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디자인]의 저자 야마자키 료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의 커뮤니티 디자이너 김정훈
*이 글은 충남시민재단의 후원으로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청춘작당 사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역문제해결의 열쇠는 ‘사람’ 그리고 ‘커뮤니티’에 있다는 Studio-L은 이에시마 섬 재생 프로젝트, 요노 강 댐 프로젝트 등 일본의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대안과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청춘작당 3기는 한국의 마을만들기, 도시재생 등에 적용 가능한 통찰(Insight)를 얻기 위해 Studio-L 오사카 지부에서 야마자키 료 대표를 만나 Studio-L의 사업과 그의 철학을 들어보았습니다.
그가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Studio-L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겠다며 소개한 프로젝트는 지역의 병원이 이사를 가게 되면서 지역과의 관계 그리고 구성원의 생각을 담은 병원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위 세 가지를 주요 목표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도록 Studio-L은 도왔습니다. 얼핏 보면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Top-Down 형태로 의사결정이 되거나 중차대한 일이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Studio-L은 만들지 않는 디자인 철학으로 경영진과의 호흡 및 지역과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용자와 구성원들이 원활한 의견수렴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소통도구(Tools)를 제공합니다. 전적으로 모든 의견을 한데 모아 반영하기보다는 도구를 통해 시설의 고객부터 직원 그리고 지역주민까지 이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와 같은 디자인으로 병원에서는 구성원들이 직접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약 180만엔을 모금하여 병원 안에 마을 도서관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또, 주민들의 의견 및 지역과의 관계맺기 차원에서 과실수 텃밭을 조성하고 환자들과 주민들의 탁구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자발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10개 정도의 주민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지속해나간다는 것에 감탄하였습니다. 지역의 시설이 하나의 용도로 쓰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과 주민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시설을 지역의 능동적인 참여자 또는 구성원으로 끌어들여, 주민과 시설이 더불어 살 수 있게 대안이 되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Studio-L은 아카이빙을 잘 합니다. 그들의 프로젝트를 보면 과정들이 잘 기록되어 있으며 누구든지 꺼내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카이빙을 주로 하는 전문 직원이 있나요?” 그는 아담스미스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담스미스의 분업은 개인들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의 수입과 자본을 증대시키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떨어뜨렸다. 존 러스킨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특성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즉, 커뮤니티를 위한 디자인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사실 ‘효용’과 ‘분업’이라는 단어는 쓸모없을지 모릅니다. 다방면으로 두루 소양을 갖춰야만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프로젝트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야마자키 료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소 배제되어 왔던 ‘사람’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였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마을 만들기, 농촌활성화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한국보다 일찍 찾아온 일본이 오히려 마을과 재생에 대한 이슈는 십수 년 일찍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 중심의 마을 디자인을 추구하는 Studio-L은 어떤 소통 기술과 방법을 사용할까요?
야마자키 료는 마을과 친해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야마자키 씨가 어떤 마을에 갔을 때, ‘오사카에서 온 야마자키는 오사카로 돌아가라!’라고 쫓겨날 뻔한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쓸모있는 기술을 알려주자면, 대상지에 가서 재미난 사람 또는 활동이 활발한 사람 10명을 소개해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과 안면을 익히고, 그들로부터 또 3명을 소개받는다면 꽤 많은 분들에게 얼굴을 익히게 되고, 그 후 간담회 또는 회의를 가질 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일면식 없던 외지인을 갑자기 만난 마을주민이 경계심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작은 기술 같지만, 실제 마을 사업을 하다보면 의외로 풀기 어렵고, 또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와 목적을 갖고 마을과 소통하더라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도시재생 붐이 일고 있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고민거리이자, 사회적 이슈입니다. 도시재생사업, 지역활성화사업, 마을만들기 등 하드웨어의 개선과 소프트웨어의 활성화에는 부동산 가치 상승이라는 자본주의 논리가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이에 Studio-L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야마자키 료는 두 가지 그래프를 제시하였습니다.
A와 B는 같은 예산이 투여되지만, 기간은 현저히 차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떠올려보니, 최근 프로젝트를 소개해주겠다며 지역의 병원 사례를 알려주었을 때, PPT 첫 페이지에는 2003年이 적혀 있었고 설명이 끝날 때쯤 2016年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대개 문제가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짧은 기간 동안에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되어 살고 있던 주민이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이기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A그래프와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Studio-L은 B그래프와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프로젝트 리더들은 짧으면 5년 길게는 10년 이상까지 수행해야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며, 장기적인 관점 즉, 보다 멀리, 보다 길게 보고 프로젝트를 수행해나갑니다. 이와 같이 긴 호흡이라면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적응 또는 변화해가면서 갑작스러운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Studio-L이 추구하는 B그래프 형태의 프로젝트 진행은 부동산 가치와 주민들의 공동체(또는 커뮤니티)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도시재생사업, 지역활성화사업 등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Studio-L의 L은 Landscape가 아닌 Life입니다. 필자는 야마자키 료 대표가 필자와 같은 조경(Landscape)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오해와 함께 동질감을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Studio-L은 조경가적 관점보다는 철저히 생활자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있었습니다.
생활자적 관점의 솔루션은 이용자 중심의 디자인 즉, 서비스디자인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발생한 당사자 또는 구성원들을 관찰하는 것부터 출발하며, 해결해주기를 바랐던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에 대한 솔루션 또한 그들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와 접근 방법을 시도하여 디자인합니다.
커뮤니티 디자인, (문화)기획 등 소프트웨어 사업은 유형의 결과물을 단시간에 만들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하드웨어 사업에 비해 소외받거나 적은 예산을 배정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초기 시장진입이 어려운 것은 물론, 시작과 함께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건설, 건축, 조경 등의 산업이나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사업 등을 보더라도 하드웨어 사업에 예산이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사업에 비해 하드웨어사업이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일까요? 주민건강증진을 위해 설치되었지만, 이용자 없이 방치되어 주변에 수풀이 우거진 운동기구와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위해 조성되었지만 대부분 비어있거나 농산물 건조에 쓰이고 있는 전통시장 무대단상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특정 산업의 시장규모가 작고 종사자의 처우가 열악한 것은 그 산업의 수요가 없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의 선배 격인 일본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대안을 마련한 Studio-L의 사례와 경험은 분명 소프트웨어 사업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선례입니다.
야마자키 료 대표도 처음 Studio-L을 시작했을 때는 20만엔 정도의 연 수익에 해당하는 소득세를 신고했고, 아직까지도 당시의 열악함과 절박함을 기억하기 위해 신고서를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거대한 자본 속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 중심의 커뮤니티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에게 밥을 사줄 친구들 명단을 뽑아, 그들에게 재미있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주면서 끼니를 때웠다고 합니다. 현재의 Studio-L은 저렴한 가격으로 용역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Studio-L은 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제 값을 받지 않으면, 앞으로 활동해나갈
커뮤니티 디자이너들은 더욱 힘들어진다.
하드웨어에 치중되어 고장나버린 사업들은 고장난 자본주의와 함께 여실히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본이 절대적 기준이 된 사회,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이 점차 필요없어져버린 사회는 더 다양하고 깊은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자본과 하드웨어 사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람에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길러내는 사업 즉, 사람 중심의 소프트웨어 사업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와 함께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고 종사자 즉, 커뮤니티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등의 가치를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해야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서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전통시장 사업과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등 현장에서 뛰었던 필자에게는 공감과 깨달음의 탄식이 연속해서 나왔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학습하여 커뮤니티에 주목하고 사람 중심의 디자인 사고를 기반으로 정책수립 또는 사업수행을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Studio-L과 야마자키 료 대표가 현대사회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하는 영역을 개척하는 1세대로서 후발주자들이 서러움을 겪지 않으며 성장해나갈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