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호>
어느 평범한 밤, 그러니까 보통의 소음과 고민들이 시내버스에 실린 채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방황하며 도시의 열기를 지피는 그런 부산한 밤이면, 그 열기로 달아나버린 꿈을 주워 담기 위해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한다. 그쯤이면 간질거린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여러 생각들이 꿈나라의 문지기라도 되는 양 찾아와 두 눈을 쿡쿡 찔러댄다. 그 얄미로운 생각들과 한참을 다투다 겨우 눈을 감으려 할 때면 아침해가 빼꼼 정수리를 드러내 보인다. 그렇게 맞이한 개운치 못한 아침과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밤이 오는 것이 겁이 났다.
따르릉 알람 소리가 아침의 고요함을 앗아가면 모두들 동태 눈깔을 부비며 하루를 시작한다. 앙상하게 기지개를 뻗고 아침밥을 꾸역꾸역 삼켜내는 모습이 조금은 우습게 보일지언정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내가 잠은 푹 잤는지, 밥은 제 때 먹고 나왔는지, 그것들은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의 관심사와는 멀고 나 역시도 그러기 때문이다. 밥알인지 뭔지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에 어젯밤의 고민들을 넣어 황급히 비벼먹은 탓에 더부룩한 아침은 끊이질 않는다.
빠르게 흘러가던 분침이 어느덧 차분해질 무렵 어제의 조각들을 머릿속에서 꺼내보지만 내가 어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긴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젯밤의 어색한 기류를 떠올리며 아무리 기억을 끄집어내 봐도 그것이 어제의 기억인지, 이틀 전의 기억인지, 도저히 생각나질 않는다. 어쩌면 나의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 발을 디딘 순간 이런 복에 겨운 고민들은 잠시 묻어둬야 한다. 늘 그 자리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날 기다려주지 않는 이 회색 도시에서 이런 생각들은 날 뒤쳐지게 하는 잡생각일 뿐이다. 어른들의 눈초리에 발맞춰 나의 한걸음을 떼어가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꽤 벅차다. 너무 밝은 이들은 질타를, 너무 어두운 이들은 동정을, 난 그들을 보며 매일 나의 꿈을 고쳐 쓰고 적당히 색상을 조정하며 그렇게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간다.
수십 명의 카멜레온을 스친 후 어느덧 밤이 찾아오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항상 그 자리 같은 곳에 있는 풍경을 마주치는 게 질려와 어느덧 질리다는 느낌도 질려온다. 만약 누군가 날 트루먼 삼아 저 넘어 브라운관으로 지켜보고 있다면 로렌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좀 색다른 풍경을 달라고 소리칠 것이다! 수많은 장그래의 건배 소리와 지하철 안에 울려 퍼지는 양복 똥배 아저씨의 요란한 전화소리를 조연 삼아 성난 채 다투고 있는 자동차들의 경적 틈 사이를 지나다 보면 어느새 낡은 아파트 하나가 보인다. 오고 가는 길이 익숙해져 때로는 지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감정의 속살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기에 반가워야 한다.
정적으로 어지럽혀진 더러운 방에 홀로 누워있다 보면 깊이 묻어두었다 믿었던 무언가가 날 찾아와 방문을 두드린다. 굳게 닫힌 문 뒤로 흐르는 고요함을 마주하고 있을 때 간혹 그것들이 '면회'를 왔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형용할 수 없는 요상한 냄새 탓에 문을 걸어 잠그고 귀를 막아도 어느샌가 내 살갗엔 오만 가지 역겨운 냄새가 베여 알 수 없는 악취를 뿜어낸다. 꾹 참아낸 무언가가 몸 안에 고인 채 썩어버린 건지 벌레들이 하나둘 모여 내 시야를 가려온다. 벌레들의 날갯짓소리를 듣다 보면 그들이 내게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이 든다. "너 외로워 보여." 그들의 속삭임에 나도 그들과 함께 정처 없이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온다. 어디로 가려는지는 몰라도, 어디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서 소리칠 때면 많이 외롭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아,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아, 어쩌면 그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난 외롭지 않다. 할 일도 쌓여있고, 공부도 해야 하고, 누군가를 만날 시간을 잠시 미뤄두는 것뿐이다. 내가 선택한 슬픔이기에 난 슬프지 않아야 한다. SNS에 최대한 이뻐 보이는 사진을 끄집어 올리고, 행복해 보이는 문구를 얹혀도 연락 하나 없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거나 그들과 나의 외로움 주기가 다른 것뿐이다. 방보다 어지럽혀진 이 관계들이 가끔은 싫증이 나면서도, 아무도 남지 않을까 봐 정돈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럴 때면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저께 쟁여두었던 맥주 한 캔을 삼킨다. 이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내야 잠이 올 것이고, 잠이 와야 내일이 올 것이다. 내일이 오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무책임한 기대를 품으며 무작정 삼켜내는 거다. 술이 발효가 된 건지, 내가 발효가 된 건지 새해 첫날 들이켰던 술과는 아예 다른 젖비린내가 입안을 알싸하게 맴돌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다. 아마 모두가 서로 다른 술맛을 갖고 있겠지. "건배!!"라는 두 글자의 뜻 말이 단순히 잔을 비우자는 것일까. 시뻘게진 코를 자랑하며 호탕하게 웃는 아저씨의 수화기 맞은편 투덜거리는 여자는 본인이 '이쁜 우리 딸'이라고 적힌 것을 알고 있을까. 언제부터 서로의 인사가 "나중에 한번 술이나 먹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들의 술맛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모두 제각기의 생각들이 밤마다 찾아와 야윈 마음의 문을 두드리나 보다.
그 문을 두드리는 건 대체 누구일까. 행복으로 곪아버린 나를 비웃으러 온 나일 수도, 나의 부끄러운 기억들을 한 움큼 실고 온 나일 수도 있겠다. 그 문을 닫아 서로를 마주 하지 못한 채 ‘나다운 인생'을 찾겠다며 자존감을 소리치는 것만큼이나 웃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문을 닫고 걸어 잠글수록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갇히게 된다. 수감자 신세가 된 채 사람들과 부대끼며 억지웃음을 보이고, 최대한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셔터를 두드리는 모습이 때로는 초라해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것들은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의 관심사와는 멀고 나 역시도 그러기 때문이다.
이런 초라한 자신을 들킬 새라 모두들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속여내 지난밤들을 한탄하고는 한다. 수많은 고뇌와 눈물로 지새워 상처를 찌운 밤을 그저 날이 밝았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눈물로 어둠을 씻겨내 마주한 자신을 가슴속에 새겨내 그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끄럽고 초라해 보일지 언정 그 살구색 팔레트 위엔 자신만의 색이 묻어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나이고, 그것이 진정한 우리이며, 언젠가는 우리의 색이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어 이 회색 도시에 작은 빛을 내릴 날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