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나름 바쁘게 지냈던 학창 시절, 낡은 판자촌 사이를 지나 집으로 갈 때면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어떤 날은 하루를 되돌아보며 히죽히죽 웃음을 짓기도, 온갖 궁상을 떨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 이름 한 줄 남지 않은 인생은 억울하다며 널브러진 돌을 질질 끌며 푹 꺼진 노을을 뒤로한 채로 걸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여백 없는 도시에서 나의 보잘것없는 한 걸음에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꽤 낭만적인 길이였다.
동네가 가난한 것은 아녔다. 짙은 밤 별을 숨길 정도의 번쩍한 불빛도 있고, 상가들은 늦은 밤에도 문전성시를 이뤄 제법 야경이 그려지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이런 열기 가득한 번화가의 외곽에는 항상 사각지대가 존재하는데, 열기를 내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그곳의 온화함을 좋아한다.
온갖 괭음을 피해 도착한 외진 길거리엔 달빛을 머금은 조용한 소음만이 남는다. 나방이 백열등을 때리는 소리, 귀뚜라미를 머금은 물 흐르는 소리. 이 은은한 소음을 배경 삼아 공상을 음미하는 것은 나의 하루의 마무리이자 나에게 주는 자그마한 보상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 바로 직전에, 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몇 달간 일을 했다. 집까지 매일 오가기가 벅차 서울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간신히 눈을 부치며 겨우 하루를 때웠다. “어딘가엔 우리 자리가 있겠지” , 좁은 단칸방에 누울 때면 코앞의 천장에 손을 뻗으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물론 그 말은 각오였다. 우리의 20대는 비좁은 단칸방으로는 끝내지 말자는 각오. 그 말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새우잠을 잔 뒤 집에 가는 길이면 그 어떤 생각들도 날 배웅해주지 않았다. 그저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 정말 그뿐이었다. 고된 기쁨인지, 보람찬 슬픔인지 그 중간 어딘가에 흐릿하게 걸쳐있는 어설픈 감정을 머금은 채 눈을 감고 내가 걸어왔던 길을 머리에 그려본다.
그립다. 투박한 콘크리트 바닥에 움튼 섬약한 민들레 한 송이가 그립다. 처마 밑에 한 움큼 쌓인 물웅덩이가 그립고, 무엇보다 그 길을 배경 삼아 오고 갔던 그때의 생각이 그립다. 날 위로해주었던 그때의 풍경들과 그 속에 담긴 추억들이 마구 스쳐 지나간다.
어젯밤, 예전에 걸었던 길을 무작정 찾아갔다. 다시 한번 한 움큼의 위로를 바라며 모두가 떠나간 새벽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싱겁게만 느껴지는 느린 풍경 속에서 단지 날이 춥다며 ‘좀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올걸’ , 그 생각뿐이었다. 같은 길에도 서로 다른 감정이 점재하는 건 단지 하늘의 색이 변해서일까. 어쩌면 마음의 색이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