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arate Ways (2023)
|타이틀| 세퍼레이트 웨이즈 (Separate Ways)
|최초출시일| 2023년 9월 20일
|개발사| Capcom
|유통사| Capcom
|구입처| App Store (Mac)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바이오하자드 RE:4 (Resident Evil 4, 2023, 이하 RE:4)>에서 에이다 웡(Ada Wong)의 등장하는 장면들은 조금 뜬금없는 면이 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는 별 문제없어요. 출장 갔다가 옛 지인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다음부터 에이다는 레온 S. 케네디(Leon S. Kennedy)에게 계속 연락을 하면서 마침 필요했던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위기 상황에서 타이밍 좋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에게 붙잡혀서는 높은 곳에 매달려 있지요. 구출해 주면 함께 최종 보스에 맞서 싸우는 듯하다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 한참 뒤에 역시 타이밍 좋게 로켓런처를 던져 주고요. 물론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수용하고 넘어갈 수준이기는 합니다. 게임적 허용인 거지요.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RE:2 (Resident Evil 2, 2019, 이하 RE:2)>에서의 활약과 비교하면 조금 겉도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RE:4>의 DLC로 나온 <세퍼레이트 웨이즈 (Separate Ways, 2023)>는 에이다도 사실 바쁘게 뛰어다녔다는 걸 보여주며 본편 속 에이다의 뜬금없는 개입과 역할에 개연성을 부여해 줍니다. 없던 개연성이 생겼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이렇게 DLC로 보여주기 위해 본편에선 슬쩍 빼둔 느낌이 드네요. <세퍼레이트 웨이즈>가 에이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플레이하면서 본편 이야기의 빈 곳을 쏙쏙 채워 넣어가는 경험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물론 본편에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것처럼 보여줘 놓고 DLC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사이드 스토리를 보여줘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완성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Resident Evil Village, 2021)>와 DLC <섀도즈 오브 로즈 (Shadows of Rose, 2022)>가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RE:4>는 <RE:4>만의 이야기가 있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원작 <바이오하자드 4 (Resident Evil 4, 2004)>도 같은 구성이었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하던 데로 한 것이겠지요.
아쉬운 점을 조금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세퍼레이트 웨이즈>는 아주 즐겁게 플레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다 웡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인상도 많이 바뀌었고요.
에이다 웡의 길
<RE:4>의 도입부에서 레온은 <RE:2>의 라쿤 시티를 겪은 이후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에이다는 레온을 만났을 때 그건 착각일 뿐이며 레온은 그때 그대로라고 이야기해 주지요. 겉모습과 행동 양식은 그때와 달라졌을지 몰라도 내면은 그대로라는 걸 지적한 게 아닐까 합니다. 반쯤 농담으로 말하자면 고작 6년 만에 레온은 겉모습이 제법 늙기는 했지요.
그런데 <세퍼레이트 웨이즈>의 도입부에서 에이다도 스스로에게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 그 어둠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걸까? 이 세상은 반드시 누군가가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으니까. 그게 누구이고 왜인지는 묻지 않는 게 좋다. 난 그렇게 이해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라쿤 시티에서의 그날 밤이 모든 것을… 바꿔 버리기 전까지는.
Who will pay its dark cost? Because in this world, someone always pays. Best not to ask who or why. I understood that. Made my peace with it. Until that one night in Raccoon City …change everything.
에이다는 겉모습도 행동도 <RE:2>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이 살짝 바뀐 걸 제외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도 별로 없어서 그냥 옷만 갈아입은 수준이지요.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비밀이 많고,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떠나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프리랜서 잠입요원(추정)으로 일하며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에게 고용되어 있지요.
하지만 <세퍼레이트 웨이즈> 속 에이다를 지켜보면 변한 것은 에이다의 내면이라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외면은 거칠게 변했지만 내면은 과거의 선한 본성 그대로인 레온과는 반대인 거지요. 그리고 에이다 역시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게임의 후반부까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게임 중반부까지 에이다가 레온과 애슐리, 그리고 루이스를 마지못해 그러는 척하며 돕는 모습을 보면 '에이다가 제법 착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어쩔 수 없이 해준다는 듯한 태도’는 마치 레온이 일부러 보여주는 듯한 거친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변한 부분 혹은 변하지 않은 부분을 감추기 위한 거지요.
에이다의 내면에 본격적인 결심이 서기 시작한 건 고용주 알버트 웨스커의 새로운 지령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에이다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결정타를 날린 건 본편에서도 나왔던 마지막 컷신 속 헬기 장면일 겁니다. 그동안은 일단 시키는 일은 하면서도 다른 길로 슬쩍 새는 수준이었다면 이때 본격적으로 웨스커에게 반기를 들어요. 레온이 에이다와의 대화와 크라우저와의 싸움을 통해 변하지 않은 자기 내면을 바라보게 된 것처럼, 에이다는 이때를 기점으로 달라진 자기 내면을 직시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에이다의 다음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원작 <바이오하자드 4> 이후로 <바이오하자드 6 (Resident Evil 6, 2012)>와 CG 영화 <바이오하자드 댐네이션 (Resident Evil Damnation, 2012)>에서 에이다가 나왔다는 건 알고 있는데 이 작품들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고요. 에이다의 변화에 대한 제 인상이 맞는지 틀린 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지는 저도 모릅니다. <바이오하자드 6>은 크로스오버로도 지포스 나우로도 맥에서는 플레이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바이오하자드 댐네이션>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라서 수용가능했던 실사지향 CG 캐릭터들을 과연 영화 속 캐릭터로서 볼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 아직 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RE:4> 본편 속에서 에이다는 언제나 우아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세퍼레이트 웨이즈>는 사실 에이다도 정말 험하게 고생하며 굴렀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플라가에도 감염되어 쓰러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적을 상대하며 찔리고 물리고 얻어맞고 떨어지기도 하고요. 물론 제가 게임 흙손이 아니었다면 조금 덜 다칠 수는 있었겠지요.
에이다는 그래플 건(Grapple gun)을 이용해 줄을 타고 높은 곳에 오르거나 잠시 공격력을 잃은 적을 공격하는 체술로 레온과는 다른 결의 액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적들이 몰려올 때 적당한 고지가 있다면 그곳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어요. 거대한 크기의 적과 싸울 때도 그래플 건 덕분에 고지를 활용할 수 있어 레온 때 똑같이 상대했더라도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액션 자체의 쾌감은 조금 덜했어요. 적에게 근접해서 적을 발차기로 날려버리는 체술은 소리부터가 레온의 경우에 비해 훨씬 가벼웠습니다. 일단 적들을 쓰러뜨리는 데 몰입해 있었을 때라 공격력도 달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플레이 도중에도 소리가 약해진 건 조금 아쉬웠어요. 근육질의 건장한 남성이 휘두르는 묵직한 다리와 단단하지만 비교적 가벼운 여성이 날렵하게 휘두르는 다리가 내는 소리는 다를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만요. 그래플 건을 통한 이동 역시 빠르게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요. 이건 아무래도 13인치 맥북 에어의 작은 화면 때문이겠지요. 큰 화면으로 했다면 짜릿한 속도감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도 조금 더 날렵한 움직임으로 진행하는 전투는 레온 때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본편에서 이미 나왔던 적들이 등장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래플 건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활용할 수 있었고, 적 역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 데다, 전투 환경이 달라진 경우도 있었던 덕분에 같은 걸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레헤네라도르(Regenerador) 역시 잠깐 동안 다시 등장했는데요, 얘들은 본편과 그리 달리진 점이 없었지만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압박하는 힘은 여전히 대단했습니다.
게임 플레이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RE:4> 본편 속 레온의 이야기와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레온은 성에서 에이다를 처음 만났을 때 6년 만에 보여주는 인사가 이거냐고 말하지만 사실 에이다는 레온이 마을 광장을 가로지를 때부터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가나도 주민들이 교회로 몰려가게 만들었던 종소리도 사실 에이다가 울린 거였고. 그나저나 에이다는 종소리와 주민들의 관계를 어떻게 알게 된 걸까요? 에이다 혹은 웨스커가 이미 며칠 전부터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그냥 게임적 허용이거나 둘 중 하나겠죠. 어느 쪽이든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요.
<RE:4> 본편을 플레이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을 다른 위치에 있던 에이다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장면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레온이 정신없이 마을 광장을 가로지르는 장면이나 라몬 살라자르(Ramon Salazar)에게 '넌 말이 너무 많다'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을 쏴버리는 레온의 모습, 그리고 레온과 애슐리가 고생 끝에 다시 재회하는 모습 등을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지켜볼 수 있었어서 신선했어요.
본편에서 레온이 방문했던 곳을 먼저 혹은 나중에 에이다가 거쳐가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물론 아이템 수집이 중요한 게임인 만큼 레온이 이미 가져갔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레온 때는 없었던 게 새로 생겼거나 하는 일은 있었지만요. 그래도 생체 감지 조준경이 담겨있던 가방이 비어있는 것처럼 레온이 남긴 흔적이 없지는 않아서 두 이야기의 교차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RE:2>에서도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RE:2>에서 클레어와 레온의 이야기는 게임적 허용을 고려하더라도 대놓고 모순되는 점이 많다 보니 사실상 평행우주에 가까워서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거든요.
에이다는 레온이 가지 않았던 곳도 방문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산 정상에 중요 시설을 모여있는 곳이 몇 가지 이유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일단 그 유명한 레이저 룸이 등장해요. 영화 <레지던트 이블 (2002)>에 처음 나왔던 함정의 일종인데, 당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그물 모양 레이저에 걸린 희생자의 최후는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지요. 저도 처음 봤던 순간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그게 인상적이었는지 원작 <바이오하자드 4>에도 레이저 룸이 들어갔고, 리메이크인 <RE:4>에서 다시 한번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영화와 더 비슷한 비주얼로요. 레이저 룸의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아서 데드신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 나왔던 두 희생자의 최후를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면 영화에서처럼 제법 충격적인 장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또 같은 건물 속에서 마르티니코(Martinico)라는 괴물에게 쫓기는 장면이 있는데요, 마르티니코는 재래식 무기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조우했을 땐 일방적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Alien: Isolation, 2014, 이하 아이솔레이션)>이 떠오를 수밖에 없지요. 물론 죽일 수 없는 적이 등장하는 게임은 이 외에도 있겠지만 저한텐 그랬습니다. 이런 느낌을 확정 지은 순간이 바로 바닥 밑 통로를 지나갈 때였어요. <아이솔레이션>에서도 제노모프를 피해서 지겹도록 다녔던 길이지요. 사실 본편에서도 <아이솔레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애슐리를 락커(혹은 캐비넷) 속에 숨기는 순간입니다. <아이솔레이션>에서도 락커는 제노모프를 피해 숨게 되는 주요 공간 중 하나였어요. 다만 <RE:4>에서는 두 번 밖에 등장하지 않고, 원작에서도 등장했던 요소라고 하니 <아이솔레이션>의 영향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아무튼 <RE:2>나 <바이오하자드 RE:3 (Resident Evil 3, 2020)>에서도 에이리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를 찾을 수 있었는데 <RE:4>와 <세퍼레이트 웨이즈>에서도 역시 발견할 수 있어 에이리언 시리즈 팬으로서는 여러모로 반가웠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재미있는 경험이 하나 있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닥 밑 통로를 지나가고 나타난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아이템도 없고 별다른 정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길과 공간을 만들어 둔 건지 좀 의아했는데 게임을 다 끝내고 나서 검색을 해본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A가 사실은 먼저 지나갔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바닥 밑 통로를 지나 공간 B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이고요. 그런데 저는 벽을 파괴하면 나타나는 지름길을 우연히 발견해 공간 A를 건너뛰고 공간 B로 갔던 겁니다. 그래놓고 바닥 밑 통로를 역주행해 공간 A로 갔던 거죠. 조금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바닥 밑 통로를 지나며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감각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에이다와 레온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팬들 사이에서는 레온이 에이다 일편단심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RE:2>를 플레이하고 나면 레온이 에이다에게 짧은 순간이었지만 깊게 빠졌었다는 걸 느낄 수 있고요. <세퍼레이트 웨이즈>의 도입부 컷신에서 에이다가 루이스의 댄스에 아주 잠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는 레온이 6년 동안 꿈꿔왔던 걸 루이스는 단 몇 분만에 이뤄냈다며 다들 흥분하더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는 말이겠지만 아무튼 에이다를 향한 레온의 마음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인 듯합니다.
그런데 <세퍼레이트 웨이즈>에서는 에이다 역시 레온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레온에게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면 당신이 원하는 인사를 해줄지도 모른다고 하기도 하고, 무전이 끝난 뒤 "나만 두고 죽지 마. (Don't die on me, now.)"라고 말하거나, 오스문드 새들러(Osmund Saddler)를 잠시 쓰러뜨린 뒤에 "당신도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레온. (I trust everything is fine on your end too, Leon.)"이라고 혼잣말하는 장면이 그랬어요.
탈출용 헬기에 올라타기 직전 레온에게 "당신도 타겠어?"라고 물었을 때 레온은 아래와 같이 대답합니다.
"여기서부터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쯤은 우리 둘 다 알잖아. (I think we both know this is where we go our separate ways.)"
이때 돌아서며 알았다고 말하는 에이다의 표정에 왠지 진한 아쉬움 혹은 실망감이 느껴졌어요. 물론 에이다도 레온이 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겠지만 거기에 약간의 기대와 진심이 묻어난 건 아닐까 짐작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대화에 앞서 두 사람이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 에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나갈 수 있어… 그리고 혹시 또 모르잖아? 살아서 다시 만날지. 그렇게 되면 그땐, 당신이 원하는 '인사'라는 걸 해 줄게. (You walk away now… and who knows? Maybe you'll live to meet me again. And then I might get you that "greeting" you were looking for.)"
여기에 레온은 이렇게 대답하지요.
"내가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아? (You think I'm gonna give up that easy?)"
이때 에이다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어져요.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헬기에 올라타기 전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던 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앞에서 에이다가 레온과 애슐리가 이 상황을 헤쳐나가자며 일어서는 모습을 천장에서 내려볼 때, 에이다는 살짝 콧방귀를 뀝니다. 라쿤 시티에서 보았던 레온의 내면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슐리든 아니든 결국 레온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와 더 잘 어울린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 같기도 하네요.
<RE:4> 본편에서는 에이다와 애슐리(Ashley Graham)가 직접 대면하는 일이 없었지만 <세퍼레이트 웨이즈>에서는 잠시나마 조우하고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눕니다.
애슐리: "레온을 도와줘! 빨리! (Leon needs help! Hurry!)"
에이다: "나한테 맡겨. (I'm on it.)"
그리고 에이다는 수많은 적을 헤치고 나아가 레온에게 로켓런처를 던져줍니다. <RE:2>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레온과 에이다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운명이라도 결국 둘의 복잡미묘한 관계는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웨스커
<RE:4> 본편에서는 엔딩에서만 잠깐 모습을 보였을 뿐인 흑막 알버트 웨스커(Albert Wesker)가 <세퍼레이트 웨이즈>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유치한 캐릭터라는 근거 없는 편견을 조금 덜어낼 수는 있었어요. 생각보다 분위기도 괜찮았고요. 상당히 어두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점은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요.
그리고 생각보다 부지런해 보였습니다. 에이다가 위기에 빠지자 직접 구하러 와서는 침대 위에 뉘어주기도 하고 새로운 지령을 전하기 위해 직접 에이다를 찾아가기도 하지요. 다른 부하들과 함께 최첨단 장비가 가득한 커다란 배를 타고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던데 왜 굳이 본인이 두 번이나 섬과 배를 왔다 갔다 했나 싶었지만 이런 건 그냥 넘어가야겠지요. 무려 미국 대통령의 딸이 납치되어 그곳에 있다는 걸 몰랐다는 점에서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당으로서는 조금 부실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이것 역시 아무래도 게임적 허용이겠지요.
마지막엔 <바이오하자드 5 (Resident Evil 5, 2009)>로 이어지는 듯한 요소가 있었는데 5편도 리메이크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클레어 레드필드의 <RE:2> 이후 활약을 다룬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Resident Evil - Code: Veronica, 2000, 이하 코드 베로니카)>의 리메이크가 먼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코드 베로니카> 나중에 발표되었던 <바이오하자드 4>의 리메이크가 나와버렸으니 <코드 베로니카>의 리메이크는 아예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네요. 물론 그게 나온다고 해도 그때 그걸 플레이할 수 있는 장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웨스커는 흑막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바이오하자드 5>를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제겐 플레이할 방법이 없지만요.
루이스
루이스 세라(Luis Serra Navarro)는 <세퍼레이트 웨이즈>에서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본편보다 더 두드러져요. 에이다에게 엠버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죽을 위험까지 겪으며 레온과 애슐리를 위한 억제제를 구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마지막에는 에이다에게 자신에게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레온을 도우러 가고요.
다시 볼 수 없는 캐릭터라는 게 아쉽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으로 남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게 있지요. 루이스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컷신
게임 중간에 여러 번 등장하는 컷신 중에는 새로운 것도 있고 본편에서 나온 것과 같은 것도 있는데요, 레온과 에이다가 대화하는 장면은 대부분 본편에서 나온 것 그대로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복잡미묘한 만큼, <세퍼레이트 웨이즈>에서는 같은 장면이라도 편집이나 보여주는 방법 등을 바꿔주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해 주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습니다.
원래 <세퍼레이트 웨이즈 (Separate Ways, 2023)>는 2월에 플레이할 생각이었는데요, 이게 엄밀하게는 <바이오하자드 RE:4 (Resident Evil 4, 2023, 이하 RE:4)>의 일부인만큼 이것까지는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주말을 이용해 플레이를 해보았습니다.
<세퍼레이트 웨이즈>는 <RE:4>의 이야기를 좀 더 완성해 주면서 같은 공간을 새로운 방법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에이다 웡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더 많은 매력과 기대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요. 메인 스토리는 레온의 이야기였던 만큼 어디까지나 사이드 스토리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추가 컨텐츠니까요.
세계관 속 시간 순서대로 간다면 다음 이야기로 CG영화 <바이오하자드: 디제네레이션 (Resident Evil: Degeneration, 2008)>과 <바이오하자드: 무한의 어둠 (Resident Evil: Infinite Darkness, 2021)>이라는 게 있네요. <디제너레이션>은 2008년에 나온 작품인 만큼 앞에서 말한 <댐네이션>처럼 제가 당시의 실사 지향 CG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한의 어둠>은 비교적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만들었고 평가도 그리 나쁘지 않아서 나중에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다음 게임은 <스트레이 (Stray, 2023)>입니다. 언제 할 수 있을지는 언제나처럼 모르겠네요. 다른 일들이 대충 예정대로 간다면 아마 2월 초 정도. 더 빠를 수도 있고 더 늦을 수도 있고요.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