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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May 25. 2019

영화 김군 어쩌면 나였을 김군, 관객과의 대화

브런치 무비패스 #2   영화김군

브런치 무비패스 #2  영화 김군


5.18과 관련한 가짜 뉴스 중에 '5.18 광수'가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뒷받침한다며 극우 논객 지만원 씨가 주장한 '광수'. 광수는 이름하여 '주에서 온 북한군 특수부대'로 제1번 광수부터 차례로 번호를 매기고 확인도 안 된 북한사람으로 둔갑했다. 북한군 개입설은 모두 거짓이라고 판명이 났고 이후 광수로 지목된 사람들이 얼토당토않다며 '내가 바로 00번 광수'라고 광주 시민들이 나타나 증언을 했다. 지만원 씨가 근거로 제시한 건 '닮은 사람 찾기' 정도로 얼굴 사진을 비교한 것이 전부인 '5.18 광수'. 처음에는 조잡해도 너무 조잡한 이런 논거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이런 걸 누가 믿을까 싶었다. 그랬건만 나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기정사실로 믿는 사람이 있어 놀라웠고 요즘에도 버젓이 그런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은  기가 막혔다. 그러던 차 1번 광수로 지목된 이름 없는 시민군인 김군을 찾아가는 영화 '김군'이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선은 반가웠고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1번 광수의 사연과 행방이 궁금했기에 브런치 무비패스 두 번째로 보게 된 영화 '김군'이다.

영화 김군 포스터

 


영화 김군 개봉일 2019년 5월 23일.


5.18을 앞두고 개봉했더라면 영화가 조금 더 주목을 받지 않을까 싶었는데 뒤로 미뤄진 개봉 날짜가 다소 궁금했다. 영화개봉일인 5월 23일은  김군이 마지막 사진이 찍힌 날이었던 것. 묘하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지만원 씨의 붉은 화살표를 따라 영화 초반에는 숨 가쁘고 빠르게 휙휙- 넘어간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제1광수로 지목된 시민군 김 군을 찾아 나선다. 시민군으로 같이 했던 사람들, 김 군이 자기 동네 청년이었다고 말하는 아주머니 등등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당시 광주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통해 사실 그대로 영화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떤 사람은 1번 광수가 이 사람이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이었다고도 하고 기억은 제각각이다.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 영화 김 군
지만원 씨가 광수라고 주장하는 근거



처음에는 나 역시 '광수 찾기'에 몰입했다.


영화 김군은 상당히 차분한 영화다. 생각과 달리 지만원 씨의 논거가 거짓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도 않는다.감독은 그걸 증명하는 뉴스나 다른 기사들이 넘치고 있어 굳이 다시 가짜라는 걸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단다. 그저 김군이 찍힌 사진 한 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구마 줄기를 캐내듯 김군을 찾아나선다. 나도 처음엔 김군찾기에 몰입했다. 그러다 영화 중반즈음부터 김군찾기를 포기했다. 5.18 청문회 당시 청년으로 증언을 했던 분이 39년이 지난 오늘, 당시 증언과 똑같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내용을 생생히 증언하는 교차 장면 부분에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스무 한 두 살이었던 청년은 이제 예순이 됐다. 김군 찾기를 포기했던 건 아마 그 장면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민주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그저 눈 앞에서 내 이웃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라고. 5.18은 광주의 특별함이 아니었다.  그저 인간으로 해야 할 마땅한 도리였던 것이다. 어쩌면 김군은, 광주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 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광주를 다룬 영화들이 많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이 영화 '김 군'이 다른 영화들과는 좀 다른 지점이었다.   

수없이 많은 김군 들

건조해서 더 가슴저미는 영화 김군.


영화를 보는 내내 좀 특이했던 건 휘몰아치던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단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지만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39년이 지나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고 비로소 그날을 짜 맞춰 나간다는 점이다. 그들의 단편적인 시간은 1980년 5월에 멈춰있었다. 스무 살, 꿈 많았던 청년들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고 여전히 아픈 기억을 끌어 안은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광주의 오월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계엄군과 대척했던 며칠 간의 시민군은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금도  '오월 동지'로 부르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이 켜진 극장 씬. 39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은 서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인사를 나눈다. 그들은 그렇게 오늘을, 오월을 살아내고 있다. 39년이 지난 지금 격전지였던 광주는 다시 평온해졌고 광주는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 김군은 교훈적이지도 않거니와 극적인 장면  혹우 극적인 감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사실그대로 담아내는데 충실하다. 그래서일까. 담담해서 더 가슴이 저려온다. 영화 '김군'은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짜 뉴스도 그렇고 아직도 규명해야 할 진실이 산적해 있으며 가슴속 멍울로 남은 광주의 아픔이 오직 광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이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관객과의 대화


영화가 끝나고 짧게나마 영화 김군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마련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 강상우 감독과 양희 작가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예정에도 없었지만 대다수의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고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30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가슴에 많은 감정들이 담겼으리라.

 

영화 김군의 강상우 감독과 양희 작가

강상우 감독의 이야기


Q.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Q. 계엄군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양희 작가의 소감

 


"내가 그때 되게 예뻤다"


강상우 감독 GV 중 한 관객의 질문에 인터뷰를 했던 분 중에 옛날 사진을 보면서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강 감독이 울컥했다고 한다. 여전히 그 당시에 박힌 총상이 몸에 남아 있지만 이제 일상이 됐다고 담담히 말하는 사람과 그때 일을 지금 얘기해 봐야 무슨 소용 있냐며 이제 그만 하자는 사람도 다들 그때는 되게 예쁜 사람이었으리라. 양희 작가의 말처럼 김 군이 어디에선가 잘 살고 계셨으면하는 바람이다.


올해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39주년. 영화 김군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말 많은 생각이 스친다.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가 더 진짜 같고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왜곡된 사실을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의 확정 편향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여전히 진상규명은 진척이 없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날뛰고 있고 처벌은 솜털처럼 가볍다. 지금의 학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궁금해진다. 여전히 진실을 말할지 못하는 시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광주의 시간은 적어도 평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킨 광주의 시간은 평화를 가장한 채 마무리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날 나였을 수도 있는 김군이기에.


- 영화 김군 : 2019년 5월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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