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덜 해로울 수 있을까

제조의 지속가능성 이야기

by 해일막걸리

얼마 전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2024년의 전 세계 기온 상승 폭이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한 1.5℃를 넘겼다는 뉴스죠. 여상하게 휴대폰을 쥐었다가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해일막걸리는 지속가능한 막걸리를 목적으로 탄생했습니다. 배경에는 당연히 지속가능하게 살고 싶은 제 마음이 있었습니다. 환경에 신경을 쓰게 된 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어요. 그저 아까운 부분이 서서히 늘었고, 낭비되는 자원이 눈에 밟혔고, 나름 편히 살고 있는 저와 달리 불편을 겪어야 하는 존재들이 인식됐을 뿐입니다. 조금 더워도 참을 수 있고, 조금 덜 먹어도 괜찮을 텐데, 조금 덜 예뻐도 충분하지 않나, 여러 분야에 걸쳐 이어지는 생각은 어떤 부채감으로 이어지더라고요.


그때쯤 생각하게 된 문장이 '비즈니스 임팩트가 곧 소셜 임팩트다.'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돈을 좋아하는 저는, 스스로의 괴리를 메울 희망사항을 이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후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긍정하는 회사에 들어가 일하고자 했지요. 그러나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매출을 극대화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곳입니다. 모든 일이 제 가치관과 딱 맞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완벽한 친환경은 무엇인가, 나는 완전히 친환경적으로 살 수 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제 계산에 의하면, 그건 불가능하더라고요. 대부분의 근대 문명을 버리고 초야나 우림에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요. 냉혹하게 따지자면 도시 사람인 저는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오염을 만들어 내는 존재였습니다.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면, 모든 시도는 무용한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저는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가해에도 경중이 있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조금 덜 해로운 사람으로 살 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해일막걸리 대표로 약속했어요. 제 왼손과 오른손이 엄지와 소지를 맞댔습니다. 딱히 인류를 설득하거나 세상을 바꾸려 한 선언은 아니었답니다.


과잉 소비와 과잉 공급의 시대에서 제조업을 선택한 건 순전히 제 이기심 때문임을 압니다. 막걸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기와 물을 지속적으로 써야 하는데요. 비록 해일막걸리는 가내수공업 형태에 가깝기에 다른 업체나 분야와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수치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필수적인 소모를 제외하고, 언제나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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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병을 바꿨습니다. 깨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재사용할 수 있는 공용 유리병으로요. 이 계획은 해일막걸리의 출발부터 함께 해왔습니다. 유리병 사용은 페트병보다 단점이 많은데요, 우선 단가가 평균 10배는 비쌉니다. 해막처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없는 크기라면 단가를 낮추기도 매우 힘듭니다. 후발효 때문에 잘못하면 깨질 수도 있는 단점도 있습니다. 생산자로서는 이게 제일 무서운데요, 그래서 그냥 직접 냉장고에 두세 달 두며 지켜봤습니다. 진짜 깨지는지 확인하려고요. 천만 다행히 탄산이 꽤 올라와도 무사한 것을 보고 출시를 결정했습니다. 생산물 책임 보험도 들었죠.


재사용을 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만약 매장에서 직접 수거하고 세척한다면 그 노동력과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입구가 좁은 유리병을 잔여물 없이 잘 닦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운명처럼, 막걸리 출시를 준비할 때쯤 SNS를 통해 소우주 오아시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유리병을 수거해서 전문적으로 소독한 후 재사용하는 국내 스타트업입니다. 재사용은 추가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재활용보다 좋고, 혹여나 수거되지 않고 분리배출되거나 깨져도 다시 녹여 쓸 수 있는 투명 유리병을 쓰는 것까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사실 모든 유리가 재활용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단순히 쓰레기로 매립되는 유리는 몇십 만 년이 흘러도 썩지 않죠. 바로 대표님께 공용병을 사용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고 미팅을 한 후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유리병 디자인과 용량까지! 어차피 공용병을 사용해야 했기에 따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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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디자인도 지속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생수처럼 무라벨로 하고 싶었는데 법적으로 표기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라벨 크기를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비닐을 덜 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해일막걸리 술의 라벨은 굉장히 작습니다. 아마 국내에서 시판되는 술 중에 라벨 크기가 제일 작을지도 몰라요. 활자 크기를 최소 기준에 맞추고, 가능한 만큼 면적을 줄였거든요. 상표에는 주라벨과 보조라벨이 있는데, 주라벨에는 딱 상표명과 도수, 그리고 용량만 적혀 있습니다. 차지하는 높이가 1cm 정도 될까요. 관련 조례에 주라벨 면적에 대한 부분은 명시되지 않아서, 세무서부터 식약처, 구청까지 전화도 한참 돌렸답니다. 참 기나긴 통화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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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상단에 붙이는 이 마스킹테이프는 유일한 장식입니다. 사실 원래는 미개봉 상태를 확인하는 밀봉 씰이자 장식으로 두 가지 기능을 했지만, 아무래도 안심이 덜 되어서 투명 루땡으로 입구를 한 번 더 마감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저 예쁨의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부분이라 안 하는 게 맞는데요, 예뻐 보이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습니다. 이것만 눈감아 주세요(!) 요청하시면 마스킹테이프 부착 없이 구매도 가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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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과정의 지속가능성도 생각했습니다. 우선 주재료가 유기농 멥쌀입니다. 일반 쌀보다 당연히 비싸긴 한데,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라서 결정했어요. 유기농법으로 키워지니 자라던 땅도, 물려줄 땅도 건강하겠죠. 또 해막청아에 들어가는 레몬은 못난이 레몬을 사용합니다. 어차피 과육과 과즙만 사용하니 모양이 예쁠 필요가 없습니다. 못난이 과일은 대부분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되곤 하니 음식물 쓰레기가 될 뻔한 친구들에게 쓸모를 찾아준 셈입니다. 또 제 탐심 같아서는 수입산 보다 탄소 발자국도 적고 왁스 처리도 하지 않은 제주산 못난이 레몬으로 아주 쓰고 싶은데, 제철과 가격 문제가 있어서 기회가 될 때만 사용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포장도 최대한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장바구니를 정말 환영하고 독려하지만, 때때로는 준비된 포장이 필요하니까요. 제품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PCR 봉투에 담습니다. 부딪혀 깨지지 않도록 사탕수수 받침에 잘 끼워 드리죠. 장바구니를 가져오신다면 받침 대신 버블 모양으로 형압 처리된 종이에 감싸 드립니다. 그리고 아이스팩은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쌀뜨물, 혹은 냉각수를 직접 채워 얼리고 있어요. 글을 쓰는 지금은 냉각수가 채워진 버전이네요. 알코올 도수를 재려면 증류를 해야 하니 냉각수가 꼭 필요한데, 생각보다 이때 흘려보내는 물이 정말 많더라고요! 극히 일부지만 모두 아이스팩에 잘 담겨 재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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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그래서 너 하나로 세상이 바뀌긴 하냐는 물음을 듣습니다. 곁들이는 말은 보통 이미 개인의 행동으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했다는 비관이지요. 당연히 바뀌지 않겠죠. 저의 편리한 노력은 재봤자 먼지 한 톨의 크기나 될까요. 하지만 반대로 이 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땐 나 하나로도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소비하고 낭비하고 버리는 만큼 보다 더요. 그래서 해일막걸리는 아낄 수 있는 부분을 아끼고,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쓰며, 낭비되지 않을 만큼만 생산합니다. 지속가능성이 지속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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