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막걸리 개발 일지
해일막걸리는 네 가지 향미의 막걸리를 한 번에 출시했습니다. 보통 양조장들이 공들여 빚은 한 가지 술, 혹은 같은 원주에 가수 비율을 변경해 도수 차이를 둔 두 가지 정도의 술을 내는 것과는 다른 선택입니다. 1~2개의 술을 먼저 팔다가, 차차 다른 종류의 신상품을 추가하면서 양조장만의 포트폴리오(혹은 컬렉션)를 늘리는 무난한 방식을 따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구에게나 맛있는 술은 없다! 같은 술을 먹어도 어떤 이는 달다고 하고 어떤 이는 쓰다고 한다! 나로서는 좋은 술을 정의할 수 없다! 당신의 취향, 모르겠다!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옛 유행어를 빌리자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준비해 봤어.'와 일맥상통합니다. 2022년 여름부터 치자면 막걸리 업계에 발을 담근 지 약 3년인데요, 운 좋게 용인 양조장 일을 도와드리면서 박람회나 지역 축제에도 있어 봤고 좋은 지인들께 여러 술을 소개받기도 했습니다. 같은 술을 마시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 결과, 취향은 너무너무 넓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술을, 똑같은 잔에, 똑같은 시각에 마셨는데, 느끼는 감각이 각자 다릅니다. 저에겐 분명 많이 달지 않고 기분 좋은 쌉쌀함이 느껴지던 술을, 누군가는 너무 쓰고 신 술로 여기시더라고요. 저는 분명 술에서 기묘한 청국장 냄새를 맡았는데, 누군가는 전혀 못 느끼기도 하고요. 오, 신기해라.
몇십 번의 관찰을 끝내고 결론을 냈습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 '최적'의 술을 내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100%를 갖춘 하나를 만들지 못할 거라면, 파이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특징이 조금씩 다른 술을 여러 개 내는 전략이죠. 원래 4가지로 정해놓고 기획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부재료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 보니 지금의 가짓수로 좁혀졌습니다. 마침 포장해 드리는 사탕수수 트레이도 최대 4구짜리라 최종 결정되었어요.
첫 번째, 해일막걸리는 이름에서처럼 해일막걸리의 시그니처 막걸리입니다. 유기농 멥쌀을 주재료로 사용하고요, 찹쌀의 단맛을 살렸습니다. (찹쌀은 유기농일 때도, 아닐 때도 있습니다.) 쌀과 물, 그리고 발효제만 들어가는 순곡주예요. 부여받은 색깔도 해막의 키컬러입니다. 제가 달고 깔끔한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 테스트 도중 이런 이데아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첨가제 하나 없이 딱 제가 원하는 맛이 나서 레시피를 확정 지었죠. 달달함을 적당한 산미가 뒷받침해 주어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습니다. 첫 배치는 이데아에 조금 모자라게 나와서, 다음 배치를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담으로, 품목제조보고를 할 때 담당자님이 몇 번이고 상품명을 확인하셨답니다. 보통은 회사 이름과 제품 이름을 똑같이 하지는 않는다고요. 하지만 고집대로 동명으로 지어놨으니, 더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도록 안정화에 힘써 보겠습니다.
해막00으로 이름 붙은 세 가지는 관악을 담은 로컬 막걸리입니다. 모두 해막이 자리 잡은 관악에서 소재를 따왔어요. 아주 초기에는 계절 막걸리(시즈널 막걸리)로 한정 출시하려고 했지만, 기획을 바꿔 상시로 만나실 수 있는 막걸리가 되었습니다. 이어 소개드릴게요.
두 번째, 해막홍실은 분홍색의 막걸리입니다. 아카시아 꿀과 히비스커스가 들어갔어요. 홍실의 뜻은 붉은 실로, 동양 문화에서 흔히 운명을 상징하며 서로의 새끼손가락에 매여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곤 하죠. 이 비유를 그대로 따왔습니다. 저와, 관악과, 여러분이 모두 인연이 되었으니까요. 이름처럼 색이 고운 분홍색입니다. 첫 배치는 히비스커스가 적어서 아주 연한 분홍인데요, 이후 배치부터는 히비스커스가 증량될 예정입니다. 더 진한 분홍빛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꿀이 들어가서 전체적인 질감이 매우 부드럽습니다. 후미에 아카시아 꿀의 향취가 감돌고요. 이 꿀도 관악산에서 생산하는 꿀을 사용하려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꿀 재고가 없어서 다른 생산지의 꿀을 넣었는데요, 올 5월부터는 햇꿀이 나온다고 합니다. 왕창 사서 재고를 확보해 두겠습니다. 초여름부터는 정말 관악이 녹아있는 막걸리가 될 예정입니다.
세 번째, 해막청아는 레몬과 타임이 들어간 상큼 쌉쌀한 막걸리입니다. 청아는 관악 청년의 활력을 담고자 했어요. 통통 튀는 산미를 통해서요. 원재료 관리 때문에 주로 수입산 못난이 레몬을 사용하지만, 철이 되면 제주 못난이 레몬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아무래도 탄소 발자국이 적은 게 좋죠.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서 술을 담가보고 싶었는데 해막청아를 통해 이루게 되었습니다. 레몬 껍질은 최대한 제거하고 생육을 으깨서 침출합니다. 레몬이 워낙 많이 들어가다 보니 연노랑빛 막걸리가 되었어요. 예쁩니다. 마시다 보면 연하게 느껴지는 상쾌함은 타임 덕분입니다. 해막청아의 고유색은 파랑인데요, 노랑과 고민하다가 골랐는데 실물에 붙여 보니 상상하던 것보다 더 예뻐서 마음에 듭니다. 노란색은 언젠가 다른 술에 쓰이지 싶어요.
네 번째, 해막굴참은 관악구 난곡동에 있는 굴참나무를 구현하려 했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꽂은 지팡이가 자라나 거대한 참나무가 되었다는 굴참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71호로 지정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라고 해요. 저도 사실 잘 몰랐다가, 활용할 수 있는 관악의 로컬 자원을 조사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참나무 하면 떠오르는 시원한 느낌을 막걸리에 담으려 했어요. 그래서 상쾌한 느낌을 주는 박하, 스피아민트, 타임이 들어갑니다. 참고로 민트와 타임은 해막 매장에서 직접 재배하여 따넣습니다. 효모 두 가지를 배합하기 때문에 다른 종류보다 기본적으로 더 깔끔한 느낌이고요. 원래는 더 허브향이 강했었는데, 이번 배치는 많이 약하게 나와서 해막홍실처럼 허브 투입량이 증량될 예정입니다. 테스트 때처럼 제대로 나와준다면 굉장히 특이하다고 느끼실 수 있는 막걸리예요.
참고로 안타깝게 제품화가 되지 못한 막걸리 중에서는 꽃차가 들어간 친구도 있었고, 치자가 우러나 주황색이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정향 같은 강한 향신료를 집어넣어 본 친구도 있었고, 아예 대나무 통에 댓잎과 함께 담아본 막걸리도 있었네요.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색다른 시도를 가미한 막걸리들도 천천히 선보일 계획입니다. 벌써 재미있군요.
설명보다 더 정확한 건 아무래도 직접 맛보시는 겁니다. 각자의 판단이 각자에게 정답이거든요. 해일막걸리에서는 정답을 쉽게 찾아내실 수 있도록 시음을 준비해 놨어요. 시음을 신청하시면 현재 매장에 있는 모든 종류의 막걸리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유료 시음이긴 하지만, 막걸리를 구매하실 때 시음비를 그대로 할인해 드리니 구매 계획이 있으시다면 꼭 시음을 해보시길 추천드려요.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으로 선택하실 수 있고, 또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남은 3월 한 달간, 매일 16시부터 20시까지 해일막걸리에서 뵙겠습니다 :)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