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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Feb 10. 2024

위장 환경주의 사이

최선을 변명으로 쓰고 싶지 않아

대학을 가기 위해 선택한 전공은 경영학이었습니다. 경영학 수업에서 가장 처음 배운 건,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다라는 말이었을 거예요. CSR이나 CSV 또한 배우긴 했지만 뜻풀이 정도만 언급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대학생일 땐 어떻게 하면 회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도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궁리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경영 활동에 의한 착취와 오염, 불공정을 완전히 모른 척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보단 홀로 화를 내는 수준이었죠. 제 가치관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정규 학기를 다 마치고 나서 참여했던 소셜 임팩트 활동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아산 프론티어유스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이를 통해 사회 혁신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어요.


아직도 부족한 제가 그 경험 덕분에 180도 바뀌었다거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일생 동안 바꾸지 않을 문장 하나를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비즈니스 임팩트가 곧 소셜 임팩트다'라는 신념이에요. 우리는 분명히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고, 나아가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죠.


참 많은 사회 문제들 중에서 특히 마음 쓰이는 건 환경오염이었습니다. 시작점을 알 수 없는 부채감이 있었거든요. 어쩌면 제가 명백한 가해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나에게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 덜 사고 조금 더 오래 쓰려했죠.


소비자일 때는 편리한 메커니즘을 운용할 수 있었어요. 일회용품을 안 쓰려면 텀블러와 수저를 들고 다니면 되고, 플라스틱 포장을 줄이려면 종이 포장재 제품을 사거나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했죠. 그러다 가격이 비싸서, 급해서, 대체품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기성 제품을 선택하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없잖아, 이미 이렇게 파는 걸 어떻게 해? 꺼림칙함은 남아 있었지만 무척 간편했죠.


그런데 창업 후 제가 생산자가 되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게 제 선택에 달려 있게 되었거든요. 소용이 단지 '예쁨'인 물건을 만들 것인지, 종이나 플라스틱, 유리 중에서 어떤 소재로 할 것인지, 단가와 이익을 어느 정도로 맞출 것인지. 제가 쓰레기를 줄이면, 손님들도 쓰레기를 줄이게 되고요. 제가 쓰레기를 만들면, 손님들도 쓰레기를 버리게 되고요. 나의 회사를 경영한다는 건 제가 나비가 되는 일이었어요.


날갯짓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오만에 지속가능성을 기업의 가장 큰 가치로 두고서는 레스 웨이스트를 목표로 했죠. (제로 웨이스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쓴다면 최대한 다용도로 재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사입하고, 버려질 가능성이 큰 물건은 최대한 잘 썩는 재질로 고르고요. 앞치마 하나도 리사이클 면 소재로 구비했습니다. 재활용보다 좋은 건 재사용임을 알기에 다회용기 할인도 도입했어요.


그런데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매장 인테리어를 하면서 보았던 건축 폐기물 포대들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스테인리스 통이나 식물 화분을 배송받으면 딸려오던 수많은 포장재 때문이었을까요. 혹은 매일 설거지하며 쓰는 다량의 물과 세제 때문일지도요. 요즘은 그토록 경계했던 위장 환경주의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어요.


증류기 하나를 사도 엄청난 쓰레기가 나와요. 써야만 했다는 건 알지만…


최근에는 하루체험의 선물 봉투를 교체하면서 비목재 종이로 새로 제작하려 했는데 비용 때문에 포기한 일도 있었거든요. 가장 저렴한 밤부팩으로 골랐는데도 그랬어요. 결국 모조지 쇼핑백을 사입했는데, 진정 지속가능성을 내세우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제작을 했어야 맞지 않나 후회도 좀 했고요. 또 원하는 이미지 때문에 흰색 쇼핑백만 고집하는 한쪽의 저를, 흰색을 만들기 위해 표백제가 쓰이는 걸 알지 않냐고 타박하는 다른 쪽의 저도 있었어요. 


명함을 새로 만드는 것도, 기념으로 드리는 면 주머니를 고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공정 과정을 상상하고 또 사용되는 과정을 떠올려 보고, 버려질 가능성까지 염두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 게 최선인지 정말 헷갈립니다. 곧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인데 이 고민은 더욱 깊어지겠죠.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여유와 지식이 있다면 좋을 텐데요.


앞으로도 최선을 다했다고 쉬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눈을 감아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나타날 테니까요. 그래도 해일막걸리 안에서 제 소신을 실현할 겁니다. 아주 작은 부분 밖에 하지 못하더라도요. 그것도 완벽하진 않겠지만요.


고민이 길어 글도 길어졌습니다.

오늘이 새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자주 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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