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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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 한적하다면 한적하고 번잡스럽다면 번잡스러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지난 연인과의 이별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도망치듯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순신 광장, 여수 딸기찹쌀떡, 밤바다, 술집. 하루의 모든 시간들을 알차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이곳은 내가 머물던 서울과는 다른 분위기의 도시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에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금토일 밤마다 홍대나 이태원, 강남 같은 번화한 도시들의 밤 문화를 즐겼다. 직장에서는 내가 착실하고 놀 줄 모르는 일 중독자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주말만큼은 그간 쌓아 놓은 스트레스는 해소하려는 듯 온 힘을 다해 난잡함과 어둠을 즐겼다. 처음부터 그런 루틴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결혼까지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결코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한 순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벽처럼 만든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돌아볼 수 없는 이별을 한 뒤부터 나는 한풀이를 하듯 그렇게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다니며 외로움을 삼켰다. 클럽에서 만난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매주 약속을 잡고,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손을 잡은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의 그와 나는 달의 시작은 함께 했지만 다음 날 찾아오는 해의 시작은 단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했고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삶을 살다가 무료한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는다는 번아웃이 왔고, 정신질환에 가족력이 있었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성분도 모르는 약을 복용하고 강제로 입원까지 당했다. 나는 나를 갉아먹는 직장과 가족들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걱정이라는 부정적 환경을 피해 회사에는 안식년을 신청하고 온전히 쉼을 위해 이곳에 1년 치 월세를 선지불하고 이곳 여수로 대피했다.
5층 빌라, 그중 3층에 해가 가장 잘 드는 넓은 방 한 칸. 내 임시대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