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중국집
일요일 오전, 집에는 나와 동생만 있었다. 엄마는 전날 서울의 이모네 집에 볼일이 있어 올라가셨고, 아버지는 아까까지 함께 계셨지만 갑자기 친구분과 약속이 생각났다며 급히 나가셨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자 배가 고파왔다.
"형, 배 안 고파?"
"나도 배고프지."
"아빠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 보자."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다.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텅 빈 냉장고 속을 보니 불안감마저 들었다. 동생은 계속 배고프다고 투덜거렸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띵동!
대문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세요?"
"형제반점 아저씨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배운 것이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 것.
"저희 안 시켰는데요."
"너네 아빠가 시키셨단다."
대문 가운데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니, 형제반점 배달 아저씨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아저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철가방을 내려놓고 불향 가득한 간짜장 두 그릇과 노릇하게 구워진 군만두를 꺼냈다.
"계산은 아빠가 했어. 맛있게 먹어. 다 먹고 나면 그릇은 밖에다가 그냥 놓으면 돼."
그리곤 배달 아저씨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동생과 나는 간짜장과 군만두를 앞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민했다.
"형, 우리 아빠가 시켜준 게 맞겠지?"
"나도 몰라. 괜히 먹었다가 돈 물어줘야 하는 거 아냐?"
"형, 배고파. 그냥 먹자."
"조금만 기다려 보자."
음식을 앞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형, 전화 왔어. 받아봐. 아빠겠지? 아빠면 아빠가 시킨 거냐고 꼭 물어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야?"
"응, 아빠인데. 아빠가 중국음식 시켰다. 동생이랑 맛있게 먹어."
그 순간, 동생도 수화기 속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간짜장의 포장을 벗기고 있었다.
동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역시 아빠는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어.
"방금 중국집 아저씨 왔다 갔어. 고마워, 아빠!"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는 각자의 간짜장을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동생은 마음이 급한데 짜장면을 비비는 게 어색했다.
"너 거 줘 봐. 형이 비벼줄게."
"형, 여기 있어. 고마워."
젓가락으로 면을 가득 들어 올려 한입 가득 짜장면을 넣는 순간, 입안 가득 짭조름한 감칠맛과 고소한 불향이 퍼졌다.
"봐, 형. 아까 먹자니까! 후루룩~"
"그러게. 후루룩~"
자, 이제 군만두를 먹어볼까?
나는 짜장이 묻은 나무젓가락으로 군만두 하나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지만 부드럽게 씹히며, 고기의 육즙과 기름이 입안에 퍼졌다.
"와, 군만두 진짜 맛있다. 너도 한번 먹어봐."
"응, 형…"
배고픔이 어느 정도 가시자 그제야 짜장면 그릇 안쪽에 새겨진 파란색 글씨가 눈에 띄었다.
'형제반점'
시간이 흘렀다. 그날 이후에도 우리 집은 형제반점에서 음식을 시켜 먹었고, 배달 아저씨는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배달 올 때마다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셨고,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안심하고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다.
형제반점의 배달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였다.
형제반점은 형이 주방을, 동생이 배달을 맡아 운영하던 가게였다. 형제는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가게를 꾸려왔다. 그런데 동생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형은 슬픔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형제반점은 문을 닫았고, 어느 날 간판마저 내려졌다.
그 후로도 나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가 시켜주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배고픈 날, 아빠가 선물처럼 보내준 간짜장과 군만두.
그리고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배달 아저씨의 환한 미소.
이제는 건물마저 철거되어 그 자리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형제반점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