀포스 인구가 6300여 명이라고 하던데 겨우 두 개 초등학교 학생수 (요새는 세 개 정도일 수도 있다. 한 학년 12반까지 있던 내 초등학생 때 기준. 너무 옛날이죠?) 만큼이라고 하니 나름 큰 마트가 두세 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저녁을 만들어 먹으려고 장을 먼저 보러 갔는데 우리 도착 전 며칠간 왔다는 폭설 때문인지 물건이 많이 비어있었다. 내 안의 물음표 살인마가 드릉드릉하면서 이 나라의 주요 산업과 유통구조가 궁금해지는...... 건 집어치워, 노라가 야심 차게 가져온 양념으로 닭볶음탕 해먹을 생각에 언 몸을 녹일 새도 없이 짐을 던지듯 풀고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오늘의 숙소는 작은 오두막, 성비가 3:1이었지만 남매가 한 방을 쓰는데 거부감이 없어서 다행히 둘둘씩 순조롭게 나뉠 수 있었다. 오후 6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지만, 체감상 밤 10시 같은 기분으로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저녁을 먹었다. 샘표 닭볶음탕 양념도 훌륭했고, 아이슬란드의 감자와 치킨도 특출 나게 맛있는 게 분명했지만, 하루종일 추운 데서 부지런히 움직인 우리의 고생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맛이었다. 여행 내내, 그리고 여행 마치고 난 뒤 돌아와서도 종종 이야기할 만큼. 그리고 어르신의 여행답게 각자 챙겨 온 영양제를 산더미처럼 모아서, 식후 여러 가지 영양제를 나눠 먹었다. 우리는 술 먹고 병나서 약 챙겨 먹는 애송이들이 아니야, 미리 챙겨 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끝날까지 체력 풀충전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슬픈 전설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