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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광 Feb 11. 2022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내가 겪은 강박증1

 강박증에 걸리고, 강박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까지 7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렇게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무서운 마수에서 벗어났다는 게 잘 실감이 안 나고, 언제라도 그 덫에 다시 걸려들 것 같다는 공포스러운 생각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강박증은 이제 내게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상상, 또는 공상의 한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벗어났다는 사실이 강박증이 내게 느끼게 했던 좌절과 서러움을 한꺼번에 씻어내리지는 못했다.

 7년의 세월이 지나, 엄마와 집 근처 읍내 식당에서 외식을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엄마는 강박증에서 벗어난 게 기쁜 일인 것 같아?"

 엄마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엄마의 그 반응은 적절했다.

 "7년이 걸려서 강박증이 나았어.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알아? 내 삶이 이제 마이너스에서 겨우 영점으로 돌아왔다는 거야. 강박증에서 나으면 바로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아니, 나는 이제서야 남들처럼 행복이라는 목표를 가져볼 수 있는 스타트선에 준비 자세를 하고 있는 것뿐이야. 남들은 이미 자신의 행복을 향해 저 앞까지 달려가 있는데, 말야."

 지금, 강박증에 걸려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강박증에서 벗어나기만 할 수 있다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느낀 현실은 그랬다. 그래서, 사실 나는 강박증에서 나아지는 건, 단지 강박증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강박증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과정까지 포함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박증에 걸려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는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강박증은 심할 경우에는 정말 원수 같아서, 강박증을 드디어 '죽이고' 나면, 오랜 철천지 원수에게 복수하고 난 뒤의 허망함과 허전함 같은 것이 밀려오게 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강박증에 현재 걸려 있어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좀 더 구체적인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그리고 로드맵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아쉽지만, 나는 그런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다. 나는 온전히 '맨땅에 헤딩하듯이' 강박증이라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았지만,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적어도 자신의 앞날을 보다 현실적으로 직시할 수 있으니 그만큼 덜 불안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희망이란 게 잘못 가지면 희망 고문이 된다. 나도 겪어봐서 안다. 이제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도 낫지 않으면 그 실망감이 엄청나다.

 긍정에 대한 책에서 나온 내용인데, 감옥에 갇힌 죄수들 중 내일에 대한 희망, 긍정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일찍 죽었다고 한다. 매번 그 희망이 주는 실망감의 타격에 결국 몸도 마음도 지쳐 시름시름 앓다가 쓰러져 죽고 말았다는 거란다.

 그래서, 나는 7년 동안 내가 겪은 강박증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공유함으로써 그러한 비극을 미리 방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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