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꿀 정도의 엄청난 의뢰들이란 사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엄청나고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번역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들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일이 있는데,
바로 불교미술 사학 논문 자료와 저작권이 만료된 일본 소설 번역이었다.
첫 번째 ‘불교미술 사학 논문 자료’ 번역은 어느 힘겨운 대학원생이나 조교님의 의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논문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자료들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 논문들을 번역하면서 꽤 많은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국의 불교 미술, 일본의 불교 미술도 잘 모르는 내게 '고대 중국의 불교미술'과 '고대 인도의 불교미술' 번역은 난도가 높은 일이었다. 무려 중세나 근대도 아닌 '고대'가 추가되어 있다니.
게다가 학교에 다닐 때부터도 꽤 징글맞아하던 과목이었는데 역시나 전공 선택 과목 정도로 가볍게 맛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던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수업에 집중했더라면, 눈과 마음에서 캐치되는 단어와 의미가 조금은 더 많지 않았을까? 갑자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시 배움의 과정에서 헛되이 사라지는 것들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처음 의뢰받았던 내용은 바로 '고대 인도의 불교미술'이었다.
일단 패기롭게 수락했지만 사실 머릿속에서는 대혼란의 느낌표가 끊임없이 솟아났다. 논문 속 사진에는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문자들이 있었고 가장 나를 압도했던 것은 바로 유물이 출토된 곳의 지도였다.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지도가 있었다. 이것이 지명인지 유물의 이름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상황. 하나하나 검색해 가며 지명과 유물의 이름을 나누었다.
현대에 와서는 지명이 바뀌어 이곳이 원문 속의 장소와 일치하는지도 조사해야만 했다.
하나하나 검색하며 지명을 나누던 손끝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뭔가 잘못됨을 직감하고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게……?
게다가 '불교' 미술이었지만, 철학이나 문화에 기반해 밀교나 힌두교 관련 자료도 함께 얽혀 있었다.
각각 다른 분야인 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셋의 접점이 너무나 많았다.
번역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원문만 잘 번역(개중에는 단순히 해석에서 그치는 사람들도 있지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면 이처럼 원문에서 더 깊이 조사해야 할 사항들이 반드시 생겨난다.
예를 들면 표기된 연도는 정확한지, 이 단어의 의미가 하나뿐인지, 용법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을 조사하다 보면 인터넷의 파도를 너울너울 타게 된다. 서점에 들락거리며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도 한다.
당시의 나는 그런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단순히 원문만 잘 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게,
번역이라는 일의 방대함을 조금이나마 '찍먹' 해보게 되는 계기였다고 할까?
눈물을 참으며 자료를 넘긴 후 반년 무렵이 지났을 때였을까, 같은 분에게서 다음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를 받아들일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지난번 번역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던 내게 그것을 거절할 여유는 없었다.
승낙을 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나의 번역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아주 오랜 지난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의뢰는 '고대 중국의 불교미술'이었다.
중국은 비교적 익숙한 나라라 그런지, 지명은 인도미술 때보다 비교적 빨리 찾아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단어 자체였다. 물론 일본어로 쓰인 논문이었기 때문에 단어에 대한 부가 설명도 함께 있었지만 때로는 같은 한자라도 한국과 의미가 다른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면 알지도 못하는 한중사전을 뒤져가며 단어를 조사해야만 했다.
내게는 인연이 없던 중국어도 강제로 공부하게 된 셈이다. 현대 중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까지 파고들어 조사해야 할지 그 끝을 알 수 없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분명 번역하고 있는 언어는 일본어인데, 마치 중국어문학과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괜히 한다고 했나…? 돈 받지 말고 그냥 포기할까?!'
그런 식으로 그냥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떠올랐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당시의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일거리였기 때문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의 알량한 책임감이라 하겠다.
두 개 모두 당연히 논문 한 권을 다 번역하는 일은 아니고, 10장~16장 정도를 가볍게(?) 번역하는 일이었지만 당시의 내게는 그 정도 분량도 마치 100장처럼 느껴지곤 했다.
1장을 번역한 후 앞으로 몇 페이지가 더 남았는지 무의미하게 세어보는 날도 많았다.
그만큼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이란 자신과의 싸움이다.
하다 보면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지겨워서 당장이라도 자료를 덮고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반드시, 무조건 온다!
하지만 그럴 때 마음을 차분히 하고 한 줄 한 줄, 한 단락 한 단락, 한 장 한 장을 묵묵히 넘겨가는 것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버티면서 나는 번역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인 '인내심'을 배웠다.
그것이 바로 번역 일을 하면서 처음 체득한 인내였기 때문에 내게는 꽤 의미가 큰 의뢰였다.
두 번째 의뢰인, 일본 소설 번역 이야기 또한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여기서 그 이야기까지 함께 쓰면 조금 길어질 염려가 있으니 우선은 다음 장에서 계속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