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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 in 노르웨이 Jun 20. 2020

민들레, 도대체 누구냐 넌.

민들레 무침으로, 할머니 치매를 이겨내다.

노르웨이의 기나긴 어두운 겨울이 가시고 따듯한 바람이 점점 다가오고 오고 있다는 걸 느낄 때였다. 남편과 나는 이번해도 여김 없이 시어머니 집 정원을 정리하러 왔다. 축 져져 갈색으로 말라죽은 나뭋잎들 그리고 그 사이에 삐치고 나온 초록 잡초를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정원을 정리하다 어디선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민들레 그냥 다 누가 뽑아갔으면 좋겠어. 돈이라도 줄텐데, 쓸모도 없는 잎이 너무 많이 자라. "


이 지구에 쓸모없는 식물은 단 한 개도 없다고 생각하는 식물 예찬론자인 나로선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됐다.


노르웨이인 남편과 살며, 문화적 충돌, 언어적 충돌을 그다지 느껴보지 못했던 나는 민들레 충돌을 느꼈다. 민들레는 나에게 무엇보다 특별하고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민들레 (8살), 버스 휴게소

민들레의 존재도 잘 모를 그때, 민들레와의 추억은 할머니와 처음 시외버스를 타고 먼 친척을 만나러 전라남도에 가던 그 길에서 시작된다. 서울 강남 한복판 아파트 단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선 창문에 보라색 커튼이 달린 큰 버스를 타고 어디 멀리로 가는 건 너무나도 설레는 일이었다. 버스에 탑승후 서울 외각을 지나, 창문 밖으로 초록 벌판과 산을 보다 차 멀리로 어느새 잠든 나를 할머니가 깨웠다.


"어서 일어나 봐 지금 여기 휴게소 근처 다 왔어, 여기서 잠깐 쉰데 화장실 갔다 오려?"

"아니, 괜찮아 그냥 버스서 잘게"라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할머니는 검정 봉지를 가지고 버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버스 옆 초록 바닥에서 무언가를 줍기 시작했다.

"할머니 뭐해?"

"아따, 여기 민들레 잎 많다, 어서 이 봉다리에 담아"

민들레 잎이 어떻게 어디에 달린지도 모르던 나는 일단 할머니가 따는 이파리와 비슷한 걸 따기 시작했다.

봉다리가 반쯤 초록잎으로 차 올랐을 때쯤 할머니는 중얼대며, "이거 시골 가져가서 바로 무쳐먹음 되겠네"

"이걸? 먹을 수 있어 할머니? 꽃도 달린 식물인데 먹어?"

"아먼, 이게 약이여 약, 무쳐먹음 얼마나 맛있는데"

이렇게 우리는 버스기사 아저씨가 "이제 고만 타세요"라고 할 때까지 민들레 잎을 땄다. 무거워진 검은 봉지는 공중에 한번 돌려 공기로 채워 쫌 맨뒤(할머니는 항상 쫌 맨다고 하신다), 좌석 옆 발 옆에 조심스렇게 두었다. 이렇게 우리는 전남 터미널까지 뿌듯한 마음을 안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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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하얀 민들레(26살), 전남 할머니 고향집

20대 후반에 들며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심각했던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심각해질 수 있었던 단계였다. 새로운 걸 보고, 먹고, 경험해야 좋아진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고 자주 새로운 장소 혹은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방문했다. 그중 하나는 할머니가 어렸을 때 사셨던, (지금은 할머니 친척이 소유하고 계시는) 집에서 단분간 지내며, 힐링 타임을 가지는 거였다. 물론 나도 취직하기 전이라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장에 갔다 온다고 하더니,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대문을 박차며 손에 뭔가를 한가득 들고 들어왔다.


" 이 하얀 민들레가 약효가 더 있데, 동네 할머니께서 하얀 민들레 모종 그냥 주셨어, 이 귀한걸" 그걸 들은 할머니는 주방에서 맨발로 "오메오메"를 연발하며 벽을 지탱하며 손뼉을 치시며 천천히 대문 쪽으로 나왔다. 엄마는 그날 바로  마당에 하얀 민들레를 심었고, 며칠 후 마당엔 온통 하얀 민들레로 꽉 차 있었다.


우리 여자 셋은 쌉싸름하면서 끝 맛은 약간 부끄러운 듯 달며, 기분 좋게 질기며 먹고 나서는 속이 가벼운 민들레의 맛에 매일 반하고 또 반했다. 이곳에서는 민들레를 어떻게 해 먹을까 궁금했던 찰나였다. 지나가는 길에 들르신다는 동네 할머니들은 다들 자기만의 민들레 레시피를 우리 과 공유했다. 물론, 대부분, "쬐가 그거 넣고, 삶아다가 쬐거 거시기 넣고..". 수학계산 보다 어려운 이 추측 게임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때, 나는 여러 민들레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민들레 잎 무침, 민들레 튀김, 민들레 부침, 민들레 밥 등이 오래된 알루미늄 상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즐겨 먹었던 건, 민들레 잎 무침이었다.

민들레 잎 무침

1. 씻은 민들레 잎을 조심스럽게 세척한다.

2. 물기를 턴다.  

3. 민들에 에 다진 마늘, 들기름, 간장, 부추, 홍고추, 깨 등을 넣고 섞는다.

4. 갖 지은 뜨거운 밥과 함께 비벼서 비빔밥도 만들 수 있다. 정말 맛있다.



특히나 할머니가 민들레 잎 무침을 너무 좋아하셨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아 하셨다. 드실 때마다 어렸을 땐 지나가는 길에도 매일 따서 집에 가져와서 무치셨다고도 했다. 특히 민들레 꽃으로 반지도 만들고 하셨다 했다. 신기했다. 내가 어렸을 때랑 할머니 어렸을 때랑 많이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들레 무침은 할머니에게 유년기 시절을 비추는 음식이었다. 집 마당에서 바로 따온 민들레를 무칠 때마다 할머니는 내 옆으로 슬며시 오셔서 흐뭇한 표정으로 민들레를 무치는 걸 보시곤 했었다.


며칠을 머물다가자 했던 여정은 몇 주가 되고 몇 개월이 지나게 되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기운차리라고 민들레를 계속 심었고, 나는 엄마의 보조, 주방장, 할머니 친구로 몇 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민들레와 함께했던 할머니와 엄마와의 전원생활은, 할머니의 치매가 더는 진전되지 않게 도와줬다. 할머니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 또한 놀라셨다고 한다. 현재, 그 후 7년이 지났어도 93세의 할머니는 약간의 건망증의 치매 증상만 보일뿐이다. 게다가, 평생 나와 함께 했던 더딘 장운동은, 민들레 잎 무침이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화장실에 간 적이 없던 나로선,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 서울로 복귀 후 몇 년 후 나는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고 바쁘게 살아갈 때쯤 엄마는 갑자기 집에 찾아왔다. "내려와 봐, 뭐 줄 거 있으니까". 급히 집 앞으로 슬리퍼를 끌고 내려갔더니 엄마가 흙이 가득 담긴 하얀 배달 스티로폼 박스를 건네주었다. "이거 예전에 시골에서 받은 하얀 민들레랑 같은 모종이야. 어렵게 구했어 집에서 잘 길러서 따 먹어" 그리고 엄마는 쿨하게 다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민들레는 추억으로 잊어버릴 때쯤 툭 하고 나를 다시 찾아왔다. 이상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민들레는 내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듯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마치 민들레가 나에게 자기를 잊지 말라고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오랜 유학생활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던 나로선 민들레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엄마와 나 그리고 할머니를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돌볼 수 있었던 시간은 민들레 (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이도 세대도 다른 우리 여자 셋은 어느새 민들레 팀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남편에겐 귀찮고 버리고 싶은 존재가 나에겐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감사하게 느끼게 해 주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현재 30대인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에게 어느새 민들레 무침은 타지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쓰면서도 눈가에 그리움의 이슬이 맺히게 하는 그리움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또 언제, 민들레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래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엄마랑 함께 해 먹었던 민들레 음식들을 추억하며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민들레 잎 돌솥밥은 간장 양념과 비비고, 김치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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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하게 구워진 새우 민들레 잎 전은 식초 간장과 함께 곁들인다.



노르웨이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고자 인스타그램 열었습니다. 블로그 글보다 저 자주 올릴 테니 팔로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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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는 무단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걸 금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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