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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해치 Jul 02. 2018

그림의 주제와 캔버스 크기

는 어떤 관계가.

TV나 휴대폰의 화면크기는 주로 화면 대각선의 길이를 인치(1 inch = 2.54cm)를 이용해 부릅니다.  

Example: 여보 월드컵도 다가오는데 55인치 TV사줘요.  


집은 제곱미터(m2)를(하지만 우리집은 27평), 용량은 리터(ℓ)를, 속도는 시속(km/h)으로 부르는 것 처럼 그림은 호라고 합니다 

(1호 = 가로 22.7cm 세로 15.8cm, 엽서 2개 정도의 크기). 참고로 미대 1학년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사이즈 30호 F 입니다. 교수님이 자꾸 그것 만 사오라고 하시거든요. 

네. 농담입니다. 실제 이유는 30호 F가 세부 묘샤를 하기에 너무 작지도 않고, 그릴 때 화폭이 한눈에 담길 정도의 적당한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림의 전체를 보기 힘들죠. 부분만 보고 그리다가 나중에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안 맞는 그림을 그려버리게 됩니다.  덤으로 들고다니기도 편하고, 값도 안 비싸고. 좋죠.

10호부터 50호, 100호는 일종의 표준사이즈로 화방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구매되는 크기죠. 엄~청 크거나 표준 비율이 아닌 캔버스는 주문제작이 들어가게 되는데 많이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안해봐서 가격은 잘 모르겠군요.) 캔버스의 틀(와꾸라고 부르죠. 좋은 표현은 아니니깐 캔버스 틀 또는 그냥 프레임이라고 합시다.)과 덧 씌우는 캔버스 천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특히 캔버스 틀은 나무이고, 화폭은 천이기 때문에 습기에 아주 민감하죠. 습기에 민감한 제품은 당연히 내구성이 좋을 수록 어마 어마하게 비싸짐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무엇보다)재미있지도 않으니 넘어가겠습니다. 


30호 F? 

(F/P/M)

캔버스를 지칭하는 방식은 [숫자+호+알파벳]로 되어있습니다. 아주 엄격하게 사용되는 규칙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등에서 그림의 크기를 표시할 때는 실제 가로 세로 크기를 표시하죠. 하지만 화방에서 캔버를 구입하거나, 대화 중 그림의 크기를 말할때는 ‘호’로 많이 지칭합니다.  


Example 01: 아저씨 30호 F 캔버스 2개 주세요. 얼마에요? 

Example 02: 어이 박작가, 이번에 100호 작업 3개 출품했다며. 배송료 많이 나왔겠어. 


캔버스뒤에 붙는 알파벳은 F, P, M가 있습니다.  

F: Figure는 인물화용으로 주로 쓰입니다.  

P: Paysage는 폭이 넓어 풍경화를 그리는데 적합합니다.  

M: Marine은 바다 그리기용 이란 의미인데, P보다 가로 폭이 더 넓어서 그렇습니다. 반드시 바다를 그리지 않아도 되겠으나, 그 의도는 잘 이해가 가죠? 

즉 F -> P -> M으로 갈 수록 캔버스가 더 길쭉해지는거죠. 

캔버스의 크기와 그림의 주제

가 사실 이번 이야기의 주제였는데 말이죠.

이것은 바로! 

대상(정물, 인물 등 특정 사물이나 사람)을 그리느냐, 풍경을 그리느냐에 따라 크게 나누어 집니다.  

4:3 비율에 가까운 F형은 인물이나 정물을 그리기에 좋습니다. 중앙에 대상을 배치하였을 때 여백이 적절히 남아 보는이로 하여금 대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죠. 

반면 P, M는 산, 들, 바다와 같은 풍경을 그리기에 좋습니다. 왜냐하면 가로폭이 넓고, 자연도 넓잖아요. 

음... 영화와 비교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시네마 스코프와 비스타 비전 

이게 뭐냐하면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화면비율입니다.  

캔버스도 변형사이즈가 여러 개 이듯, 사실 영화도 다양한 화면비율을 사용하여 촬영됩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쓰이는 것이 바로 저 두개인 시네마 스코프(Cinema scope /  2.35:1)비스타 비전(Vista vision / 1.85:1)입니다.  


시네마 스코프는 20세기 폭스가 개발한 wide view 형식의 화면비율을 말합니다. 즉, 종전보다 더 가로폭이 넓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한 것 입니다. 

우리가 정면을 봐도 좌우가 조금씩 보이죠. 그걸 ‘주변시’라고 하는데요, 초점이 맞아있는 곳 이외의 곳도 어느정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스크린의 가로폭이 넓으면 우리가 영화의 한 중심을 보고 있어도 좌우로 더 많은 영화 영역이 보이겠죠. 영화의 몰입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이런 방식은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와 같이 대규모 전투씬을 보여주는 영화에 효과적입니다. 심도 깊고 넓은 공간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대로 비스타 비전은 가로폭이 상대적으로 좁습니다. 인물을 그릴 때 정사각형에 가까운 캔버스를 선택하듯, 영화에서도 비스타 비전은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드라마에 잘 어울립니다. 드라마에서는 드넓은 풍경 많이 안나옵니다. 한 화면에 10명 이상의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도 많이 없을걸요? (아, 버스터미널 같은 장면이 있으면 다르겠군요. 뭐 그런 느낌이란 얘기입니다.) 

영화의 주요 장면들이 인물과 그 인물과 얘기하는 대상, 그 공간에 집중합니다. 때문에 화면의 가록폭이 막 넓어도 딱히 담을 내용이 없어요. 주인공이 까페에 앉아 얘기하고 있는데, 화면 가로폭이 넓어봐야 뭐하겠어요. 옆의 다른 테이블들만 많이 보이겠죠. 자칫 산만해져서 오히려 주인공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림의 주제에 따라 캔버스 비율이 달라진 데에는 우리 뇌와 관계가 있습니다.

진짜라구요.

지금까지 미술과 영화에서 어떨 때 어느 화면 비율을 사용하는지,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프랑스 음식의 플레이팅 방식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넓은 접시의 한 가운데에, 작은 음식 한덩이를 툭 내려놓고 최소한의 장식만 하잖아요. 그 음식을 마주한 손님의 집중도는 순간적으로 100%가 됩니다. 그 음식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잠깐동안 아주 0%의 관심이 되는거에요.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을 빠르게 스캔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봐야 할 것과 볼 필요가 없는 것을 판단하죠. 이때 우리 뇌는 기존에 본 것 같은 대상은 빠르게 일반화 시킴니다.  

‘빨간데, 둥글고, 과일의 한 종류 같다 = 사과다. 사과야. (끝.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 


왜냐면 뇌는 항상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무 피곤해져요. 

그림이나, 영화나, 접시 위 에서 여백은 뇌에게 어쩌면 고마운 대상입니다.  

‘아무것도 없다 = 볼 필요 없다 = 형태를 가지고 있는 물체를 보자’ 이는 곧 ‘집중’이 됩니다. 적은 에너지로 지금 내가 어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되는거죠.


가로 폭이 넓은 캔버스에 드 넓은 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서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아요. 크기는 곧 권력입니다. 화폭에서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이 관객의 관심을 가져가는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믹한 회사에서는 인물은 F 캔버스에 그리라고(그래서 관객의 모든 관심을 인물에 집중시키라고) 정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화는 꽤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큰 화폭에 작은 사람을 그렸어요. 하지만 인물에 대한 집중도가 어마 어마하게 높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백의 미(Beauty of empty space)'를 알았거든요. 우리 조상의 미적 감각은 정말 과학적이고, 감각적이고... 아름다웠어요. 여백의 미에 대해서도 나중에 꼭 다뤄보고 싶군요.


앞으로 그림을 보실 때 그림의 주제와 함께 캔버스의 크기도 같이 생각해보시면 재미있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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