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각을 알기 위한 원칙과 Step1, St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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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우리의 희망이 녹아들어 있다. 같은 희망이 녹아든 질문으로는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연인이나 부부는 서로의 생각을 오차 없이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등이 있다.
이런 질문들을 보면서 쉽게 다다를 수 있을 지점에 놓인 답은 애석하게도 우리 희망과 다르다.
답은 ‘아니오’ 다. 부분 부분 맞는 지점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맞지 않는 지점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애석하게도.
‘내가 아닌 사람의 생각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전달받기는 힘들다’
우리가 애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위와 같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걸 종종 ‘미완성의 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보를 완벽히 전달’ 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전달하려는 욕구를 가진 존재, 그런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 간에 정보를 완벽히 전달할 수 없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자면, ‘거리’의 문제와 ‘주관성’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주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인 동물이 아니라 주관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관성은 이성과 감성의 총체이며, 각기 다른 경험과 개성의 반영 체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 ‘커피’는 ‘신 무엇’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쓴 무엇’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시고 쓴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가 태어날 때부터 각기 다른 기질에 각자가 살아온 시간, 경험, 판단 등등 서로 완벽히 공유하지 못하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과 주관이 형성된다. 성격 유형 검사들을 통해 어떤 한 가지 유형으로 묶어 보려고 하지만, 공통점을 바탕으로 묵어 보는데 그칠 뿐이다. 결국, 묵여진 사람들이 모두 서로 다른 정체성이나 주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서로 다름, 인간은 주관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간의 정보를 완벽히 전달하고 교환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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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성의 문제 이외에 우리는 거리에 의해 벌어지는 문제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시간과 공간적 거리를 말한다. (주관성을 심리적 거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적 거리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따듯한 날 지하 공연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음악을 감상했다. 그다음 날 자신이 감상했던 공연에 대해서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타인에게 손짓, 발짓, 몸짓, 언어 등 모든 것을 이용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한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 공연장의 느낌이나 분위기 현장감 같은 것은 전달 되기 어렵다. 사실 이런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서 VR 기술 같은 것들을 탄생시킨 것이기도 하다.
- 사실 거리 문제는 당사자와 구경꾼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상현실과 VR 같은 기술이 발달한다면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메꾸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맨 처음 말한 주관성에서 비롯되는 격차를 메꿀 방법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단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걸음을 디딜 수 있다. 인정하지 않고 걷기 시작하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크게 두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가 의도를 왜곡시키려 하지 않는 노력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 나름대로 의도가 왜곡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정보를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주관성, 외부 정보들을 ‘무시’ 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가 남의 의도와 나의 해석을 구분하려는 노력이다.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했다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노력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두 가지 필요한 노력을 살펴보았을 때,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보다 정보를 듣는 사람들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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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노력하면 될까? 나는 두 가지 단계를 통해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단계가 ‘학습하기(이해하기)’ 단계 두 번째 단계가 ‘해석하기’단계다. 물론, 이 바탕에는 ‘타인이 전달한 정보’와 ‘나의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깔려있다.
화자의 목소리만 들어라.
단어가 아닌 맥락이 의미를 결정한다.
학습 단계에서는 화자의 목소리만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게 내가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잘못된 선입관이 형성된 이후에는 강사가 그 정보를 바로잡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습을 위해서는 자신을 비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수 있고,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결국, 화자의 목소리만 들으라는 것은, 자신과 환경을 백지화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기존의 다른 영화들에서 ‘악’을 어떻게 활용했건 간에 이 영화가 전달하고 있는 ‘악’만을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단어가 아닌 맥락이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악’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고 당신이 알고 있는 ‘악’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어보다는 문장이, 문장보다는 단락이 그 의미를 결정한다.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당신은 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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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을 주시하라.
환경을 주시하라.
해석하는 단계에서는 남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구분하려는 노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관심이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쪽으로 흐르기 쉬운 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쪽으로 흐르기 어려운 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서,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의 사람은 우파적인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좌파적인 의견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자신의 관성, 특성을 주시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편향성 때문에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다른 제품들이 ‘개인화’를 염두에 둔다고 당신이 만들 제품이 ‘개인화’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 ‘히어로= 강자’라는 설정이 있다고 당신이 지금 감상하고 있는 영화의 ‘히어로’ 가 강자로 설정되어있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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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가 해석한 것은, 영화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출연한 배우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해석한 결과 그 영화는 나쁜 영화라는 주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해석 일 뿐 사실이 아니다.
우리 모두 캠프파이어 시간을 가져 보자.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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