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풍경 앞에서 감탄도, 농담도, 걱정이나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일정에 쫓기지 않는 아침이었다. 늦게까지 놀다가 잠들었지만 어쩐지 푹 잔 것 같은 개운함이 느껴졌다. 여름에도 뜨거운 물 샤워를 잃지 못하는 나는 사실 날씨보다는 통나무 로지의 온수 온도가 더 걱정이었는데, 화장실은 빵빵한 개별난방기구 덕에 침대가 있는 방보다 뜨끈했고, 뜨거운 물은 대기시간 없이도 바로 콸콸 쏟아졌다. 화산과 빙하의 나라를 과소평가해서 죄송합니다. 하기야 난방 온수가 안되었다가는 바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만큼 극한의 날씨이니 더욱 잘 정비되어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오늘 이동 중에 먹을 점심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제 먹었던 차디찬 주먹밥 한 덩이가 점심으로 부족했던 감이 있어서 오늘은 핫도그도 하나씩 만들어서 챙겼다. 미리 핫팩 하나 까서 봉지 안에 넣어두면 점심때까지 따끈하게 유지할 수 있겠지. 아쉬움을 발판 삼아 여행이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옆방에서는 반석이 아침으로 먹을 햄버거를 조리하다가 번을 태워먹고 수습 중이었으나, 이 정도 실수는 깔깔 웃으며 넘길 만큼 새 아침의 우리 모두는 여유가 있었다. 체크아웃 준비를 하고 차에 짐을 싣기 전까지는….
아침부터 노라는 “어제 이렇게까지 뻑뻑했나?” 라며 숙소의 나무 문과 힘겨루기를 했다. 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밀자 그제야 밤사이 살짝 얼어서 문 틈새를 막은 눈이 묵직하게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어젯밤 캐리어를 끌고 들어올 때도 양쪽으로 치워 놓은 눈이 정강이 높이로 쌓여 있긴 했지만, 우리가 신나게 저녁 먹고 노는 사이에도 눈이 계속 왔는지 아침이 되자 치워 놓은 길과 쌓아둔 눈더미의 경계는 어느새 모호해져 있었다. “아니, 분명히 밤에 잠깐 나왔을 때는 전혀 낌새도 없었는데, 자는 사이에 이렇게 눈이 내린 거야? 소리도 없이?” 말도 안 하고 한참 쌓인 눈이 야속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원래 내리는 눈이 소리를 낸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낑낑대며 숙소부터 주차장까지 캐리어를 끌고 왔더니 빠릿빠릿한 노라는 벌써 어디서 플라스틱을 가져다가 차량 지붕과 앞유리에 쌓인 눈을 긁어내고 있었다. 늘 공동체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그 앞에서 자기 짐 먼저 챙긴 나는 머쓱하게 뒷트렁크에 내 짐을 싣고… 바퀴 근처에 있는 눈부터 빨리 치우고 차가 지나갈 길을 급히 만들어 보았으나 눈발은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아이슬란드에는 ‘만약 지금 날씨가 맘에 안 들면, 딱 오분만 기다려봐(If you don’t like the weather, just wait for five minutes)’라는 말이 농담처럼 전해진다고 들었는데, 이미 오분은 지난 지 오래였고, 낮이 채 네 시간도 되지 않는 겨울 아이슬란드에서 오늘의 목적지들을 밝을 때 다 돌아보려면 지금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적설량만큼이나 놀라운 제설속도와 기술을 오면서 이미 봤기 때문에, 숙소를 빠져나와 1번 국도 링로드를 타기만 하면 도로 상태가 어느 정도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 마을에서 바로 이어지는 최단거리 합류지점은 전면 통제 중이었다. 점점 거세어지는 듯한 눈발을 뚫고 구글지도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국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엉금엉금 가는데 어쩐지 갈수록 드물게 보이던 민가도 사라지고 허허벌판으로 빨려드는 느낌만 들었다. 걸어가는 것만큼 느린 속도로 차를 몰다 보니 커다란 제설차가 쓸고 간 흔적도 어느덧 끝나고, 이제는 눈 쌓인 흔적 외에 아무 발길도 없는 미지의 눈밭이 펼쳐졌다. 처음에 걱정된다 무섭다 한 마디씩 보태던 목소리는 잠잠해진 지 오래였고 운전자 반석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서부터 차에 탄 모두가 긴장과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혜빈, 잠깐 창문 좀 열어볼래? 지금 너무 김이 서려서 밖이 하나도 안 보이네.”
“(창문을 열며) 근데, 이거… 김서림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 보이는 거 같아. 창문을 열어도 시야가 똑같아.”
뭐가 좀 보여야 방향감이나 거리감이 생길 텐데 창밖에는 정말 문자 그대로 아. 무. 것. 도. 보이지 않아서 희뿌연 김서림 상태와 비슷했다. 사람이나 짐승은 물론이고 집 한 채, 전봇대나 바윗덩어리 한 개조차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는 압도적인 위용으로 길을 따라오던 먼 산의 형체도 눈보라에 완벽히 가려졌는지 사방이 온통 흰 도화지 같았다.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서 감탄도, 농담도, 걱정이나 불평도 할 수 없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차가 길을 벗어나 깊이도 가늠 안 되는 눈밭에 빠지거나 고꾸라지는 상황이었다. 사방에 도와줄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데 자꾸 렌터카 회사 직원이 첫날 말했던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하지 마'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평소에는 위험 인지가 낮다는 말을 듣는 데다 운전도 못하는 나마저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강하게 왔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모두의 마음이 어떨지 알기에 불안을 보태기보다는 차를 몰고 길잡이를 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그 와중에 하늘은 조금 더 밝아져 멀리서 몰려오는 더 커다란 회색구름이 보였다. 이 길가에 서서는 그 구름을 피할 길이 없었다. 무서웠다. 뒤로 돌아가든 빨리 빠져나가든 선택해야 할 때였다. 말없이 뒷좌석에 앉아있던 살별이 불안한 목소리로 ‘숙소로 돌아가자’를 제안했지만, 차를 돌릴 구석을 찾는 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우리는 다른 국도에 합류하기까지 절반 넘게 왔음을 확인하고 그냥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마침 좌회전을 해야 할 상황이었고, 라이트에만 의존해서는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조수석에 앉아있던 노라가 문을 열고 길 위에 섰다. 방금 전까지 불안해서 속으로 울고 있었는데 우리 팀의 두 운전자가 합동작전으로 차를 잘 돌리고 나니 농담할 기력이 났다. 흰 벌판에 서서 굵은 눈발을 맞으며 차를 인도하는 쿨톤의 노라가 눈치 없게 영화처럼 아름다웠다고.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지만.
그 고비를 넘기자 신기하게 눈발이 조금 잦아들었다. 물론 제설작업이 완료된 도로를 만나기까지 한두 번 더 고비가 있었지만 일단 내리는 눈이 줄어들자 앞이 보였고, 반석의 운전은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안심하게 할 만큼 노련했기에 다들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중간에 한 번 돌아가자고 했던 살별이 먼저 '이런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길었던 침묵을 깼다. 모두 처음 겪는 위기였고 우리 중 누구도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전과 생명이 달린 길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 사고 없이 그 길을 빠져나오는 드문 행운을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무서웠지만 내 한 마디가 모두의 불안을 가중시킬까 봐 잠자코 있었던 나처럼,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슬란드 여행 중 가장 아찔했던 한 시간이 끝났음을 감사하며, 모두 애써 손뼉 치고 기뻐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지만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또 이런 선택의 순간이 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안전을 추구하자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다행히도 여행이 끝나기까지 이만큼 긴장감 넘치는 선택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숙소에서 10분 만에 합류할 수 있었던 1번 국도는 17km를 돌아서야 진입할 수 있었다. 셀포스에서 바로 들어갔다면 8km쯤 지났을 지점이었다. 오늘 아침의 그 공포가 꿈인 것처럼 도로는 깨끗하고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고, 남아있는 눈가루들만 바람의 패턴에 따라 불규칙한 그림을 그리며 흩날렸다.
여행을 떠나기 전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슬란드의 험한 날씨와, 그로 인한 돌발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렌터카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바람에 문짝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도로 주행 중에 화산탄들이 튀어 창문이 깨지거나 타이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 그밖에 눈 때문에 발이 묶이거나 비행기를 놓친 이야기는 아주 흔했고 바로 이번 해에도 레이캬비크 근처에서 활화산이 폭발하는 바람에 며칠간 모든 항공편이 결항되었다고 했다. 흔히들 인간의 위대한 점을 말할 때 자연과 맞서 싸워 결국 자연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지만, 아이슬란드를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이 감히 대자연을 맞서 싸울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가장 발달된 문명을 가진 현대의 최첨단 기술로도 화산재를 뚫고 비행기를 띄울 수 없고, 눈보라 속에서 안전하게 자동차를 주행할 수 없는데, 농사를 짓고 자연에서 나는 것으로 영위하는 삶이란 그저 자연이 이토록 격변하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이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성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아름다울 때 마음껏 누리고 날씨가 궂으면 나가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노할 때는 그 화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고, 틀림없이 다시 찾아올 밝고 맑고 아름다운 날을 소망하는 것.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따뜻한 곳에서.
누군가 여행 중에 대자연을 보며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라고 했다. 그 자연을 보면서 들어야 비로소 왜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이 음악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며. 뷔요크(Björk), 시규어 로스(Sigur Rós), 요한 요한슨(Johann Johannsson)까지 내가 아는 모든 아이슬란딕 아티스트의 음악을 첫날부터 계속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달렸지만, 딱 평소 느끼는 그만큼의 호감 외에 특별히 더 와닿는다거나 하진 않았다. 차에 탄 모두에게도 그런 듯해서 눈치껏 플레이리스트를 세팅하느라 아주 바빴다. 공포에 가까운 눈보라를 한번 지나오자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들의 그 음울하고 몽환적인, 정말 이상하기까지 한 음악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단지 하루이틀 이곳을 지나간다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아님도 확실히 알겠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 그 자연 속에 사는 삶의 태도, 북반구 끝에 정착해서 나라를 일구어온 아이슬란딕 민족의 그 정서와 문화를 핏줄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나는, 이 하얀 벌판을 보며 계속해서 이승환의 '붉은 낙타' 속 가사만 생각날 뿐이었다. 십 대 시절부터 뜻도 모르면서 좋아했던 그 가사 속 은빛 사막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면서, 내 혈관에 흐르는 90년대 한국가요를 내내 흥얼거렸다. '난 가고 싶어 은빛사막으로, 난 가고 싶어 붉은 낙타 한 마리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