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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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동네의 백수가 되었다. 두 달 언저리까지는 평화로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무엇 하나라도 생각이 나면 그 일에 몰두하는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대부분은 비활동적인 것들이었다. 외출은 자제했고 땀을 흘리는 신체적 활동은 극단적으로 배제했다.) 그러다 한 가지 찾게 된 나의 새로운 관심사는 독서였다. 어릴 적부터 앓고 있는 우울증은 나를 그 무엇에도 깊이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기질적인 성격 때문에 무엇이든 짧은 관심과 도전을 반복했고 그에 따라 너무나도 쉽게 찾아오는 무력감은 나를 매번 무너트렸다.
이런 삶에 실증을 느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고, 일주일 만에 집 밖으로 외출을 감행한 노을 지는 저녁 7시의 하늘 아래 발을 내밀었다. 목적지는 이전부터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던 동네 가장 안 쪽에 위치한 조금은 외진 골목에 위치한 낡은 건물의 독립서점이었다.
서점의 문을 열었다. 파란 풍경종이 나를 반겼다. 켜켜이 쌓인 책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먼지 쌓인 책 향기가 가득했고, 평소 모든 기억을 향으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아직까지도 처음으로 방문했던 책방의 포근한 먼지 향을 기억한다.
책방에 발을 들이고, 기분 좋은 풍경등 소리와 책의 향을 느낀 후 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짙은 색의 원목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카운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외부인과의 접촉을 기피했기에, 사람 목소리에 조금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가벼운 목례를 건넸다.
그 사람이 나에게 다시 한번 더 말을 걸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며 책방 내부를 살폈다. 늘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인지라, 그는 이내 다시 한번 나를 향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왔다.
저희 책방 처음 오셨나 봐요. 가게가 외진 곳이라 주로 단골 분들만 방문해 주시는데 초면인 손님은 오랜만이네요. 그는 조금은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담담한 미소를 지어보내며 말을 이어갔다.
찾으시는 책 있으세요? 보시다시피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라서, 제가 좋아하는 책들로만 채웠어요. 취향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추천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는 여전히 형식적인 가벼운 미소, 어찌 보면 무뚝뚝한 얼굴을 하며 사근사근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아, 아니요.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어요. 책을 즐겨 읽진 않아서 가벼운 소설책을 찾고 있는데 하나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그가 지어 보인 미소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그의 질문에 천천히 답변했다.
제 전문이죠. 이거 한 번 읽어보세요. 가볍게 읽으시려는 아포칼립스 소설인데, 잘 읽혀요. 이것부터 읽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다시 한번 찾아주세요. 그가 아까와는 조금 다른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하나의 책을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넸다. 그가 건넨 책은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라는 단편 소설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계산을 마치고 무언가 하나라도 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주방 식탁에 책을 올려두고, 그 후 3일 정도는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직은 방문에 의미를 둔 것인지 새로운 책을 구매했다는 설레는 마음이 들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