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휴가를 떠나 있는 나에게 급한 상담이 필요하다며 언제 오냐고 묻는 한 청년의 카톡을 받았다. 일로 엮인 관계는 아니라서 서둘러야 할 일은 없겠고, 그렇다고 평소에 친구처럼 편하게 연락하던 사이도 아니라서 대체 무슨 일일까 의아해하던 중 연애 얘기라는 뉘앙스가 풍겼다.
뭐지... 내가 그렇게 연애를 잘하는 이미지였나...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해결될 수도 있다며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일부러 귀국 후에 먼저 연락을 하지도 않았는데 오늘 점심시간에 통화할 수 있냐며 먼저 갠톡이 왔다. 무슨 일인가 들어보니 결국 처음에 묻고 싶었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해결점을 찾았고, 오늘 전화 한 이유는 전혀 다른 거라 했다. 연애 얘기만큼 흥미진진하진 않았지만 이십 대 초중반 소년의 풋내가 느껴지는 소소하지만 작지 않은 생의 고민들. 나름 어른처럼 그러나 꼰대 같지 않은 답변을 해 본다.
연애 상담을 한 건 아니었지만 거의 할 뻔했던 사람으로서, 왜 그 주제의 상담을 내게 가져올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와 같이 했던 모임에서 나눴던 나의 짝사랑 이야기가 꽤 인상 깊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무슨 얘기였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클 때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카톡을 했어요. ‘오빠, 제가 지금 자다가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자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말하고 자려고요, 오빠 너무 좋아요.’라고.
나도 정말 좋아하는 에피소드라는 게 떠올랐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순간을 살고자 하는 내 삶의 방향성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마음에 쏙 드는 내 모습. 실제로 죽음의 공포나 걱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도 좋아한다는 말을 당장 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던 쿵쾅쿵쾅 대는 심장의 박동을 아직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 2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제는 그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내 짝사랑 공세가 뭔가 잘 먹혀 들어가서 결실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싶지만 원래 세컨드 게스란 다 쓸데없는 공상이니까, 결국엔 시간 지나면 다 이렇게 될 마음, 아낄 게 하나도 없다는 데 오늘 더 큰 확신을 얻었다.
이 친구가 나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정확한 질문은 뭐였는지 확인 못했지만, 나는 아마도 고백할까 말까라면 고백을, 사귈까 말까라면 사귈 것을, 받아줄까 말까라면 일단 받고 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 모든 마음과 감정들이 언젠가는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마음일수록, 아니 그렇지 않은 마음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흔적 하나쯤은 남겨 놓아 주는 것이 내 안에서 피어난 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러니까 다 꺼내놓고 살려주고 좀 찌질하거나 주접을 떨더라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 세상에 아껴서 좋은 마음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