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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Feb 03. 2021

Day15
복잡한 원두커피, 심플한 보리차

집에서 후라이팬에 원두를 볶다가 발견한 진실

커피 원두는 다양한 품종이 지구 곳곳에서 생산된다. 같은 품종도 땅이 다르면 맛이 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도와 와인도 그렇다고 한다.


취향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정도의 보편성은 있겠지만, 같은 것을 두고도 어떤 이는 좋아하고 어떤 이는 관심도 없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연관해 유시민씨가 한 말이 매우 공감이 간다.


"취향을 두고 논쟁하지 말라."


나는 다소 묵직한 맛과 단 맛을 좋아하고, 신맛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한 집에 사는 가족 중 1인은 반대로 경쾌한 신맛을 좋아한다. 음악도 간명하고 정교한 모짜르트를 좋아하는 걸 볼 때 미각과 청각 등 감각 간에는 한 사람의 성격을 관통하는 그 어떤 특색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원두는 생산지에서 과육을 제거하고 어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선별 후 한국에 상륙. 국내에서 생두를 볶기도 하고, 이탈리아나 독일 등 외국에서 볶아 들어오기도 한다. 일리 브랜드 같은 경우 에스프레소용으로 분쇄하여 캔에 밀봉 후 들어오기도 한다. 원두를 볶는, 로스팅이라고 하는, 과정은 상당한 전문성과 적절한 도구를 필요를 하지만, 나는 어떤 이유로 로스팅에 도전했다. 그 이유는 원두를 사올 때마다 분리수거가 성가신 봉투에 있었다.


원두는 볶은 지 1주일 후 2주일 즈음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두가 아닌 이상 많이 사두기보다 소화가능한 양을 사서, 그것도 되도록이면 분쇄하기 전의 홀빈으로 사서 내리기 전에 갈면 더 신선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하여 100g 혹은 200g 단위로 파는 원두를 사왔는데, 봉투가 대체로 비닐이다.


간혹 겉면은 종이어도 안은 비닐인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분리배출이 어려워 오히려 더더욱 종량제 봉투로 보내야 했다. 아예 대놓고 비닐인 경우는 분리배출하여, 그 경로를 잘은 모르겠지만 만약 성공적인 경우에는 재활용이 된다는 기대라도 걸 수 있지만 겉만 종이인 녀석들은 보기에만 좋을 뿐.


게다가 원두가 숨쉴 수 있도록 작은 공기구멍이 있는 작은 원형 반투명 플라스틱 칩을 비닐 봉지에 박아둔다. 이걸 볼 때마다 재래식 옹기가 얼마나 훌륭한 그릇인지 감탄하게 된다. 또 대체로 지퍼백이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철끈? 플끈?을 얹어준다. 한 두번 편리해서 받아왔지만, 이후에는 매장에서 주려고 하면  '거절'한다.


작은 용량보다는 큰 용량이 단위 면적 혹은 부피 당 플라스틱 사용이 덜해서 이후 조금 큰 용량을 사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신선도가 떨어져 갈수록 맛과 향이 떨어져갔다. 큰 용량은 가격도 싸고, 플라스틱도 덜 소비하고, 파는 쪽도 좋아한다. 문제는 신선도.


그래서, 로스팅까지 직접하는, 바리스타 양성도 하는 동네 커피 전문점에 가서 생두를 사왔다. 생두는 단단해서 오래둬도 썩을 것 같지도 않아 보였고 볶은 콩에 비해 선도도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될 듯 보였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생두를 직접 사보니, 로스팅과 관련된 도구 구입 비용과 나의 품이 들어가서인지 로스팅된 원두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커피를 내려먹으면서 커피를 잘 사먹지 않게 되었듯이, 생두를 볶게 되면서 이후로는 100g 단위의 소포장 원두는 사지 않게 되었다.


처음 로스팅은 생두를 사면서 세라믹으로 된 전용 팬을 구입하여 시도했다. 한번씩 흔들어 줘서 골고루 익혀야 하는데 작아도 묵직해서 팔이 좀 아팠다. 대체제가 필요해 온라인 몰에서 알루미늄으로 된 작은 로스팅 전용 팬을 구입하여 시도해보았다.


콩이 튀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소리가 나서 나서 또 놀라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고, 너무 안 익은 상태여서 메주콩 냄새가 나기도 하고, 약하게 익힌 원두는 수동 원두분쇄기에 넣어서 갈기엔 너무 힘들어서 믹서를 사용하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어느 정도 익혀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조금씩 쌓아가며 나름 재미도 있었다. 이후에는 조금 큰 일반 후라이판에 긴 나무주걱을 이용해 볶아봤는데, 무쇠, 3중 스텐 등 여러 후라이판을 사용해보고 적당한 것을 정할 수 있었다.


전문적인 로스팅된 원두를 사서 베이스로 삼고, 내가 로스팅한 것을 섞어서 내려 마신다. 원두의 품종에 크게 차이 없이 약하게 혹은 중간 정도로 볶으면 신맛이 강하다. 묵직한 맛의 강배전 원두를 사와서 살짝 신맛을 얹듯이 마시면 성공할 경우 훌륭하다. 원두를 큰 용량으로 사와서 조금 묵혀도, 이렇게 가미를 하면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 오묘한 맛의 경계가 열린다.


이런 노력들, 과정들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로스팅 된 원두 포장 줄이기)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차(tea)에 비하면 원두커피는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와 오염을 발생시키고 개인적으로 비용도 많이 든다. 나는 원두 커피를 하루에 스벅 tall 사이즈 기준으로 반 잔 내지 한 잔 정도 마신다. 커피 소모량이 아주 많은 집은 아니어서 동네 커피숍에서 더블 샷 아메리카노 한 잔 텀블러에 테이크아웃으로 받아와 남편과 나눠먹으면 알맞다. 생두를 볶아 이용해보니, 내가 내리면서 이런저런 도구들을 사고, 원두를 사면서 포장으로 인해 비닐이 발생하고, 아무래도 내려 마시면 좀 더 넉넉하게 마시니 사서 먹는 생수 소모도 늘어나고...  하느니,


아메리카노 한 잔 2500원, 현금결제하면 더블샷 제공해주는 동네 커피숍에 600ml 텀블러 들고 가서 한 잔 사와서 나눠먹고, 카페인이 다소 모자라면 차를 내려먹거나 보리차를 마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두 드리퍼 종이 필터를 사면 그 자체는 종이지만 비닐 포장에 들어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종이 필터도 나무를 베어야 한다. 가공을 하고, 외국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배타고 들어온다. 차로 이동한다.


커피는 과연 중독되는 것 같은 것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노트북 부팅이 안 된 것처럼 뇌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기분도 별로이다. 카페인은 각성효과가 있는 흥분제 임이 틀림없고, 중독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일례로 보리차는 안마신다고 부팅이 안되지는 않지 않은가?


우연히 커피에 대해 검색하다가 어제 커피가 우리 몸의 질서를 지나치게 흥분, 각성 상태로 만들면서 중독성이 있어 서서히 그 몸의 질서를 흩트린다는 주장을 하는 분의 글을 읽게 되었다. 마침 커피 주간을 진행하려던 차에 마음에 교란이 일었다. 커피에 회의가 왔던 유일한 이유는 나로서는 환경에 미치는 커피산업의 영향이 커서였다. 그런데 이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나는 커피의 각성 효과를 사랑한다. 비위나 소화력이 다소 약한 나에게 커피는 해결사이다. 커피를 마시면 향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흥분상태이려나? 너무 단 음식, 이를테면 생크림 케이크나 초콜릿 등과 같이 마시면 또다르게 훌륭한 콜라보. 사실 너무 자극적이긴 하다. 애써 당도를 높여놓고, 또 애써 그 당도를 쓴 맛으로 낮추어 밸런스를 추구하는 셈이니 인위성이 넘쳐난다. 몸이 반길 리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커피의 매력이 너무나도 커서, 어떤 이는 커피를 적절히 마시는 것이 좋다고도 하니, 중독이 되지는 않을 정도로 줄여서 만끽하고, 일부 그 자리에 한국에서 많이 나는 보리차나 역시 한국에서도 생산하고 가까운 중국에서도 생산하는 녹차 등이 일상에 자리잡도록 해봐야 겠다.


우리집 마루와 부엌에 늘어서 있는 원두와 기구들 사이에서,  유리병 하나 들어있던 보리차가 눈에 들어있다. 그걸로 끝. 분쇄도 드립도 없다. 별다른 도구도 필요없이 흔한 주전자와 그저 맑은 물만 있으면 된다. 머나 먼 이국에서, 어떤 땅과 노동을 희생해왔을 지도 모를 커피를 마시면서 어느날 문득 가벼운 충격이 왔던 계기이기도 하다.


보리차,

그 심플함,

그 분명한 로컬리티.


커피,

그 복잡함,

그 모호한 이산화탄소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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