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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진산문집
리장 아우라, 옥룡설산과 말과 소년들
by
해달 haedal
May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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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설산.
해가 나지 않아 만년설을 보지 못한다고 인솔자는 아쉬워했지만
운무를 좋아하는 나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상당한 거리를 말을 타고 이동 한 후
먼거리 시야는 확보되지 않는 안개 속에서
말몰이꾼 소년과 청년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말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며 휴식을 취했다.
타고온 말들 또한 풀도 뜯고 물도 마시며 휴식.
일행 중 한 사람은 자칭 산사나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장난기 가득한 그는
말몰이꾼 소년들과 으라차차 한판 씨름을 벌이고
넘어가는 형을 바라보며
막내는 웃고 있고
말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평화롭고 유쾌한 옥룡설산에서의 한 때.
불이라도 난 듯
저 멀리 능선 너머에선
거친 운무가 장관을 이루었다.
그때,
안개 속에서
홀연히
말을 타고
한 소년이 나타났다.
한 눈에도 그 소년은
말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 노련해보였다.
불타는 운무와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던 소년.
서로 잘 아는 듯 아이들은
유쾌하게 말등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는데
소년들에게 말은,
자신들의 일부로 보였다.
막내에게 말 타는 법에 관해 강의라도 했던 걸까.
유유히 한바퀴 돌고 오던 그 소년,
중국어가 되는 산사나이와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과 장난스레 씨름을 했던 그는
말 좀 타본 사람
탐험을 즐기는
여행하는 인문학자.
운무 자욱한 초원에서
어른 한 사람과 소년 두 사람의
즉흥 말 경주가 펼쳐졌다.
놀라운 속도.
순식간에 세 사람은
시야에서 멀어졌다.
사람과 말과 초원과 안개를 머금은 대기가
혼연일체.
멋진 모습이었다.
씨름에선 한판승 자리를 내 줬지만,
말을 다루는 노련함에서라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한 수 위.
바람처럼 말을 달리는 모습에서도
말을 세우는 모습에서도
어설픈 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예술의 기원에는
이런 멋진 생활에서의 모습들이 함축되어 있지 않았을까.
경주는 끝이 났고
워....
힘차게 달린 말을 진정시킨다.
지금은 청년들일텐데
이 소년들,
얼마나 더 멋있어져 있을까.
한편, 말을 지키고 있던 막내
바람처럼 날렵하게 달리던 형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이제 하산할 시간.
그리고
헤어질 시간...
홀연히 안개 속에서 나타났던 제3의 소년,
잠깐의 조우가 아쉬웠던지
공연히 딴 곳을 본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잔잔한 인상을 남기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진 소년.
잊지 못할 추억을 마음에 품고
다시 말을 타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저
멀리 보이는 야크 한 무리.
산을 올라가면서 말과 말을 돌보는 소년들과 친해져
이제는 말이 조금 빨리 걸어도 편안하다.
덕분에 말 달리는 기분을 아주 조금 느껴보았다.
조금 더 속도를 낸다.
풍경도 흔들린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막내가 줄을 잡아줘서 든든했다.
이 곳의 아이들은 어려도 제 한 몫
거뜬히 해낸다.
내가 탄 말을 잘 제어하던 소년은
듬직하면서도 귀여운 데가 있는 순박한 아이였다.
옥룡
설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옥같이 맑은 물은
식수, 세안이나 몸을 씻는 물, 빨래하는 물로 세 단계로 사용-재서술된다고 한다.
여러번 물을 재사용했다는
리장의 생활전통.
훌륭한 시스템과 높은 시민 의식을 일찌감치 이루었던 사회.
웬만한 지진은 견뎌내는 전통방식의 가옥 덕에
리장은 오랜 세월을 견뎌내며 높은 수준의 삶의 방식과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여행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생활의 정경 한 장면에는
옥룡설산에서
노련하게 말을 몰고 돌보던 소년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공간과 시간,
현지에 사는 사람과 여행하는 사람 사이의 교감은
짙은 여운으로 남아
살아가는 내내 그윽한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가 먼 길을 달려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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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 haedal
서울 시민. 일상과 여행에서의 느낌과 생각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Seoul citizen. Researcher, artist,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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