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중국 여행
2013년 겨울, 여름 항주 여행 이후 거의 8년 만에 중국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듬해 2014년엔 역시 8년 만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 마치 중국과 일본을 번갈아 진자 운동하듯)
칭다오에 도착, 바닷가에 위치한 한 호텔을 여러날 거할 숙소로 정했다.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니 바다 전망을 선호할 것이라 여겼는지 호텔 측에서는 휴가철에 설계 변경한 듯한 방을 배정해주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방이 더는 없다고 한다. 방이 조악하게 용도변경 급조되어 이곳에서 오랜만의 중국에서의 나날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되니 다른 방을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짐을 가지고 옮겨 간 객실은 놀랄 정도로 훌륭한 방이었다. 방값은 더 저렴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구나 느꼈다.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방으로 높은 천장에 드리운 중후한 커튼은 숙면을 도와주었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침대 옆 협탁에는 아침이면 항상 맛있는 사과와 바나나가 중국차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차보다 커피를 주로 마셨는데 사흘을 머문 이 호텔에서의 숙박 이후, 차를 커피만큼이나 즐겨 마시게 되었다.
별관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아케이드에서는 숲 분위기의 큰 정원이 겨울 운치를 만끽하게 해주었고
고딕풍 건물은 대학 캠퍼스와 연구실을 연상케 했다.
청도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 호텔에서 맞은 여러 날의 아침-
커튼을 젖혀 해를 맞아들이고,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겨울 오전의 삽상한 공기를 호흡하고
느긋하게 두런두런 담소 소리가 들리는 호텔 안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중국의 문화와 음식, 사람들과 만날 기대에 가볍게 들뜬 며칠.
아침과 점심을 겸한 브런치를 이 호텔 한식당에서 매일 먹었다.
예전 베이징이나 상하이, 일본 오사카 등에 있던 한국식당과 달리 칭다오에 있는 이 호텔 한식당의 한국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고 한국음식의 맛을 잘 구현해내고 있었다.
가볍게 맥주를 곁들여 마셨는데 칭다오 맥주의 고향에 왔으니 칭다오 맥주를 주문했다.
그런데 보지 못했던 '순생' 칭다오가 있었다.
칭다오 맥주의 순한 버전.
술이 세지 않은 나에겐 이 맥주가 정말 맛있었다.
첫 식사이고, 낮이고, 불고기 등의 한국 음식에 곁들이니 금상첨화.
한국에 돌아와서 이 맥주를 찾아보았으니 일반 슈퍼나 편의점에선 잘 볼 수 없었다.
집에서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인근 대형마트 한 매장에서 순생 칭다오 큰 병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호텔을 나와 길 건너편 바다 쪽을 가보았다.
고향이 부산인 내게 칭다오에서 보는 바다는 그냥 바다. 중국에서 만나는 바다.
오히려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사람들 사는 건물의 독특함,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에 더 눈이 갔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연립한 주택. 삼면으로 구현된 입체적인 베란다가 내 눈길을 끌었다.
또 통으로 된 일자가 아니라 삼단으로 된 바깥 베란다 창의 분할 같은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 역시나 빨래.
빨래 널린 걸 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져 낯선 곳에 가도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떡하니 바깥에 빨래를 너는 풍경 나는 참 좋아한다.
세계적인 글로벌 대도시 화려한 상하이에서도 예외 없이 널려있던 빨래.
공간을 넓게 쓰는 중국. 대륙 스타일은 도로에서도.
도로와 인도 사이의 완충지대를 넉넉히 두어 버스가 인도 쪽으로 쑥 들어오지 않아도 되니 안전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중국의 높은 건물들은 세련됨보다 당당한 풍모를 더 추구하는 것 같다... 대륙 스타일.
그런가 하면 떡하니 걸려있는 비닐봉지... 타인의 시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함... 이것도 대륙 스타일.
작은 독일이라고 불리는 곳에 왔다. 1900년대 초, 독일 조계지로 유럽인들의 별장이 모여있던 곳이라는데 산책로가 널널하니 고요하고 좋았다. 넓은 길에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아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이었다. 칭다오에 산다면 종종 산책하러 오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머물던 곳이었다.
화석루, 장개석 공관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다.
이 곳에 거하던 분의 사진.
낭만적인 스타일의 헤어스타일, 패션...
이 건물은 아늑하다기보다 긴장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좁고 높은 공간은 그런 분위기를 준다.
반면 넓고 낮은 공간은 여유로운 느낌을 선사해준다. 이후 가 본 영빈관이 상대적으로 그러했다.
그럼에도 제법 넓은 정원이 있었고, 그 공간은 야외 파티라도 소화할 수 있을 듯한 품격도 있던 정원이었다.
창 밖으로 정원수가 보인다.
저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하면 좋겠다 싶은 공간.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방을 들어가다 보면
이렇게 멋있는 고가구와 만나기도 한다.
곳곳에 스태인드 글라스로 멋을 냈고 문양과 색엔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중국풍 의자. 고풍스러운 중국 건물에 들어가 보면 이런 의자들이 보이곤 했다. 중국이 느껴지는 의자. 한국의 좌식 문화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건물은 크지 않고 높았는데 마치 건물 전체가 전망대처럼 보였고 덕분에 건물 안에서 바다가 잘 보였다.
외벽엔 담쟁이가 멋스럽게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바닷가엔 역시 흰색을 많이 사용한다.
화석루를 돌아보고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위치한 옛 독일 총독부 관저, 영빈관(Qingdao Site Museum of the Former German Governor's Residence)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대로변에서 쉬고 있던 한 택시 기사분에게 영빈관에 가자고 하니 거기 수리 중이라 가봤자 입장이 안된다고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웬걸, 가보니 수리 중도 아니었고 입장도 가능했다. 어 찌된 일인가 싶었다.
할 수 없이 조금 걸어나와 걸었다.
횡단보도를 보니 갑자기 비틀즈가 생각...
걸어가면서 큼직한 유럽풍 건물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오니아식 머리 장식을 한 기둥 파사드의 한 저택. 그래 이런게 저택이지.
마당에 냥이 한 마리.
안녕 냥이, 칭다오 냥이야
겨울이지만 칭다오는 바닷가 해양성 기후,
부산처럼 바람은 좀 불지만 기온이 아주 낮지는 않아 다니기 좋았다.
지역에 따라 내륙의 경우 엄청나게 혹독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중국, 그런 겨울 중국이라도 칭다오라면...
화석루의 좁고도 높은 긴장된 건물과 달리 넉넉한 공간을 사용한 클래식한 영빈관을 구경하고서 인근 신호산 공원으로 향했다. 중국에 있는 유럽의 조차지에는 중국과 유럽이 결합된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상하이에서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상하이가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빈관에서 도심공원인 신호산 공원에 오르면 청도시와 붉은 지붕의 옛 독일 조계 지역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풍경이 상당히 예쁘다. 산과 바다가 접해있고 유럽풍 건물이 그 사이를 채우고 있어 다채롭다.
공원 높은 곳에 오르니 어르신 두 분이 우슈를 연마하고 계셨다.
마무리.
무예 동작 같기도 춤 동작 같기도 하던 우아한 우슈.
직장 다닐 때 직장 근처 한 우슈 도장에서 중국인 사부님으로부터 우슈를, 그리고 대학원 다닐 때 대학 태극권 동아리에서 태극권을 잠깐 배운 적이 있어서 동작을 조금 따라 해 봤다. 어르신들께서 동작 지도를 해주시고는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타국의 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익혀두면, 처음 뵙는 분들과도 정다운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여행의 즐거움은 문화로 인해 더 커진다.
피차아이위엔, 옛 거리를 재현한 식당가와 제법 큰 공연장이 있었는데 휑하니 비어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밤의 화려함과 중국풍이 물씬 느껴지는 공연식당이 나왔다. 푸드코트 노점과 연회장이 결합된 듯한 분위기.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는 사이 간간이 만담과 노래 공연을 한다. 기예에 가까운 동작으로 물을 따라주는 청년.
노련한 중년의 만담가의 제스처에서도
물을 따르는 청년의 동작에서도
우슈 동작에서도
손놀림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손놀림이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중국에 오면 혹은 중국 영화를 볼 때면
무의식적으로 날렵한 처마 끝과 사람들의 손놀림을 유심히 보게 된다.
내가 느끼는 중국적인 매력 중 하나.
공연식당을 나와 해산물과 곤충 등 온갖 식재료로 꼬치구이를 파는 먹자골목을 구경했다.
한 식당에 들어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먹어봤는데 색다른 경험이었다.
곤충은 이산화탄소 과다 발생, 수질 및 토양 오염에 기여하고 있는 축산을 대신해 현재 선진국에서 미래 단백질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으니 이 곳은 미래산업을 선취한 셈.
인식이 참 중요하다. 그러니 인식을 바꾸어줄 정보도 중요하구나.
칭다오는 북쪽 베이징과 남쪽 상하이 중간 정도에 있다. 바다를 접하고 있어 수산물이 풍부하고 칭다오 맥주로 유명하다. 하여 일정 마지막에 칭다오 맥주 공장과 근처 맥주 거리를 방문하기로 했다.
위키 백과를 찾아보니 칭다오 맥주에 관해 나온다.
칭다오는 어촌이었는데 청나라 말기에 군사시설이 건설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일 전행 후에 독일 조차기가 되면서 칭다오는 작은 독일과 같은 인상을 주게 되었고 중국 속의 유럽이라고도 불린다고. ( 마치 고베에 가면 유럽풍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이) 칭다오 맥주는 독일이 남기고 간 유산이라 한다.
칭다오에 왔으니 그 유명한 칭다오 맥주 공장과 박물관을 가봐야...
맥주 공장과 박물관 근처 맥주 거리에서 한 가게에 들어가 황금맥주 파냐고 물었다. 주인인지 직원인지 말끔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 나와서 그 공장 망했다고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근처 가게에 들어갔는데 황금맥주로 보이는 맥주가 보였다. 황금맥주 맞냐고 하니 맞다고 했다.
음...
아직도 진실은 모른다.
이렇듯
칭다오에서는 인상적인 경험이 많았다.
아침이면 항상 과일이 놓여있고 오전부터 남자들이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던 문화를 접했던 유럽풍과 중국 전통적인 공간 형식이 공존한 숙소가 좋았다.
영빈과 수리 중이라고 가지 않았던 택시 기사분의 천연덕스러움과
( 실제로 그분이 그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진실은 모른다 )
칭다오 맥주 공장과 박물관 근처 맥주 거리에서 황금맥주를 마신 것도 재미있었고
(이 또한 진실은 모른다. 황금 맥주 이제 생산 안 한다고 얘기한 청년 말이 맞는지 우리가 마신 황금 맥주가 정말 황금맥주였는지...)
공원에서 우슈를 연습하던 두 어르신의 따뜻함과 위엄이 기억에 남는다.
워낙 중국 무술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영원히 마음에 새겨질 추억이다.
한국 명동 같은 쇼핑가에서 냄새로 악명 놓은 취두부를 처음 먹어본 것도 칭다오였다. 그 옆에 팔던 고소한 냄새의 오징어 철판 구이가 맛있었고 노천 야시장의 활력이 기분 좋았던 칭다오의 밤.
차(tea)에 눈을 떠 대나무로 만든 티망을 사고자 했는데 칭다오 곳곳을 잘 몰라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어 마침 눈에 띄는 월마트에 가보았다. 중국 월마트는 여러 층의 빌딩에 사람들로 북적대고 또한 붉은색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티망은 그곳에서도 찾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날 공항 샵에서 살 수 있었다. 전통적인 물건은 오히려 가장 첨단의 공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아이러니라니...
군항과 중국 어촌, 유럽 독일의 단정한 클래식함의 분위기가 혼재되어 있는 곳.
유독 중국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영글어졌던 곳,
시크한 혹은 화려한 숙소 혹은 장관인 볼거리나 명소만이
여행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게 깨닫게 해 준 곳
칭다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