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 차 주식회사 해일막걸리
벌써 2023년의 마지막입니다. 모두 연말을 안녕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도 오늘 금년의 마지막 하루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른 출근길부터 체험 시작 전까지 신림동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는데, 꽤 낭만적인 마무리였지 않나 싶습니다. 매장 안은 자꾸만 멈추는 온풍기며 뒤돌면 찍혀 있는 흙 발자국이며 다소 어수선했지만 예쁜 눈발이 나리는 풍경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해일막걸리가 지나온 올해가 딱 오늘 같아요. 여러 시도들과 마음들로 복작복작했던 내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온을 찾은 모양새, 여전히 거칠고 울퉁불퉁한 불안을 살포시 눌러주는 사랑.
저희를 꾸준히 지켜봐 주신 분들은 이미 아실 거예요. 냉철한 판단도, 특별한 대책도 없이 뛰어든 창업이었죠. 막걸리에 대한 지식은 측정 불가였습니다. 너무 없어서요. 그래도 고마운 인연들을 만나 주식회사 해일막걸리를 설립했고요. 기초 자본도 없어서 이 정도로 법인을 세우는 게 가능한가 싶은 돈으로 시작했고, 소액 광고와 지인 영업으로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게 벌써 작년 일이네요.
그래도 뭔가 이루었다는 생각이 희망이 되었고,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2023년을 맞았답니다. 제일 바빴을 땐 4개월을 내리 쉬지 못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모든 도전이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게 다른 것처럼요. 상반기에만 지원 사업을 18개 정도 신청한 것 같아요. 모두 떨어졌습니다. 마땅한 장소 없이 공유 주방을 빌려 진행했던 하루체험은 한 달에 한 번 성사되면 많이 한 거였어요. 어떠한 것도 쥐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흐르고, 어느 심사위원의 혼잣말처럼 '그동안 뭘 얼마나 한 거야?'의 상태가 되었죠. 그러게요. 그동안의 발버둥은 허공을 향한 거였나 봐요. 어쩌면 유효한 움직임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어요.
반복되는 실패 경험은 무력감을 불러와요. 자조와 불평은 습관이 되고요. 관성처럼 돌아온 열패감은 말실수를 하게 만들고, 기회를 날려 버리고, 타인의 하루를 망쳐버리죠. 사실 열패감 탓이 아니에요. 감정을 관리하지 못하는 제 탓이죠.
하지만 이렇게 불완전한 저에게도 운이 따라 주었습니다. 이대로 이삿짐을 싸야 할 게 분명했던 공유 사무실 계약은 연장되었고, 우연히 큰 행사를 맡게 되면서 약간의 돈도 벌었고, 놀랍게도 적당한 매장을 임대할 수 있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출도 받았으니까요. 그뿐인가요. 좋은 분들과 길거리 쓰레기를 줍는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업으로 월세를 낼 수 있게 되고, 소액이지만 올해 마지막 지원 사업에도 선정되었답니다.
무엇보다 해일막걸리를 찾아주시는 손님분들이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정말이요. 찾아오기도 힘든 골목 안쪽, 아직 유명하지도 않고 광고도 없는 이 작은 공방에 막걸리 체험 문의를 주시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오셔서 즐겁게 체험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요. 심지어 제가 쓴 글을 읽고 오셨다는 분도 계세요! 꾸준히 찾아와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이제와 고백하자면 개업 후 해일막걸리의 내부 목표는 '월세 내기'였습니다. 인건비는 차치하고 월세만 안 밀려도 훌륭하다는 게 제 직감이었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매달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모두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물론 흑자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요. 오늘의 함박눈처럼 사랑을 펑펑 쏟아주셔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겪어 온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받은 사랑만이 온전히 남아서, 고맙다는 인사로 2023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올 한 해를 충만한 마음으로 마칠 수 있게 해 주셔서, 무사히 내년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같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