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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Sep 23. 2019

<인디애니페스트 2019> 개막식과 개막작 <어웨이>

한국에서 시작한 세계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가 벌써 15회! 

제15회 인디애니페스트 2019 


그래 온갖 장르의 영화가 있고 명실공히 세계 영화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도 있고 그 밖에도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숱한 영화제가 있는데 애니메이션이라고 왜 영화제가 없겠는가. 애니페스트 2019 개막식에 가보서야 '아차' 싶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어엿한 영화 장르가 있고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올해로 15회나 됐다는데 일반 관객인 나는 이런 영화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어쩌면 영화 선택에 있어 애니메이션은 '애들이 좋아하는'까지는 아니어도 다른 장르에 비해 번번이 뒷순위에 밀렸던 이유라면 이유고, 핑계 아닌 핑계다. 


제15회 인디애니페스트 2019 슬로건, '볾' 

'인디애니페스트 2019'는 24일(화)까지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23개국의 장편과 단편, 초청장 등 총 152편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과의 대화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http://www.ianifest.org/ )를 참조하면 된다. 


인디애니페스트라는 영화제와 우리나라에서 최초 공개되는 개막작인 질바로디스 긴츠 감독 장편 애니메이션 '어웨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오랜만에 명동을 찾았다. 영화제 개막식이 영화 상영 전에 열릴 예정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상당히 궁금했는데 극장에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가 일시에 쏟아지는 게 아닌가. 그렇게 각국의 언어가 뒤섞여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감독들끼리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담소의 시간이 이어진다. 애니메이션에 워낙 문외한이라 작품도, 감독 이름도 모두 까막눈이지만 각국에서 영화제에 초대된 감독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팬들이 허물없이 뒤섞이며 서로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다른 영화제였다면 꿈도 못 꿀 소박한 시간은 그래서 더 감동이었다. 


영화제의 진행 방식도 나름 독특하게 느껴졌다. 대략 1시간 정도의 개막식 행사는 개막선언을 시작으로 개막공연, 상영작 감독 소개 등등 숨 가쁘게 이어졌다. 객석에는 각국의 감독들 외에도 영화를 전공하는 세계 각국의 학생들도 함께 했는데 좀 더 색다른 느낌이 드는 시간이었다. 작년에 대상을 받은 사람이 영화의 트레일러를 제작하는 방식도 좋았고,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되는 영화가 5초 정도로 짧게 소개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특색 있었다. 다만 영상이 워낙 휙휙 지나가니 감독 소개가 빠지기도 하는 건 조금 옥의 티였으나  영화제 전체 출품작을 간단하게나마 써머리 형식으로 볼 수 있는 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주요 씬들이 지나갈 때마다 '애니메이션이 엄청나구나', '와~ 저 영화는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 영화들이 꽤 많다. 


인디애니페스트 2019 개막식


개막작  질 바로 디스 긴츠 감독 장편 애니메이션 '어웨이'

어웨이 공식 포스터 


와~ 이 영화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인디애니페스트 2019' 개막작으로 선정된 '어웨이'는 영화제를 통해 최초 공개되는 영화로 비행기 불시착에서 살아남은 소년이 숱한 고비를 헤치고 집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개막작은 언제나 주목을 받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 도대체 정체가 뭐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일반 영화라 다를 바 없을 텐데 감독 1명이 모든 것을 다 혼자, 혼자 해냈다. 이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된다. 총 74분의 장편 애니메이션 이건만 스토리, 콘셉트 아트, 캐릭터 디자인, 모델링 등등에 사운드 디자인까지 모두 1인 제작 시스템으로 4년에 걸려 완성한 영화라고 한다. 그야말로 인디 정신 하나로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인디애니페스트 개막적으로 선정된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어웨이'는 도대체 1인 몇 역을 소화한 건가?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절로 목을 빼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개막작 '어웨이'가 개막식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드디어 상영된다. '어 뭐야, 대사가 없어..'로 살짝 의문을 품었던 영화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숨 죽이며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은 최고였다. 특히 통속으로 사용하니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던 단어인 '영상미'를 애니메이션에서 찾아올 줄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대사가 없어도 전혀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던 스토리 + 영상미에 더해진 사운드 삼박자가 조화를 이룬 어웨이는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영화였다. 4년 동안 감독이 쏟아부었을 노력이 어떤 것일지 조금이나마 짐작을 해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이런 영화를 혼자 만들어낸 감독의 위대함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어웨이' 스틸 컷.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이 영화를 소개할 때 이제 15살이 된 인디애니페스트가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는 영화가 당연히 개막작으로 선정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왜 그런 설명을 했는데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반 영화보다 러닝타임은 1/2 정도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더불어 그게 무엇이건 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등등 영화는 한 아이의 모험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헤쳐가야 할 세상의 축소판이 그 속에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주는 감동. 가슴이 찌릿찌릿해질 정도였다. 나도 내가 이 영화에 이렇게 감동받을 줄은 몰랐다. 아마 이 영화는 올해 내가 본 수많은 영화 중 단연코 최고의 영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아기새와 소년 / 아기새를 통해 우리는 소년의 미래를 본다. 

덧. 무엇보다 개막식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인해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라 많은 사람들이 서서라도 개막식을 함께 즐기는 축제 분위기는 소박하지만 그 열기만큼은 대형 영화제 못지않았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인디애니영화제로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하는 작품수도 작품의 수준도 향상되고 있다는 설명에 내가 다 뿌듯해졌다. 그런데 이런 영화제가 올해 예산이 10% 삭감됐다고 한다. 물론 예산을 삭감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영화제들에 비하면 턱도 없는 예산일 텐데 단순히 수치로만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성적인 고려는 해줄 수 없는 것일까?  그놈의 예산 때문에 15년이나 돼가는 영화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홍보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보라, K-문화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듯이 K-애니메이션이 언젠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우뚝 설 그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 출발을 인디애니페스트가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청소년기에 이른 인디애니페스트가 성인으로 굳건히 성장하기를 기대해보며 내년에는 또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벌써 설렌다. 


글.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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