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번역으로 감성충전 할 줄 알았지

by 해강

자, 그럼 다시 두 번째 획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두 번째 ‘저작권이 만료된 일본 소설 번역’은 내게 소설 번역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첫 문학 번역 의뢰였다.

의뢰자는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일본 소설들을 찾아 개인적으로 번역을 맡기고 혼자서 감상하기를 즐기는 분이었다. 정말 훌륭한 취미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때 의뢰받은 소설은 바로 유메노 규사쿠의 《인간 소시지》이다.

유메노 규사쿠는 기담이나 환상 문학, 추리 소설 등을 주로 쓰는 소설가인데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도 조금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소설의 내용은 여기에 써버리면 재미가 없으니, 흥미가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잔인하거나 수위가 높은 내용은 아니고, 기괴하지만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소설이다.


원문이 담긴 파일을 받아 열어보니 지금껏 해왔던 일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양이 꽤 많아서 순간적으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역시나 소설은 소설이었다.

그전까지는 비교적 잡다하고 간단한 번역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소설을 번역하는 일이란 그때까지의 번역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불교미술 논문처럼 단순히 내용의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학 번역이라는 근본적 어려움이 있었다.




어떤 글이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학에서는 문체가 아주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저자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심지어 국적도 다르다.― 각기 다른 말투와 문체를 가졌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하나 생겨나는데, 내가 그 문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고 어떻게 살릴 것이며 어디까지 나의 표현이 들어가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원문은 아주 정갈하고 담담한 문체인데 내가 옮겼을 때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화려한 문장으로 바뀌어버리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니까.

문학 번역에서는 옮긴이가 표면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자신의 문체를 최대한 죽이고 온전히 작품의 문체를 살려야 하지만,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인 이상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


또, 인물 관계를 파악하고 지칭과 호칭을 잘 구분해서 번역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의 관계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르거나 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 간의 호칭이나 지칭, 높임말 등이 아주 다양하고 복잡하다.

《인간 소시지》에는 나이 든 화자가 나오는데, 그의 입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나오는 지칭과 호칭을 어떻게 구분해서 사용할지 나름대로 관찰하고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인물의 말투를 설정하고 시대상을 파악하는 일도 빼먹어서는 안 된다. 참, 중요한 게 많기도 하다.

예를 들어, 1920년대를 살아가는 인물이 2020년대에 사용하는 말투와 어휘를 쓴다면 어떻겠는가. 이건 뭐, 갑자기 타임리프를 하는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린다 (물론 그런 설정의 내용이면 상관없겠지만).

번역을 하다 보면 무심코 자기가 자주 쓰는 말투나 단어들을 사용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번역가는 번역을 할 뿐 그 캐릭터가 아니다.

인물의 말투는 작가가 의도한 성격이 드러나는 요소이기도 하니, 이 과정에서 캐릭터에 번역가의 자아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몰입하다 보면 종종 나오는 실수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자잘한 고민을 꽤 많이 했다. 별로 많지도 않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 모두 ‘이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자주 했던 것 같다.

남들에게는 단순하고 쉬운 소설이었겠지만, 《인간 소시지》는 처음 접해보는 문학 번역이라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아주 큰 공부가 됐기 때문이다.

읽은 사람이라면 이해했겠지만, 위의 항목들은 사실 당시 겪은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소설을 번역하면서 배운 점이기도 하다.


내가 그러했듯 많은 사람이 소설을 계기로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실제로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소설이나 에세이 번역을 하고 싶다고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막연히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건 천지차이다.


문학 번역을 찍먹 해보고 싶다면 흥미로운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를 찾아

혼자서 야금야금, 이런저런 머리를 굴려보는 것도 추천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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