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제게
‘실망이야’라는 말을 하셨어요.
늘 지지적이었던 아버지에게 ‘꿈을 찾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더니 보이신 반응이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그가 말했다.
상대방이 이제까지 꾸준히 주었던 삶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피드백을 처음으로 줄 때 듣는 사람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오해가 있었는지 짚어가거나 이 관계를 포기하거나 양단의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가족이라면, 특히 부모님이라면 (대개는) 한 가지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 사이에 있어왔던 긴 오해의 시간은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상대방의 말이 실언이었건 진심이 아니었건 상관없다. 못 들은 것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 상처는 흐려질지언정 영원히 남는다.
하지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가지고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숱한 상처를 안고서도 버릴 수 없는 우리 삶 속의 많은 관계들이 그 증거이고, 가족은 그런 관계의 표본과도 같다.
다르게 말하면 관계를 끝내는 당사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의지를 가지고 지키고자 한다면 그 관계는 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관계의 끝은 의지의 문제이지 그 밖의 모든 것은 당사자의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는 말.
결국 그는 상처를 안고서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야 할 테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로 이전과 다름없는 관계를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성숙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꼰대 같은 말들이 그를 위로하는 말이어도 좋았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각하는 데 유용했으면 하고 바랐다. 깊은 상처를 안고도 그 관계를 지켜내기를, 부디 굳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