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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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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적 Sep 25. 2018

할머니의 식혜

자식들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할머니의 식혜 솜씨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자자했다. 만드는 과정이 요깡(양갱) 보다는 간단하지만 평소에 노인 두분이서 계시는 동안 만들기엔 수고스러운 식혜.


   그래서인지 자식들이 찾을 때면 꼭 식혜를 만들어 주셨다. 특히나 유독 식혜를 좋아한다는 이들이 찾으면 그들의 손에 들려 보낼 것까지 해서 넉넉히 만드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어느 날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조금만 움직여도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절로 할머니의 주름은 늘어만 갔다. 요즘엔 스트레스나 면역력 약화로 인해 젊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병이 되었지만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것이 대상포진이다. 할머니는 첩첩산중에서 서울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셨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기력이 쇠하신게 보였다. 무엇보다 건강이 나빠지니 생에 대한 마음도 약해지기 시작하셨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던 할머니의 말에 그저 손을 잡아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제는 할아버지와 함께 밤도 주으러 다니시고, 추석 명절이라고 식혜와 요깡까지 하셨다. 벌레 먹은 밤을 고르기 위해 자리 잡고 앉은 앞마당.


다른 노인네들을 보면 우리가 해준 음식은 자식들이 더러워서 안 먹는다고 그러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는데, 죽을 뻔한 나를 살려줘서 고맙고,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고, 나 보러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들 앞에서 자랑하시거나 생색내시는걸 본 적이 없기에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사랑이 어디로 가진 않는다.


   시중에 식혜음료도 팔고, 식당에서도 가끔 식혜가 나오는 곳들도 있지만, 할머니의 식혜보다는 못하다. 특별히 더 달고, 더 맛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건 할머니가 만드신 식혜가 유일해서일 것이다. 할머니도 자신이 베푼 사랑만큼 자식들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오늘은 할머니의 식혜가 참 맛있다고 말씀 드려야겠다. 앞으로도 계속 할머니의 식혜가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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