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새, 폭발, 소리

편의점 맥주

by 해차

3.

오전 8시쯤 아침잠을 머금은 눈꺼풀을 슬며시 뜨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어 주방에 있는 작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약 봉투를 찾아 꺼냈다. 시간을 맞추어 먹으라던 아침 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또 시간이 지나버렸네.'

무기력함에 지쳐서 지나 먹은 게 몇 번 째인지. 분명 오전 7시 30분에 맞춰 먹으라는 의사의 당부 때문에 알람까지 설정했는데 이게 뭐람. 알람을 못 들은 이유에 대해 가만 생각해 보았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 일어나는 게 어렵진 않았는데. 요즘 들어 유독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배로 괴롭다. 주방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보이는 큰 창에 눈길을 옮겼다. 원인이 저거였나.


지긋지긋한 여름을 이제야 겨우 보낸 것 같은데. 내가 사랑하는 겨울이 다가오는 걸 제일 먼저 느끼라는 듯한 하늘의 압박이라도 되는 양, 이 시간쯤엔 밝아야 하는 하늘이 여전히 회색 빛이었다. 영락없는 새벽하늘이었다.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곤 하늘과 뒷 산을 천천히 번갈아 쳐다본다. 새들이 울며 날아다녀야 할 시간인데, 여전히 숲 속 어딘가에서 울리는 익숙한 새소리가 들려온다.

[ 오, 오옥- 오, 오옥- ]

매일 밤마다 듣는 새소리지만, 들을 때마다 감정인지 찌꺼기인지 모를 것을 토해내는 소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새소리가 저렇게 오묘해도 되는 건가. 불쾌하다.


터벅터벅 거실 소파에 앉았다. 작은 방이라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공간 분리를 잘해놓아서 소파에 앉아있으면 새로운 공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소파에 편한 자세로 누웠다. 그 순간 오감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였다. 영화에 나오는 캡슐이라도 되는 것인지, 그곳에 누우면 다른 것들이 느껴진다. 누워서 소파 앞 협탁에 놓인 책을 빤히 바라보았다. 책방지기가 추천한 그 책. 어제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결말이 뭐였더라 하는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다. 생각을 멈추고 창밖 하늘을 다시 살펴보니 이상하게 하늘이 더욱 짙은 회색으로 변해있는 기분이 들었다.




"G라고 불러주세요."


편의점에서 마주친 그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통성명을 했다. 밤늦게까지 어두운 방에서 주황빛 불 하나를 켜두고 위스키를 홀짝이다가 도저히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아서 시원한 맥주를 사기 위해 집 앞 편의점에 방문했을 때 책방지기를 마주친 것이다. 무표정으로 맥주를 한가득 품에 안고 과자 코너를 지나던 나를 그가 발견했다. 자기도 맥주를 가득 샀다며 날도 풀렸는데 요 앞에서 한 캔 먹자는 제안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어둠에 갇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니 나로서는 거절할리 없는 제안이었다.


"네. 저는 O라고 불러주세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그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못 이겨, 허공에 대고 대답했다. 딱 맥주 한 캔만 먹고 가야겠다 그리 다짐하면서 맞은편 골목에 걸어 다니는 취객을 공허히 주시했다. G는 그런 내 반응을 즐기는 건지, 내 그런 반응에 더욱 편안함을 느낀 건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제가 추천해 드린 책은 읽어보셨어요?"


"아, 네. 아직 결말까지는 못 봤지만 중간쯤까지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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