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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Nov 05. 2019

열심히 못하지 말고 대충 잘하세요

결과와 과정에 대한 평가만큼은 확실히 분리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못하지 말고 대충 잘해라"


과정은 무시하는 결과 주의자의 일성 같지만, 이 문구는 언젠가부터 내 업무 책상 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항상 붙여져 있다. 어르신들 쓰시는 표현으로 '머리카락에 홈을 파는' 성격의 나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언제나 선이라고 어릴 적부터 배우고 또 믿었다. 성실한 삶이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열매들은 대체로 그 믿음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

첫 직장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처음으로 후임이 생기던 때에도 함께 일하게 될 사람에 대한 나의 관심은 '성실한 사람인가'였다. 그 기준에서 보면 그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보다 일찍 와서 업무를 점검했고,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열정적으로 일 하는 사람이었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인재상이라고 할 법했다.

하지만 열심은 언제나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오랜 성실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수가 잦은 사람이었고, 숙련은 더뎠다. 우리의 일터는 인간적인 곳이었지만 여유 있는 곳은 아니었고, 그가 같은 잘못을 반복할수록 내가 감당해야 할 타격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의 아이콘과도 같은 그에게 선뜻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착한’ 그에게 ‘나쁜’ 말 한마디 하는 순간 내가 하는 말이 일일이 대꾸할 가치 없는 모진 말이 되어버리니까. 몇 개월을 더 버티던 그는 결국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 본인이 이 업무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난생처음 맡은 선임이라는 역할은 막연한 책임감과 기대로 시작했지만 결국 내게 실패의 경험을 남긴 채 끝났다.

마지막이 될 식사를 하면서만큼은 모질고 싶지 않았기에 그간의 마음도 풀 겸 점심시간부터 고기를 구우러 갔던 우리 둘은 이전에 없던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마음이 풀어질 대로 풀어진 그가 건넨 한 마디는 그때까지 우리 사이에 감돌던 모든 훈훈함을 일순간 식혀버렸다.

"쌤은 정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분이신 것 같아요. 저는요, 걸어가면서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힘들면 쉬어서 가고 싶은 사람이라서요, 쌤 같은 분이 정말 대단해 보여요."

곱씹어보아도 자극적인 구석은 하나도 없는 말이었다. 오히려 나를 높여주는 칭찬과 부러움의 말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해서는 안 될 말이기도 했다. 지난 몇 개월 간 나와 여러 사람을 괴롭혔던 그의 결과물들이 '쉬면서 걷고 싶은' 적극적 의지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그의 결과물을 놓고 결국 이 사람에 대해 고민했었던 이들에 대한 배신이자 조롱으로까지 느껴졌으므로. 물론 그때도 지금도 잘 알고 있다. 그 말을 하던 그에게는 그 어떤 나쁜 의도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일종의 자극제가 되어 내게 꽂혔고, 나는 묻어두었던 날카로운 말을 꺼내어 찔렀다.

"쌤 저도 하늘 보는 거 좋아해요. 꽃 보면서 앉아서 쉬다가는 거, 저만큼 좋아하는 사람 없을걸요. 그런데, 돈 받고 일하시잖아요. 여기 교회 아니에요. 쉬는 건 집에 가는 길에 백 년이고 천년이고 맘껏 쉬세요.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걷는데 혼자 쉬고 싶다고 어기적거리면 어쩌자는 거죠? 그 정도도 분간 못 하고 여기서 일하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빈번했던 그의 눈물을 볼 때마다 뒤에서 갈등했던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그와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일은 다시없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서점을 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못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실패와 무능보다 더 나쁜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할 수 없도록 열심과 성실로 '덮어버리는'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그게 어려울 때마다 이 이야기 속 그와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잘하고 못하는 것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결과와 과정에 대한 평가만큼은 확실히 분리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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