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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해치 Feb 19. 2019

필연적 연필, 그 고리타분한 취향에 대해 (1)

연필을 연필 연필하고 싶네요.

아마 태어나서 처음 손에 쥐게 되는 ‘쓰는’ 도구 중 하나가 연필이 아닐까. 

‘사실 나는…’으로 운을 떼고 나서 나는 어릴 때 연필심 냄새도 맡아보고, 종종 맛도 봤다고 말했는데. 여기저기서 나도 그 맛을 안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많았어서 조금 기뻤다. 아마 미대여서 그랬을지도. 


연필은 굉장히 다양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날씨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우주인들도 연필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우주용 볼펜도 있습니다.)


연필 사용의 예시(물론 이렇게 사용하면 안 됩니다.)


연필의 정의

연필 鉛筆 Pencil 은 일반적으로 원형, 삼각형 또는 육각형의 나무 가운데에 흑연 심을 박아 넣어 칼로 주변의 나무를 깎아내며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연필의 외형

어떤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원형과 사각형은 아닌 걸로 하고 있다. 

원형은 틈만 나면 데굴데굴 굴러서 자꾸 떨어진다. 바닥에 ‘탁’하고 떨어지는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브랜드: 톰보인가 파버카스텔인가 아니면 모나미냐? 

연필의 길이: 거의 새 거냐 좀 쓴 거냐?

연필심 상태: 속까지 다 아작 났을까? 제발 심 촉만 살짝 까였기를.

카펫이냐 장판이냐 설마 돌바닥이냐: 돌바닥이면 위의 ‘연필심 상태’는 포기해야 한다. 속까지 아작 나서 연필을 깎아도 깎아도 심이 뽑히는 놀랍게 열 받는 일이 생긴다.


사각형은 그립감이 지옥 같다. 모서리가 검지와 중지의 혈관을 눌러서 곧 마비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사각형 연필을 만든 사람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죽을 때까지 네모 연필 쓰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이런 나쁜 마음은 먹지 맙시다.)


디자인 적인 이유로 아직도 원형으로 제작되는 연필도 있지만 통상 육각형이나 삼각형(크레용이나 미술용과 같이 흑심의 두께가 두꺼운 경우 또는 소근육 발달이 안된 아동용)이 가장 일반적이다.


연필의 특징: 나의 시간이 눈으로 본다 는 것.

최근에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한 자루를 쥐고 써본 적이 있으신지. 조금만 써도 끝이 뭉뚝해지고(특히 4B, 6B는 거의 순두부 수준이죠), 깎을 칼과 연필 밥(깎고 난 나무 조각과 흑연 가루)도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에 필기도구로써의 연필은 샤프나 볼펜으로 대체되고 있다. 나 역시 회의실에 들어갈 땐 볼펜이나 플러스펜(어릴 때 어머니께선 늘 ‘후르스펜’이라고 하셔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게 정식 이름인 줄 알았다.)에 손이 간다. 연필은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의 중 심이 부러지거나, 필기량이 많아서 촉이 닳으면 정말 급하면 손톱으로 뜯어야 하는데 회의실에서 손톱으로 연필을 뜯고 싶지는 않다. 


나의 경우엔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할 때 주로 연필을 쓴다. 

촉이 닳아 뭉뚝해질 때쯤 다시 뾰족하게 갈면서 한숨 돌리기도 하고, 공부하며 사용한 것과 다른 근육을 사용하면서 조금 리프레쉬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때는 연필을 깎으며 멀찍이서 그림을 보기도 하고, 눈을 홉뜨고 게슴츠레하게 보며 ‘아 여기가 이게 아닌데.’ 하기도 한다. 


나는 대게 다서여섯 자루를 연필통(작은 하이네켄 맥주잔)에 꽂아 놓고 번갈아 가며 쓰는데, 연필들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는 걸 보면서 나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뿌듯함을 느낀다. 

‘내가 여섯 자루가 절반이 될 때까지 쓰고 그렸구나.’하면서.


몽당연필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너무 짧아져서 연필꽂이에 끼워도 못쓸 법 하지만 버리지 못한다. 

아마 나의 시간이 그 연필을 깎아 몽땅몽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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