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단어

화장실

by 담쟁이

회사를 비롯해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태 중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손을 안 씻고 나가는 것도, 물을 안 내리고 나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볼 일 보고 물을 안 내리는 게 용서가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말로 깜빡했거나, 아니면 변기 고장 때문이지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골탕 먹이려는 의도는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를 정말로 분노케 하는 화장실 비매너는 자기가 쓴 화장지를 바닥에 버려둔 채 나가는 것이다. 남자화장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인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휴지통이 구비되어있는 여자화장실 칸에 들어가 보면 (요새는 사용한 휴지를 휴지통이 아닌 변기에 넣으라는, ‘휴지통 없는 화장실’도 많아졌다.) 어김없이 휴지통 안에 정조준되지 못한 휴지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가끔은 젖거나 밟혀 매우 지저분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곤 하다. 기껏해야 1 제곱미터 남짓 되는 그 공간에서 자기 팔의 동선 안에 휴지통이 없을 리 만무한데도 다 쓴 휴지를 골인시키지 못하는 것은 백번 양보 해 운동신경 부족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떨어뜨렸다손 치더라도 그걸 다시 주워서 넣는 데에는 허리를 굽힌다거나 손을 뻗는 정도의 운동능력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이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나가는 심리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건지 화가 나기 이전에 궁금한 마음이 커져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단순하게 보면 그것은 귀찮음일 것이다. 내가 저 화장지를 줍기 위해 취해야 하는 추가적인 동작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것.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고, ‘어차피 누군가 청소할 바닥인데, 내가 버린 휴지 하나 더 떨어진다고 크게 더 힘든 것도 아니고’ 하는 마음.


귀찮음의 어원이 귀하지 않음, 즉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데서 왔음을 생각할 때,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게 귀찮은 사람들은 그 더럽고 하찮은 일을 하기에 나는 너무 깨끗하고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미 바닥에 떨어진 휴지는 다시 줍기엔 이미 너무 불결해서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만졌으면 좋겠고, 어차피 더러운 바닥은 누군가 청소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나는 아니고. 따라서 이것은 실수일 수 없다. 대신할 누군가를 떠올렸던지 ‘내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생각 없이 떠넘겼든지 내겐 귀하지 않은 일을 누군가 할 거라는 전제가 깔린 고의적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에 분노한다. 얼핏 보기엔 단지 손을 안 씻는 것과 비슷한 게으름으로 보이지만 그 행동 밑에는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돼먹지 않은 계급의식이 깔려있고, 사람과 그 사람의 하는 일에 있어 귀천과 층위를 나누는 그 생각이 결국 모든 차별과 불평등을 합리화하고 고착화하는 주요 논거가 되기 때문이다.


화장실 갔다가 너무 거창 해지는 거 아닙니까 싶어도 별 수 없다. 나는 휴지를 떨어뜨리고도 줍지 않은 마음의 기저에서 분명히 그런 싹을 보니까, 몇 년 전에도 그랬도 지금도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한다.


“지금 떨어뜨린 그 휴지를 줍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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