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 연인은 이별했고, 여자는 너무 아픈 이별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웠다. 남자는 이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차올라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뒤따라 지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사랑에 빠졌다. 운명일까, 끌림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기술의 오류인가.
나는 이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보았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당황스러웠고. 두 번째에는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세 번째에는 내용에 대한 공감을 품었다. 네 번째부터는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기술을 부러워했고, 다섯 번째부터는 기억을 지운 나는 어떨까 생각하며 그들에게 나를 대입했다. 그 후로는 영화의 분위기, 대사 하나하나의 숨은 의미와 같은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며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끝이고 슬픔은 남은 이들의 몫이거니와 나는 그들에게 그 무거운 몫을 담겨두고 떠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 순간의 선택으로 다른 이에게 같은 선택의 순간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생각한다.
내가 잊고 싶은 기억들만 잊고, 갖고 싶은 기억들만 갖는다면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죽음이라는 끝을 생각하는 이유는 삶의 리셋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나은 선택을 했을까 그게 궁금한 것이다.
어쩌면 이전 생의 나는 같은 고민을 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지금의 나로 다시 태어난 것일 수도 있겠다 상상하곤 한다. 그럼 이번 생도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그럼 옳은 선택은 무엇이지, 잘 살았다는 삶의 엔딩의 기준은 무엇이지.
나는 생각이 많다. 그중 쓸모 있는 생각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애초에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질문의 시발점마저 잊어버리는 게 문제이지만 그럼 또다시 시발점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회복실을 읽는 독자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그것만은 알려주고 싶다. 이건 어디서도 말하지 못한 내 머릿속 세계를 글로 정리하려는 시도 같은 거다.
이리 보면 감정 쓰레기통, 저리 보면 회고록, 꼬아보면 유서인셈이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 [이터널선샤인] 속 기술이 실존한다면 아마도 지울 기억과 남길 기억을 고르지 못하고, 병원 주소도 찾지 않을 사람이 바로 '나'일 것이다.
특정 기억을 지우기엔 한 가지 기억에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뒤섞여있기 때문에, 나는 좋은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가 끝내 나쁜 기억까지 다시 끌어올려버리고 마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