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3%의 삶

by 해강

그래서 이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국제무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무역이라면 외국어도 살릴 수 있고 도전해 보지 않은 분야이므로 자기 계발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학원에 다니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고 책과 인터넷 강의로 독학을 했다.

여러 가지 인도 조건과 운송 및 보험, 무역 대금 결제 방식 등을 달달달 외웠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와 약자투성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만 좋아했던 내가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던지.

그리고 무역회사에 취직한다면 학원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일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8개월 가까이 벼락치기로 공부한 끝에 다행히 시험에 붙어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 자격증을 가지고 통번역 업무자를 구한다는 무역회사에 다시 취직하게 되었다.

타지역이었지만 새로운 시작에 나는 들떠 있었고,

게다가 무역 업무가 아니라 통번역 업무라니 한편으로는 너무나 행운인 일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우리는 BL 서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국제무역사로 공부했던 이론들이 실전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었다는 건 둘째 치고,

“대신 좀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통번역 업무랑 영업 업무를 같이 봐줘야 할 것 같은데.”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영업직 일까지 해야만 했던 것이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일을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크고 당황스러운 문제가 있었는데…….



“엑셀 할 줄 알지? 우리 마진 3%로 떨어지게 견적서 하나 만들어 줘~.”



…….

X됐다.

정말 다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마진 3%……? 저 수포자인데요…….

견적서요……? 백분율 계산 어떻게 하지?

아니 일단 엑셀도 못 하고 3%가 나오는 수식은 어떻게 만드는데요……? 지금요……?


믿기 힘들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백분율 계산이 필요한 아교액 만들기 작업을 아주 싫어했다.

‘미대 왔는데 왜 퍼센트 계산을 해야 하는 거지!’라고 절망했었다만, 진짜 절망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깨달은 것이다.

아교액 만들기는 계산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몇 시간을 끙끙 앓으며 인터넷을 뒤져 견적서를 만들고 있으니 보다 못한 직속상사가 한숨을 쉬며 견적서를 대신 만들어 주었다.


“아, 미대 나왔다고 했지? 그럼 새 포장지 한번 디자인해 봐요. 남는 시간에 새로 수출할 품목 아이디어도 짜 보고.”


상사에게 견적서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사건이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신제품 개발과 디자인 업무가 내려오는 게 아니겠는가.


‘저는 디자인 전공이 아니라 동양화 전공인데요……. 그리고 그것들은 제 업무가 아니잖아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5화-그림1.jpg 그림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이미 나는 매일 반복되는 물량 확인서 체크와 선적 서류 확인, 환율에 따른 차익 계산 등으로 지쳐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반복되는 일을 아주 힘들어하는 인간이었고, 심지어 거래처가 외국이다 보니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집에서 업무를 봐야 했다.

수포자에게는 내 손에 의해 몇억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도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스트레스성 과호흡으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고, 밤마다 심장이 조여 오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지 못해 몇 번이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으며 출근길에는 조심스레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지경까지 갔다.

안 그래도 쥐꼬리만 한 월급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병원비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을 게 분명했다.


퇴근 후엔 겨우 정신을 붙잡기 위해 새벽 2시가 되든 4시가 되든 좋아하는 일본 소설 읽고, 그림을 그리고, 만화를 그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거래처와의 회식 자리에서 아주 불쾌한 일을 겪었다.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참기 힘든 일이었고,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어떤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모두가 죽을 만큼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적성과 최소한의 존엄은 지키면서 살아야 그나마 ‘덜’ 죽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가로 돌아왔다.




도망치듯 떠나온 것이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좋아했던 번역과 그림, 글쓰기를 다시 붙잡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처럼 살아 있는 느낌이 드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일본어와 우리말 사이에서 딱 맞는 퍼즐 조각을 찾아냈을 때 그 짜릿함. 그걸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뿌듯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것들이 나를 웃게 하고 살려왔으니까.


“이제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


그러나 취미나 소일거리가 아닌, 내가 살아가기 위한 '사랑하는' 본업으로.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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