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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vs. 굵은 소리

by 해든


가정 안에서 가장 흔한 갈등 원인은? 잔소리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하는 게 힘들고 듣는 사람은 듣는 게 힘들다.


부모가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생명, 안전, 예절, 존중, 성실처럼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 부모가 가정해서 훈육해야 하는 것들이다.

훈육은 가르칠 훈(訓), 기를 육(育), 즉 가르치고 기르는 것을 말한다.

부모의 훈육은 금지의 말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금지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리면 아이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 된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가르침은 빠져있고 금지만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배우지 못하고 늘 제지만 당한다.

엄마의 말들이 자신을 멈춰세우고 하고 싶은 것을 방해하는 말이 된다.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 반복적으로 듣게 되므로 싫고 귀찮게 느껴진다.


아이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아예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 설명해서 설득하고 알려줘야 한다.


이제 막 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콘센트에 젓가락을 넣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설명한다고 알아들을 리 없다.

그래서 그 나이에는 아이가 기어다니는 위치에 있는 위험한 것들을 모두 치운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설명해 줘야 한다.

"이 안에 '전기'가 흐르고 그래서 멈춰있던 선풍기의 코드를 콘센트에 꽂으면 선풍기가 돌아가.

(이것을 눈으로 보면 그 안에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기는 너무 뜨거워서 손이 닿으면 아뜨거아뜨거 아야아야 아프고 피가 나. 엉엉엉.

(시각적으로 오버하고 각색해서 알려준다.)

그러니까 절대 만지면 안 되는 거야 "

아이가 전기 코드를 입에 넣고 콘센트를 만질 때마다 "안돼. 하지 마."만을 반복하지 말고 알려줘야 한다.

이러한 것은 객관적인 위험이므로 반드시 지도가 필요하다.

알려주지는 않고 금지만 하면 아이는 배우지 못하고 상상 밖의 유사한 일들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아이 잘못이 아니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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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그 내용이 부모의 개인적인 취향 내지는 본인만의 원칙인 경우다.


얼마 전에 테이크 아웃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혼자 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분께서 매장 취식용 쟁반에 음료를 주자

그 여자아이는 자리로 가져가려고 쟁반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놔둬"하고 빽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왔다.

아이는 무안해하며 쟁반을 내려놓았다.

어린아이가 음료를 들고 가면 쏟을 수도 있다.

하지만 8살 정도는 되어 보였고 이미 들었으면 엄마가 옆에 따라오면서 살짝 같이 들어주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러면서 조심히 들고 가고 균형을 맞추는 것도 가르치면 된다.

나이에 맞지 않게 금지시키는 것은 엄마의 불안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보이고 쏟을까 봐 두려워서 아예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이다.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온 후에 발을 씻지 않는 것을 못 견뎌서

나머지 가족들에게 계속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편을 예로 들어보면 남편이 자란 집에서는 우선 이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안 씻은 발로 집을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하거나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아내는 남편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설득이 안된다면 그다음부터는 그냥 잔소리다.

이상적인 것은 남편이 그런 아내를 배려해서,

자기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생활이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남편 스스로 기분 좋게 알아서 해주는 거다.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이 진짜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럼 그때부터는 엄마의 문제다.

엄마가 변해야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발 씻으라고 한다면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아이가 숙제를 챙기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엄마가 잔소리를 한다면 이것 또한 엄마의 문제이다.

숙제는 아이에게 속한 것이고 그것을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하느냐는 그 개인의 문제인데,

남의 문제를 너무 속속들이 알려고 하고 남이 하는 일을 내 기대에 맞추려고 하니까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건 기본적으로 아이의 선택이라서 부모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일일이 매일매일 모든 숙제마다 하나하나 얘기할 것이 아니라,

학생이 왜 숙제를 해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등등

더 근본적인 것들을 가르쳐서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엄마가 하나하나를 챙기려고 하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아이에게는 잔소리로만 느껴진다.

어릴 때는 어느 정도 엄마의 노력에 따라 아이의 성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와

완성도 있는 결과를 원하는 엄마 사이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가 "근데 이거 왜 해야 하는 거지?" 처음으로 의문이 생기는 시점이

보통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라서 "초4병"이라는 말이 새롭게 생겼다.


부모는 굵은 소리를 해야 한다.


"동생을 때리지 마라, 괴롭히지 마라" 따라다니면서 얘기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때리는 것이 잘못임을 알려줘야 한다.

어리더라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고,

특히 힘이 더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비겁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개미를 죽이는 것이 안되는 이유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면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배운다.


학교든 학원이든 늦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약속은 어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내가 빼앗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규칙인지 알려줘야 한다.


공부가 하기 싫을 수 있고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 다른 무언가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리는 것들은 다 누리겠다는 것은 무임승차다.

He who does not work shall not eat.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대원칙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의 일상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이 생긴다.

엄마가 평생 같이 있어줄 것이 아니라면 아이가 순간순간마다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알려줘야 한다.

인생 전체를 두고 아이가 본인의 하루를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훈육해야 한다.



늦게 다니지 좀 마, 술을 멀리 좀 해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누구보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

아이유, 슬옹 <잔소리>



다 널 위한 것이라고, 사랑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잔소리를 포장한다.

아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

영화 <미저리>의 시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해서 한 행동이지만 집착이다.

그건 이기적이고 나쁜 것이다.

잔소리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의 문제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미처 못 참아서 내뱉는 것이다.

더 큰 사랑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힐지 아니까

순간순간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키며 꼭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사람마다 특히 싫어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비합리적이어도 해줄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 간에 합의가 안되고 더군다나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다 잔소리다.

부부사이든, 부모 자식 사이든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이

나를 위한 것인지,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생명에 위험이 되는지, 조금 더 더러운 정도인지

도둑질처럼 절대 안 되는 것인지, 칼각 정리처럼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보기 좋으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잔소리가 사라질수록 오래 있고 싶은 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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