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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un 09. 2019

영화 '하나레이 베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상실의 아픔은 그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브런치 무비패스 #3 하나레이 베이(Hanalei Bay)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내용도 모르는 영화를 선택할 때 영화 포스터는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늘 그렇듯 영화에 누가 나오는지, 어떤 영화인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로 오로지 푸른색의 영화 포스터 '하나레이 베이'는 나를 끌어당겼다. 브런치 무비패스 3번째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이 영화 도대체 뭐지? 

극장 안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아! 일본 영화였구나'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추천된 작품으로 지난 6월 6일 개봉했다. 여자 주인공인 '사치'는 하와이에 있는 하나레이 해변으로 서핑을 떠난 아들 '타카시'가 상어에게 다리를 물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매년 아들이 떠난 그즈음이면 어김없이 하와이를 찾는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들을 집어삼킨 바다 앞에 앉아 책만 읽으며 조용한 휴가를 보낸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해 일본에서 서핑을 온 아들 또래의 두 소년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비로소 아들을 잃은 슬픔을 바다에 토해낸다. 


영화 러닝타임 97분.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아들 소식에 달려온 엄마 '사치'는 상어에 물려 다리가 한쪽이 없는 아들의 시신을 보고도 울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들이 죽은 게 후련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들을 집어삼킨 바다에 대해, 자연에 대해 큰 원망도 하지 않지만 10년 동안 어김없이 아들의 기일 즈음에는 하와이를 찾는다. 영화는 오직 갑자기 떠난 아들을 둔 엄마인 '사치'의 감정에만 충실하다. 도대체 그런 '사치'가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사치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건 영화 중간중간 회상신으로 등장하는 장면으로 그녀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사치'가 남편을 만나 갑작스럽게 아들이 생기면서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접은 것도 억울한 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마약에 늘 절어 있고, 심지어 다른 여자와 잠을 자다가 죽었다. 아들 '타카시' 역시 엄마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은 아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사치' 입장에서는 자기 아들이 그리 달가울 리는 없겠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 아니던가. 아무리 정이 없다고 해도 이역만리에서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었다는데도 그저 담담함과 평정을 유지하는 '사치'에게 이상하리만치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통상 감정씬이 이끄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감정에 투사되는 경향이 많은 성격임에도 이 영화는 내내 일정한 거리에서 떨어져서 관찰자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한다. 그럼에도 신기한 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하나레이 해변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가 급박하게 돌아가지도 않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97분의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지겹지가 않게 느껴지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영화 거의 마지막 부분에 아들뻘의 아이에게 외다리 서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감정이 폭발한다. 어쩌면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며 미친 듯이 해변을 찾아다닌다. 10년 동안이나 괜찮은 척했지만 결코 괜찮지 않았던 '사치'는 감정적으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채 언제나 그 자리였다.  10년 만에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며 아들을 집어삼킨 바다에서 상실의 아픔을 토해낸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났다.  아들의 죽음마저도 내색하지 않았던 엄마지만 해마다 그 바다를 찾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게 도통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일본 사람들이 가진 정서는 어떤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흔히 일본 사람들은 남한테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 미덕이라 여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래서일까? 미운 정도 정이고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생각은 결국 한국사람과 일본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과연 '사치'같은 상황에 나라면 어땠을까? 영화는 이미 끝났고 나는 이미 집에 도착했는데 그제야 내가 '사치'가 되어 영화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정말 희한한 경험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이 영화로 탄생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공간이 너무 많았다. 일단 화면의 연결이 중간중간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는데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한 듯했다. 왜일까? 알고 보니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에 수록된 단편 '하나레이 해변'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리고 그제야 뭔가 희미했던 것이 비로소 선명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한번 곱씹는다. 다시 생각하니 이 영화 장면 장면이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지나간다. 아! 그래서 영화가 그렇게 빈 공간이 많았구나 싶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 하와이의 아름다운 해변은 겉으론 아름다운 바다지만 거기엔 또 다른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휴가차 오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바다지만 그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바다는 죽음을 품고 있다. 섬사람들은 하나 같이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거칠고 위험하게 우리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가장 크게 상처를 받는 사건은 바로 '죽음'이다. 이혼, 실직 등등 다른 사건들은 사람에 따라 겪을 수도, 겪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죽음'만은 예외다. 사람은 예외 없이 누구나 죽음을 경험한다. 그런 죽음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상처와 상실감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처를 방어기제로 인해 억누르고 있었을 뿐. 언제가 어느 시점이 오면 뜻하지 않는 곳에서 묻어둔 상처가 끄달려온다. 아들과 같은 나이 또래, 아들이 좋아하던 서핑을 타는 아이들을 만나고 그녀가 비로소 10년 동안 꽁꽁 감추어둔 자신의 상처와 마주했던 것처럼 말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사치'에게 일본 아이들이 매개체가 됐듯 '죽음'을 묻어둔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시간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음악은 또 하나의 미장센.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아노 선율에 맞춰 흥얼거리게 된다. 그 곡은 바로 '사랑의 기쁨'.이다. 한국말로 번역된 내용을 보면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사치의 인생과 똑 닮은 노래 '사랑의 기쁨'이다. 


또 하나, 자신의 남편이 들었고, 아들이 죽던 날에도 자기가 죽을지 모르고 서핑하러 가며 아버지의 유품인 마이마이 카세트 테이프로 해맑게 듣던 그 노래, 그리고 결국 그 마이마이 카세트를 지긋지긋해하던 사치마저 들었던 그 노래. 바로 'The Passenger'다. 영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록 곡인 The Passenger. 우리는 모두 시인의 말처럼 때가 되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하와이 사람들이 사치를 위로하던 그 말도 결국은 다 그런 의미니 모든 것은 다 일맥상통하고 있었던 셈. 영화의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고 우리 정서와 달라 조금 답답하다고 느꼈음에도 뭔가 찝찝하지 않았던 건 어쩌면 영화음악의 영향이 큰 것일 수도 있게 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캬! 영화음악에 이리도 감탄할 줄이야. 



다만 아쉬운 것은.

'사치'의 결혼은 내용상 20대 초. 중반으로 여겨지는데 아들을 낳았을 때나, 아들이 죽었을 때나, 아들 죽은 지 10년이 지났을 때나 얼굴도, 머리 모양도 뭐 하나도 거의 변한 게 없다는 점이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왜 여자 주인공만 그대로인 거냐고. 


예전에 '폭풍 속으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서핑이 우리나라에게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에 본 영화였으니 서핑이 다소 생소했음에도  화면 한 가득 남자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에 서핑에 홀딱 반했을 정도로 정말 황홀했었다. 물론 영화가 초보 서핑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서핑이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들이 서핑에 빠진 이유가 납득이 안 되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하와이 바다가 그리 예쁘다는 건 익히 알고 있건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다는 드론 씬을 제외하고는 너무 평범해 보였다. 바다가 좀 더 아름다웠더라면 조금 더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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