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다.
나는 일본의 예술대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처음에는 많은 유학생들이 그러하듯 그 땅에서 일을 구하고 쭉 살아갈 생각이었다.
3학년 겨울 방학, 엄마와 다이마루 백화점에 가서 취업 준비용 정장을 샀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거의 규격화되었다고 말해도 괜찮을 만큼 다들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을 입는다. 나는 그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들어서, 블라우스도 재킷도 구두도 코트도 몇 벌, 몇 켤레를 여벌로 사놓았다.
'어차피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런 옷만 쭈욱 입을 거니까!'
그것이 오판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학년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외국인이 취업하기에 꽤 높은 문턱을 자랑했는데, 공결석 신청서를 내고 이곳저곳 열심히 면접을 보러 다닌 덕분일까, 좋은 소식을 전해오는 회사가 있었다. 그곳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스타트업 회사였고, 본사는 내가 있는 지역과는 꽤 떨어진 도쿄에 위치해 있었다. 만약 그곳에서 일을 한다면 바리바리 짐을 싸 도쿄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너무 무리한 탓이었을까, 나는 모든 것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면접 준비도 지쳤고, 웃기도 지쳤고, 어디서도 대놓고 차별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외국인으로서 늘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거리감에도 지쳐 있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울기도 지쳤고, 겉과 속이 조금은 다른 듯한 사람들에게도 지쳐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었다.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과의 사이에는 무언가 투명한 막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집밥이 먹고 싶어졌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하고 포실한 집밥. 내가 사는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색 있는 음식들, 긴장하지 않고 푹 퍼진 라면처럼 있어도 되는 공기가 그리웠다.
‘내 사람들’이 그리웠다.
4년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다가 하필 그 시기에 향수병이 찾아온 것이다.
4년 동안 익숙해진 곳을 떠나, 잘 알지도 못하는 도쿄로 이사해야 한다는 조건은 내게 꽤 무겁게 다가왔다.
현재 있는 곳에서도 향수병을 앓고 있는 마당에, 잘 모르는 도쿄로 이사를 가야 한다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겐 확신이 없었다. 취업도 좋고 외국 생활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집의 온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일은 꼭 그곳이 아니라도 어디에서든 가능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와 아빠도 나의 귀국을 환영했다. 나는 아직 젊었고, 시간도 많이 있었다.
딱히 한국에서 무엇을 할지 정해놓았던 것은 아니었으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조바심과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 된 밥상을 걷어 차고 나와서였을까?
생각해 보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에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은 아니다. 의료 계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조금 더 시간에 여유를 두며 일을 찾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아무도 내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른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유학까지 다녀온 몸'이었다.
이대로 명확한 계획 없이 홈 프로텍터를 계속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귀국 후,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친구가 소개해 준 한 재능기부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그곳은 그림을 그려주는 작가, 녹음을 해주는 성우, 코딩을 해주는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는 사이트였는데, '재능 기부'인 것치고는 나름의 수익이 발생하는 듯했다. 당연히 번역을 해주는 게시판도 있었다.
가격은 A4용지 한 장 당 5,000원.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꽤 높은 수수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재능 기부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흐린 눈을 할 수는 있다.
가입을 하고 자기소개를 쓴다. 당시 내가 이력란에 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학력뿐이었다. 사실 나보다 학력도 훨씬 뛰어나고 업으로 번역을 하는 전문 번역가들도 많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력란을 그토록 짧게 채웠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런 나에게도 번역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처음 의뢰받은 일은 EJU(일본 유학 시험) 일본어 과목의 독해 지문 해설이었는데, 다행히 나와도 인연이 깊은 시험인지라 힘 들이지 않고 하루 만에 일을 끝냈다. 이 일을 의뢰한 사람은 일본어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였는데, 왜 내게 자신이 할 일을 부탁했는지 아직까지 이해가 잘 되지는 않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한테는 참 행운이었다. 훗날 이 강사님은 나의 단골 고객이 된다.
며칠 뒤, ‘너무 잘해주셔서 또 부탁드리고 싶다’는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그 메시지는 마치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확인해 주는 듯했다.
이 사이트에서 단순히 '번역 일만 하겠지' 하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번역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을 하기도 했다.
위의 강사님이 보내 준 단어 목록들을 과목이나 난이도 별로 나누어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고, 단순히 히라가나 순으로 단어들을 나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 후로 감사하게도 내게는 다양하고 많은 양의 의뢰가 들어왔다. 일본에 살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부터 판권 문의를 하려고 손 편지를 쓰고 싶다는 의뢰, 화장품 수출 홍보 글 번역 등등.
정말 요즘 말로 하자면 '개꿀'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일하고 5,000원을 벌다니?!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어린아이(?)에게는 꽤나 짭짤한 수입이었다.
당시 내게 번역이란 매우 단순하게, 기계처럼 일본어를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려운 단어도 없었고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손쉬운 번역들을 하며 헤헤거리고 있던 어느 날,
어떻게 보면 인생을 바꿀 정도의 엄청난 의뢰들이 내게 당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