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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un 18. 2019

영화 갤버스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브런치 무비패스 #4,  영화 '갤버스턴'

브런치 무비패스 #4 갤버스턴(Galveston) 


남자는 무심하고 여자는 슬픈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으로 시선이 향하는 곳은 무심한 듯 눈을 감고 있는 남자다. 짐짓 평화로워 보이는 바닷가의 두 남녀. 과연 그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영화 제목 '갤버스턴' 만으로는 아무것도 짐작되지 않던 영화다. 


이 둘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 


영화는 남자 '로이'에서 시작한다. 도박으로 빚진 사람들을 쫓아가 돈을 뜯어내는 건달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는 는 폐암을 선고받았다. 어차피 막장 인생에 암 선고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이 생은 끝난 셈.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사장의 음모에 말려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10대 매춘부 '록키'를 만난다. 그리고 둘은 그 소용돌이를 피해 잠시 도망을 치기로 하고 갤버스턴으로 향한다.  쫓기는 처지지만 잠시나마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 둘은 함께 가정 비스무레한 모습으로 안정을 찾는 것도 잠시, 그런 그들을 세상이 내버려 둘 리 없다. 건달에게는 다시 건달 일 (혹은 그 보다 더한 일)이 따라다니고, 여자는 어쩔 수없이 다시 매춘으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얻는다. 


40대 건달과 10대 매춘부,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애초부터 누구도 그런 삶을 원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 둘은 도덕적이거나 평범한 삶과 거리가 먼 것도 그렇고,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것도 그렇다. 제대로 인간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이 둘의 어설픈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건 그들이 평생에 가져보지 못한 사람에 어떤 따뜻함에 끌린 것은 아니었을까 싶으면서도  이들의 상황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떨치지는 못한다. 왜? 이들에게 '장밋빛 인생'은 애초에 없었으니까.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부르고 떡밥처럼 던져 놓은 사건들은 결론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영화의 결론은 그리 아름답지 못할 거라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되지만 그렇다고 설마 그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제대로 반전이 있는 영화였다. 다소 낭만적일 것이라 기대했던 영화 포스터와 달리 영화의 장르는 범죄 드라마다.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막장일 수 있는지 끔찍할 정도로 다가서지만 마구잡이 식의 갱스터 영화라기보다는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묘한 영화였다. 


그들이 향하는 천국, 갤버스턴. 

왜 하필 영화의 제목이 '갤버스턴'이었을까. 미국 사람들에게 갤버스턴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갤버스턴은 지명 이전에 영화의 포스터가 말하듯 '세상의 낙원' 같은 곳이다. 가장 불행한 순간을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갤버스턴'은 그런 곳이다.  과거 갤버스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가진 그 남자의 바다는 오늘 그 여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된다. 비록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막장인생이지만 아름다운 그 바다 '갤버스턴'에서 만큼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번도 꿈꾸어 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꾸기 시작한 그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들이 잠시나마 누리는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칠갑인 영화가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바로 '갤버스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기생충. 

미래를 기대하는 순간에 가장 크게 짓밟는 불행이라는 그림자는 정말 살 떨리게 한다. 자신이 선택해 막장 인생을 살아온 남자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춘부가 된 여자. 그들이 선택했던, 선택하지 않았던 한번 꼬여버린 인생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다. 어쩐지 최근 영화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과 오버랩되는 건 내용이 달라도 맥락이 닮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기생충을 보고 나면 너무 현실적이라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 것과 달리 영화 갤버스턴은 뭔가 심장이 뻐근할 정도로 울림이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나고 이미 불은 켜졌는데도 관객 어느 누구도 쉬 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누구라도 처음부터, 아니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때 영화 '갤버스턴'의 명대사와 같이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개봉 예정일 : 2019.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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