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천직인 줄 알았지

by 해강

그 후 틈틈이 소일거리(가 더 이상 아니게 된)로 번역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운 좋게도 외국어 학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귀국하고 약 1년 만의 일이었다.

그래도 1년이면 홈 프로텍터 기간은 나름 짧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내가 맡고 싶은 일본어 수업을 한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원장님과 상담을 해 온 끝에 마침내 과목을 바꾸어 일본어 전임 강사 자리를 맡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언어로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디서 나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에서 작품 합평을 하거나 회사 인턴십 기간 동안 업무 발표를 할 때, 나는 어쩌면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재치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학원에서 일하며 그 생각이 어쩌면 조금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내용이 조금씩 어려워졌지만,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조리 있게 정리해서 말하고, 지식을 함께 나누는 일이 아주 즐거웠다.

‘어쩌면 이 일이 천직인 게 아닐까?!’

놀랍게도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밤늦게 오는 학생들의 질문 문자도 전혀 불쾌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두 달 만에 히라가나부터 시작해 일본어 기초 문법을 떼고 JLPT3급까지 합격해 무사히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는 학생,

선생님이랑 애니메이션으로 수업하니 너무 즐겁다던 학생(미안하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었을 뿐이다.),

JPT 점수가 600점 대에서 800점 대로 올라 이직 요건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던 학생 등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안 그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만, 나는 반복되는 일에 면역이 거의 없는 99.9% 창조형 인간이었다.


강사 일에 반복이 어디 있냐고?


있다.



수업 주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은 교재를 지정해서 사용하거나 자체 제작을 하고, 그 교재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예를 들어 3개월 동안 기초 문법 책을 끝냈다면 3개월 후 같은 과정에 들어온 다른 학생들에게 또 그 교재를 사용해 수업하는 것이다. 당연히 부가적으로 추가 자료를 만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교재를 바꿔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고정된 책과 자료로 루틴을 돌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내 머릿속에선 어느새 한 단원을 어떤 말로 설명하고 어떤 예문을 만들어 주고, 책에 나온 문장을 예시로 어떤 농담을 섞을지 달달 외워지고 있었다.

‘이건 거의 인간 복붙이다…….’



게다가 더 문제인 건, 자기 발전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감정이 들 때 많은 직장인이 이직을 고려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도 참 뿌듯했지만 나도 무언가를 배우며 발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 옮기면서 머리를 쥐어짜던 그 번역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일단은 언어와 관련된 다른 일을 하며 자기 발전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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