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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Feb 24. 2021

Day 29  분리수거일 풍경 스케치

종이 상자 수레와 소주병


분리수거일


내가 사는 아파트는 분리수거/배출 날짜와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집에 1주일만이라도 일회용품과 분리배출할 소중한 자원들을 모아놓고 보면, 우리들 인간이 얼마나 지구 자원을 많이 소모하는지 한 눈에 보인다. 나아가 그 순환에 대해 좀더 깊은 관심을 갖게 하는 훌륭한 계기가 된다.

나는 1년간 재활용품을 모아보고서 내가 지구에 끼치는 영향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었고, 단지 막연한 인식이 아닌,  내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나의 작은 행동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옴은 물론이고, 더더욱 나쁜것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상시 분리수거 코너가 있는 최근 새로 지은 아파트와 달리 구축인 우리 아파트는 매주 화요일 밤 9시부터 다음날인 수요일 오전 9시까지 분리수거를 마쳐야 한다. 그전에는 수요일 오전 6시~9시 까지였는데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 그나마 늘어난 거다. 물론 전날 밤 10시가 넘으면 각 동마다 계시는 경비원 아저씨들이 슬쩍 마대를 펼쳐 설치해주시고 눈치껏 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재활용품을 갖다 놓기도 했지만, 경비원 아저씨들의 유연성이 달라 동마다 조금씩 달랐다.


간혹 밤 12시 정도에 외출에서 돌아온 앞집 아들내미가 재활용품을 엘리베이터에 싣는 소리가 나곤 했다. 밤에 내다 놓으면 아침의 분주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게으름을 피워 추운 밤이나 아침 시간을 피해 당일 오전 10시나 11시에 슬쩍 가져나가곤 하는데 그럴 때면 경비원 아저씨가 성가셔하시지 않게 묶어놓은 마대를 풀어 캔이나 유리병 등을 넣고는 다시 잘 묶어둔다. 플라스틱과 종이 마대, 그리고 아예 바닥에 쌓는 종이박스는 그 양이 엄청나서 묶지를 못하고 수거차가 와서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기 때문에 그전에만 갖다 놓으면 된다.


이런 습관이 생긴 것은 우리 집은 재활용품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게으름도 있다. 재활용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부피가 큰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을 많이 안 쓰기 때문이고, 재활용이 잘 안 되는 작은 플라스틱이나 압축해서 모아놓을 수 있는 비닐은 기술이 더 발달하거나 재활용이 더 잘 될 때까지 모아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나가는 순간 지구를 오염시킬 것이기에 내가 초래한 플라스틱과 비닐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내가 책임지려고 한다.


다행히, 어제 브런치에 썼듯이 얼마 전에 폐비닐을 기름으로 바꾸는 정말로 필요한 기술이 한국에서 발명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기쁜지... 그 기술이 상용화되기 시작한다는 올해 가을 이후, 씻어서 말려서 모아놓은 여러 종류의 비닐을 방출하려고 한다.



소주병


맥주병, 소주병 등은 슈퍼, 편의점, 마트 등 소매점에 가져가면 병당 100원 내외로 반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냥 병 분리수거 마대에 넣다가, 아무래도 깨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병 회수율을 높이고자 하는 착한 마음에 소매점에 갖다 주고 돈도 벌어야겠다 생각했다. 남편의 소주 사랑이 지극해서 우리 집에서는 플라스틱은 별로 안 나오는데 소주병은 제법 나온다. 흠...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좋아. 동네 슈퍼에 가져가자.



종이 상자 쌓기 신공


분리수거를 하고 소주병을 들고 동네 슈퍼 가는 길에 박스를 주워서 수레에 차곡차곡 담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우리 동네 야채 가게는 소매와 도매를 결합한 성격으로 좋은 가격에 좋은 야채를 파셔서 장사가 잘된다. 박스도 많이 나온다. 거의 독점 수거권을 획득하신 분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께서 월~토 거의 매일 박스를 수거하신다. 항상 그 자리에 수레를 파킹 하시고 예술적으로 박스를 쌓으신다. 물론 조형 본능이 강한 대륙의 수레 신공은 이보다 더하지만서도.




최근 공병 수거와 산책으로 소소한 벌이와 운동을 겸하신다는 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슈퍼를 몇 발자국 앞에 두고, 이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혹시 병도 수거해주세요?"

"아 그럼. 주면 좋지."


가지고 있던 소주병 네 개를 드렸다.


"고마워요.

요즘 이거 소매점 갖다 주면 100원이야. 도매로 갖다 주면 그렇게 안 줘!"

"네, 수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박스 사이에 넣어드린 소주병을 가지고 계시던 비닐에 따로 넣어 작은 수납 코너로 쓰시던 근처 벽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소중히 보관하셨다.



소주병과 박스와 할아버지 신발


의미 있고 훈훈하고 그래서 보람찬 분리수거일의 풍경이다.


일상의 예술, 한국의 전국 각지에서 동네마다 골목마다 보이는 분리수거 신공, 나는  좋아한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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