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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허기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으려면

먹는 즐거움

by 해든


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면 장점이 4가지 있다.


첫째, 잘 먹는 것에 비해서 살이 찌지 않는다.

왜냐하면 맛없는 것은 삼키지 않기 때문이다.

맛있게 먹다가도 맛이 조금 떨어지면 먹지 않는다.

음식을 하다가도 맛보기용으로 먹은 음식이 아직 덜 익었거나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아니면 맛만 보고 뱉는다.

딱 내 입에 맛있는 것만 먹는다.


둘째, 하루에 적어도 3번 행복할 기회가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도 삶의 활력소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먹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감까지 더해진다.


셋째, 나에게는 내가 더 열심히 살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세상의 맛있는 것을 다 먹어보고 싶다.

그러려면 시간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건강하기도 해야 하고 필요한 조건들이 많다.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을 먹기 위해 오늘 하루도 더 열심히 살고 있다.

호기심이 있고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아직 마음은 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리를 잘한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봐서 내가 한 음식도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지 않고

가장 맛있는 맛까지 도달해야 완성이 되기 때문에 음식을 잘할 수밖에 없다.

음식을 하면 두 번 먹을 수가 없다.

거의 한 끼에 다 먹어버린다.


친정 엄마는 일을 하셨고 성격상 많은 도전을 하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다양한 요리를 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엄마가 한 음식은 늘 맛있었다.

종류는 적지만 무엇을 하든 다 맛있었다.

진짜 맛있게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계셨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는데 엄마에게 얘기하면 24시간 안에는 늘 먹었던 것 같다.

도시락도 맛있었고 어릴 때 먹었던 모든 것들이 맛있었다.

행복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지방에서 사는 동안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몇 년 만에 엄마집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몇 년간 타지에 살면서 허했던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따뜻하게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피의 온도가 느껴졌다.

이미 30대 중반이었는데도 엄마의 밥은 달랐다.

엄마 밥을 못 먹었던 기간 동안 나는 지방에 있었고

아빠가 편찮으셨고 돌아가셨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들이 지나고 아빠를 잃고 사막같이 삭막했던 내 몸이

엄마가 해준 밥으로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엄마의 밥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빛깔 번쩍한 밥상이 아니라 정성 가득한 음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이거 먹고 건강해라, 행복해라, 맛있어라' 주문을 외우면서 아이들 밥을 해줬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엄마밥이 더 몸에 좋은 이유가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엄마의 칼질과 요리사의 칼질이 달라서 그렇다고 한다.

무덤덤하게 썰어내는 칼질과 사랑을 담은 칼질이 재료의 맛을 다르게 한다고 한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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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섭리로 돌아가면 출산을 엄마만 할 수 있고 모유수유를 엄마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이 엄마에게 부여한 가장 큰 임무가 아이를 먹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나면 엄마가 해줘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난 아이들이 건강하고 따뜻한 밥을 먹고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그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좋아한다.

나도 그렇게 내 아이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

거기서 난 음식들을 먹으면서, 그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해주고 싶다.

제철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하루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어머니는 자녀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최대한 많이 읽게 해주고 싶어서 밥 먹을 때 책을 읽으면서 먹게 한다고 하셨다.

가족은 식구다.

먹을 식(食), 입 구(口)를 써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

즉,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 식탁에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단순히 밥만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들이 있다.

밥상머리 교육이다.

바쁜 시대에 가족이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고

부모님과 대화하며 대화예절, 경청습관 등 소통 능력을 배우고

가족의 전통, 부모의 삶의 태도, 인생관 등 가치관을 전수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커도 같이 한 끼를 먹기가 쉽지 않다.

가족모두가 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

어린 시절 쌓인 그 소소한 기억들이 나중에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더라고 단단한 뿌리가 되어준다.


아이들에게 많은 체험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여행을 가고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본질적으로 엄마가 챙겨야 하는 것이 아이들의 음식이다.

올바른 식습관이 형성되지 않으면 평생 괴롭다.

엄마 몸속에서 엄마가 주는 것들로 만들어진 아이가

태어나서도 엄마가 주는 것들을 먹으면서 자란다.

아이들은 세포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좋은 음식들로 채워져야 건강하게 자란다.

아이의 체질도 눈빛도 안색도 목소리도 엄마가 주는 음식들로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허기지지 않도록 엄마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음식들로 따뜻하게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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