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미학 연재를 시작하며
인문학과 문사철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안다. 인문학의 '문(文)'은 무늬라는 뜻으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무늬를 해석해보려는 노력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인문학의 주요 학문을 문사철(文史哲)이라고들 한다. 문사철은 문학, 역사학, 철학의 줄임으로,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항상 이들 학문과 함께 성장했다.
유아기에는 동화책으로 문학을(위인전으로 역사와 철학을 간접적으로) 접하고, 초딩 이후로는 학교 수업의 여러 과목을 통해 문사철을 모두 접하면서 개인과 사회에 관해 사유하고, 발언하고, 글을 쓰고, 관계 맺고, 행동한다. 문사철은 우리 삶 곳곳에 스며있다.
문학은 언어와, 역사학은 역사적 유물과 기록의 해석, 철학은 사유와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문사철 중에서도 나는 문학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브런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브런치가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문학적 분위기를 품고 있어서이다. 국어시간에 가장 좋아했던 글은 주로 옛날이야기, 그래서 요즘도 사극을 즐겨보는 것 같다. 영화, 음악, 미술, 사진, 여행, 환경 등... 관심의 초점이 조금씩 이동하며 반경이 넓어져 갔지만, 내게 문학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로 관심이 이동 혹은 확장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텍스트로 질서화하고 싶었던 마음과 글과는 또 다른 이미지와 예술의 세계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미학으로 귀결되었다. 이후 환경 이슈에 서서히 눈뜨면서 환경+미학, 자연, 도시, 장소+예술 분야의 환경 미학을 연구하고 있다.
철학과 미학
철학은 모든 것에 대해 근본적인 사유를 한다. 존재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인식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사는지(삶의 의미) 등... 에 관한 사유를 깊이 있게 펼친다. 미학은 그런 철학의 한 분과 학문이다. 철학이 이성을 중심으로 한다면, 미학은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으로 미와 예술에 관해 주로 사유한다. 미학은 그래서 종종 미(beauty) 혹은 예술(art)과 동의어로 매우 느슨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환경 미학
미학 분야 중에 환경 미학이 있다. 산업화의 그늘 중 하나인 인간의 소비와 생산 활동에 의한 환경오염,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에 관해 비판적 인식과 실천에 관해 다룬다.
일상 미학
일상(의) 미학(Everysay Aesthetics)은 환경 미학 중에서 우리의 일상에 초점을 두고 비판적 인식과 실천에 관한 담론을 펼친다. 연구자에 따라 미학적 실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후자에 속할 것 같다.
요즘은 경계를 너머 만나고 융합하는 시대이다. 한국인들 중에 (돌솥) 비빔밥을 즐기고 요리 끝에 볶음밥으로 마무리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관습화 되어 있기도 하고, 그런 관습 환경에서 자라나 좋아하기도 한다. 나도 그중 1인으로, 개인적으로 글쓰기도 여러 분야를 함께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성이 과하면 산만하고, 통일성이 과하면 단조롭다. 브런치나 일상 미학은 나에게 다양성을 담을 통일성의 플랫폼이 되어 줄 것 같다. 매거진을 통해 전시나 연구보다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브런치에 일상의 미학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환경 미학처럼 일상 미학이라고 쓰기보다 일상의 미학이라고 큰 타이틀을 정했다.
새로 시작하는 일상의 미학 매거진은 미니멀 라이프의 연장으로 플라스틱 일기 season2의 성격이 강하다. 플라스틱 일기 season 1이 플라스틱 줄이기였다면, 이번 기획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로 조금씩 나아가는 대안적 성격을 지닐 것같다. 그런 한편, 미학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간간이 관련 주제를, 부담이 되지 않게 가볍게 조금만 풀어내고 싶다.
플라스틱 일기는 한달간 매일 써서 Day1-Day30, 그리고 마무리 Day31까지 12월1일과 31일까지 날짜가 정확히 일치하게 썼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플라스틱이 그만큼 많아서 매일 풀어내어도 못다 풀어낸 까닭에, 그리고 연말의 풀어진 분위기에 브런치 글쓰기와 집 정리, 왓차로 드라마 보기만으로 이어진 생활이어서 가능했다.
일상의 미학은, 플라스틱 일기처럼 매일 날짜를 맞추어 쓰는 건 한번 해봤으니, '일상'을 강조해 날짜에 상관없이 매일Dayily 쓰거나, 다루고 싶은 소재가 있고 여력이 될 때 간간이 쓰거나, 주말에만Weekly 쓰거나 하게 될 것 같다. 생각중인데 일단은 새해 첫눈이 내린 김에 시작의 흰 테이프를 가위로 끊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 사태로 전 세계가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던 2020이 가고, 2021 새해를 맞은 지 1주일. 설날이 지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새해 느낌이 강하다. 특히 오늘처럼 강추위와 함께 하얀 눈이 많이 내린 날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 집 앞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공공 기관의 마당에 선별 진료소가 있다. 모두가 여러 환경 이슈에 눈을 떠야 하얀 눈이 예쁘게 내려앉은 수목 사이로 선별 진료소의 천막이 보이는 풍경이 사라질 것 같다. 일상의 미학을 연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치약 튜브 재활용이 걱정이 되어 소금을 쓰곤 한다. 깜박하고 화장실 수납장에 두었던 중지만 한 미니 양념병에 담겨 있던 소금이 굳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을 부어 녹여 몇 번 사용했다. 며칠 지나 보니 이렇게 소금꽃이 피어있었다.
와!
반갑고 놀라워 감탄을 연발했다.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주고 싶은 사물이 몇몇 있는데, 그중 으뜸이 이 소금이다. 성경에도 좋은 의미의 메타포로 등장하고, 소독도 해주고, 음식의 간도 맞춰주는 소금이... 우리 집에서 그 자체 미학적 사물이 되었다. 그것도 꽃으로!
새해 첫눈과 잘 어울려 일상의 미학을 시작하는 첫 손님으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