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하던 저녁 끝엔, 구수한 국물 한두 숟갈이면 충분했다

마음이 갠 날_된장국

by 해담
때론 잘 차린 한 상보다 은은한 한 그릇이 더 필요한 저녁이 있다.
설명하기앤 애매하고 모른 척 넘기기엔 조금 오래 남는 감정들.

나는 자극 없는 식탁에서, 오늘의 마음을 기록한다.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마음이 탁해지는 시기가 있다.


요즘의 내가 그랬다. 딱 하나의 일을 중심으로 마음을 자꾸 붙잡는 일들이 찰나처럼 이어졌다.


이직이라는 큰 변화 앞에서 자주 흔들렸고, 시야가 흐려졌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신경이 쓰이는데, 그럴 때면 꼭 사소한 부정적인 감정까지 자주 올라왔다. 마냥 괜찮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오래 함께하고 싶은 회사에 최종 합격을 시작으로 막혀 있던 마음에 작은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숨구멍이랄까. 탁하던 마음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런 날에는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다.


그래, 부드럽게 익은 감자와 두부 몇 조각이 들어가 있는 잘 풀린 된장국이 좋겠다 싶었다. 국물은 너무 진하지도 너무 옅지도 않은, 무게감은 있지만 지나치게 가라앉지도 않는 그런 구수한 된장국.


숟가락으로 한두 번 국물을 떠먹다 보면, 몸 안으로 천천히 번지는 온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이 뜨거움이 좋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자극적인 맛보다 이런 국물이 더 오래 남는다. 입안을 확 붙드는 맛은 아니지만, 조용히 속을 데워주는 맛이었다.



잘 풀리지 않던 마음도 어쩌면 이렇게 식는 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끓는 상태로 계속 붙들고 있으면 되려 상처를 입으니까 조금 식히고, 가만히 가라앉히고, 내 안에 천천히 퍼지게 두는 시간. 바로 그 여유가 필요했다.


나는 여전히 작은 걱정들에 쌓여져있다.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도 남아 있고, 몸은 더 잘 챙겨야 하며, 자리를 잡고 단단해져야 한다.


분명한 건 하나다.

전처럼 탁하게 휘젓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아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저녁엔 너무 뜨겁지 않은 국물 한두 숟갈이면 충분했다.


마음이 조금 놓인 날의 된장국은 조용히 말한다.



잘 버티고 있다고,
오늘은 이 정도의 온기로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