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추억

하늘에서 말도 없이 비가 내린다

by 해가뜨니

국민학교 어느 날,


수업이 끝날 무렵, 창밖으로 빗소리가 점점 커지며 교실 밖은 어두워졌다.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창가에 앉은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은 빗물을 가두어 흙바닥을 감추고, 검은 구름을 비추고 있었으며, 빗바람에 물결이 일고 있었다.

선생님께 인사하고 아이들은 서둘러 물건을 책가방에 담고 나가기 바빴다.


현관 앞에는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들은 저마다의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빗물 위에 반짝이며 겹쳐진 우산들의 색깔은 마치 비 오는 날에 뜬 무지개처럼 아름다웠다.



DALL·E 2025-03-20 21.45.46 - A rainy day scene focusing only on colorful umbrellas and their reflections on the wet pavement. The umbrellas are arranged in a scattered manner, sho.jpg


친구들은 "엄마!" 하고 외치며 하나둘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현관 앞에 펼쳐졌던 무지개의 색깔은 하나둘 줄어들었다.

마지막 친구가 떠나자, 남아 있던 마지막 빛깔마저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현관문 안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안 왔구나...


얼마나 기다렸을까. 문득 옆을 보니 나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녀석도 내가 본 장면을 같이 보고 서 있었다.


“야, 우리 그냥 가자.”


친구가 말했다. 나도 더 이상 기다려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래.”


우리는 현관 밖으로 나섰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따뜻한 봄 비라서인지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오히려 빗물에 옷이 젖을수록 우산이 없다는 불안감보다는 마음이 차분해졌다.


빗줄기를 정면으로 맞으며 손바닥을 펼쳐 빗물을 받아 보았다.

마치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았을 때처럼,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으로 앞을 가린 빗물을 훔치며 우리는 서로의 독수리 오 형제처럼 머리 모양을 보고 웃었다.


옷은 빗물에 젖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엄마가 안 왔으면 어때? 비 맞고 집에 가서 씻으면 깨끗해지잖아.”


“맞아~”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높은 언덕이 나왔다.


저 언덕 위에만 올라가면 내리막길, 그리고 우리 아파트가 보인다.


친구와 나는 언덕 중턱에 올라갈 때쯤 위에서 계곡물처럼 흘러내리는 물 위에서 장난기가 발동했다.


흐르는 빗물과 같은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어차피 젖은 몸, 이제 뭘 해도 티도 안 난다.


다시 언덕 중턱에 올라갈 때쯤 이번에는 신고 있던 운동화 한 짝을 벗어 돛단배처럼 흘려보냈다.

빗물은 운동화를 실어 날랐다.

물결이 만들어진 길을 따라 점점 빠르게 멀어졌다.


“야, 너무 빨리 내려간다! 잡아! 빨리 잡아!”


나는 허겁지겁 뛰었다. 친구도 깔깔 웃으며 따라 뛰었다.


운동화는 웅덩이에 철퍼덕 빠지고 돌덩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헉헉대며 따라간 나는 조심스레 운동화를 건져 올렸다.

잠시나마 주인의 발을 떠나 자유를 느꼈을 운동화를 보며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다시 언덕을 향해 걸어간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집안은 어둡다.


엄마는 누워 계셨다. 아프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면서 일어나시는데 나를 보고 깜짝 놀라신다.


“밖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왔어? 우산 가지고 가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야, 엄마... 괜찮아"


"얼른 옷 벗어. 감기 걸리겠다. 물 데워올게"


나는 깨끗한 물로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개운했다.


그런데 책가방 속에 책과 공책은 괜찮지 않았다.


방안에 빨랫줄을 걸어 다음날까지 겨우 말렸다.


오징어 쭈구리처럼 변한 책과 공책을 보면서도,

그날의 비가 싫지 않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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