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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캄캄 Oct 23. 2023

겁나는 마음이 삶의 원동력이었던 시절로

이번 에세이 모임 주제로 '겁'이 등장했을 때 뭔가 반갑고도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운전이든, 스카이 다이빙을 하던, 스키를 타던, 프리다이빙을 하던 '모험'에 대한 것에는 겁이 없었지만, 항상 나의 성장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겁내고, 두려워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허투루 보낼 까봐 두려워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또다시 몰려오는 두려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그러고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2020년)

내일의 내가 나태할까 두려워 잠들지 못하고, 공부를 하고, 이미 마친 업무를 폴리싱하고, 그러고도 아침에 일어나 영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다 남들은 일어나는 시간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30분 눈을 붙이고.(2021년)

2022년에 들어선 그냥 모든 일이 너무 두려워 2020년의 나와 2021년의 나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그렇게 지쳐갔던 것 같다. 


그렇게 2023년,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오히려 모험하는 것이 겁나는 사람이 되었고, 나의 성장에는 무뎌졌다. 체력이 동날까봐 두렵고, 한 달 뒤의 내가 지금보다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하지만 드디어 평범해진, 그런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문득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집정리를 하며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닮은 에세이집, 내가 정복하고 싶었던 분야의 전문서적들을 모두 미련없이 버리는 나를 보며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한 직장에서 3년차를 넘어서면 권태기가 온다더니 역시 나도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어 쓰게 재밌기도 했다. 


그러다가 잠시, 잡동사니 박스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자그마한 나무 독서대에 붙여진 문구를 보고선 모든 시간이 멈춰섰는데, 한 때 내가 가장 사랑했던 한 문장이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은 일생의 원동력이다.
The motive power is the cause of all life.  - Leonardo da Vinci


언젠가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문장이 이젠 잡동이들 사이에 있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는 사라진 나를 재밌어 하는 나라니! ㅋㅋ 그러다 문득, 다시 겁이 났던 것 같다.


정말 그러다 문득, 다시 겁이 났다.

누가 뭐래도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던 나였는걸. 그 때의 내가 그 시절을 견디지 않았더라면, 내 안에서 밀려오는 겁의 파도를 이겨내고 그 안에서 유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다녔으면서 참 한심했다. 


하루하루 그 미칠듯한 '겁난다'라는 강력한 감정으로 달려왔던 삶이 어떠한 보상을 가져다줬는지를 알면서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가 또 두려웠나보다. 역시 체력이 딸릴까봐일까? ㅎ


아무래도 다시 좀 어려져야겠다. 모든게 두려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지. 겁내고, 그럼에도 하고자하고, 유난을 좀 떨어봐야겠다. 


(역시.. 퇴사가 답이려나.. 너무 등따셔)


잡동이들 사이에 있던 당신, 다시 내 눈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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